[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처음으로 디플레이션 우려를 언급했다.
최 부총리는 4일 서울 명동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최근 물가동향을 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며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가 디플레이션 우려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서도 "지금은 디스인플레이션 상황이지 인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다"라며 야당의 공세를 피해갔다.
최 부총리가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우려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으나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최 부총리는 왜 디플레이션 상황을 직접적으로 얘기한 것일까. 최 부총리의 발언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책 변화에 대한 시그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다. 산업활동 동향도 바닥권이다. 정부가 지난해말부터 경기를 살리기 위해 41조원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최 부총리도 "최근 5~6년간 답답한 경제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고도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이 지난해 9월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경제를 살려 올해 경상성장율 6%대를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던 것과는 배치되는 발언이다. 결국 현재의 경제상황이 그동안의 주장에서 한 발 물어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최 부총리는 또 이날 강연에서 기업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그는 "적정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추진했던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만큼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투자액이나 임금상승액, 배당액이 일정수준에 못미치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투자나 배당 확대를 유도하는데 무게중심이 실려 있었지만 이제는 임금 인상을 유도함으로써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로 삼겠다는 구상으로 지적된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발언이 금리인하를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라는 주장도 나온다.
KDI는 지난해 11월 우리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한 후 "경제활성화를 위해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DI는 "한국의 경제상황은 디플레에 빠지기 직전인 일본의 1990년대와 닮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 부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금리 인하는 유동성을 공급해 경제를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우려에 대해서는 "가계부채가 크게 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하면 금리인하가 오히려 가계부채 리스크를 줄이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