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검경수사권 조정문제가 고개를 들면서 수사권의 확보를 위한 경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정치권 논의에 앞서 구속영장 청구권 확보를 위한 사전작업에도 착수했다. 반면 검찰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귀남 법무장관도 다소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어 실제 조정이 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 경찰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
경찰이 정치권의 본격적인 검경 수사권 논의에 앞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목소리를 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사실이 최근 본지 취재를 통해 밝혀졌다.
그 일환으로 경찰청은 최근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해 경찰의 영장청구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헌법상 검사 독점적 영장청구권 문제의 실증적, 처방적 연구’ 보고서를 받았다.
경찰청 수사국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곧 개헌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비해 경찰의 수사권독립 추진 차원의 하나로 이같은 보고서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나중에 경찰 수사권독립 문제가 화두가 되면 그때에 우리 경찰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의 이번 보고서는 헌법상의 영장제도에 대한 설명과 영장청구권한의 검사 독점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또 헌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검찰이 영장청구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행 형사소송법상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이 부여되어 있지만 사실상 경찰이 수사의 거의 전 과정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병확보의 필요성 및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필요성에 관한 판단을 수사 이선에서 지휘를 하는 검사에게만 일임하고 수사 일선에 있는 경찰을 배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이 피의자의 신속한 신병확보 및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확보가 긴요하다고 판단됨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검사의 영장청구권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수사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장청구권이 검사에게만 주어진데 대한 주요 이유가 국민의 기본권 문제임을 언급하며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의 도입과 인신구속 관련 형사소송법의 개정과정에서 법원과 검찰간 벌어진 공방, 최근 다시 불붙고 있는 영장항고제의 도입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간의 갈등,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현실 등을 기초로 판단해 보면 검찰이 결코 스스로의 주장처럼 인신구속에 신중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간섭 문제도 거론했다. 보고서는 “검찰은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근거로 본래의 영장청구업무 범위를 벗어나 경찰의 강제수사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권을 행사해 검사 지배적 수사구조를 심화시키고 경찰 수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사례로 지난 2005년 5월 조달청 전 중앙보급창장 등 7명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5차례나 불청구하고 불구속 수사지휘를 했는데, 여기에는 고검장 출신 변호사의 영향력이 행사되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2006년12월에는 동대문경찰서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일하고 있는 법무법인의 횡령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2차례 불청구했고, 결국 경찰은 수사진행이 어려워 불구속기소 의견을 송치를 한 바 있다.
보고서는 특히 “현 제도 하에서 검사의 영장불청구에 대해서는 불복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검사의 영장불청구는 경찰수사를 방해하거나 사실상 중단시키는 결과까지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따라서 설혹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통해 경찰에게 송치 전 초동수사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한다 할지라도 현재 검사에게 독점되어 있는 영장청구제도를 폐지하고 경찰에게도 자율적인 청구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경찰수사의 독립성은 사실상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경찰이 영장청구권을 갖기 위해 헌법 제12조와 16조에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 제시하여야 한다’는 부분을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라고 고치는 헌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또 형사소송법도 제200조의 2 등에서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을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관할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안을 내놨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경찰수사권 독립 문제에 있어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최근 야당이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가운데 여당인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경찰이 (검찰로부터) 영장청구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해 경찰에 힘을 싣기도 했다.
반면 상당수 한나라당 법사위 의원들은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최근 ‘공중부양-광우병 무죄’ 사건으로 법경 갈등이 심화된 만큼 ‘민감성’을 이유로 대부분은 답변을 꺼렸으나 국회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인권문제가 걸린 부분이라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6%가 ‘경찰 수사권을 독립해야 할 때’라고 답했으며 ‘시기상조’라는 의견은 36.4%에 그쳤다.
◆ 이귀남, 검경수사권 조정 ‘부정적’
이런 가운데 이귀남 법무장관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 경찰을 실망시켰다.
이 장관은 16일 ‘경찰의 수사주체성 인정과 검경간 협력관계 설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사권조정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상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인권보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 장관은 ‘검찰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냐’는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고 답한 뒤 ‘단순폭력 등 가벼운 사건들은 경찰이 주체적 책임을 갖고 해도 무방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도 “어떤 것이 가볍냐, 중하냐 하는 것도 분류하기 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장관은 “모든 사건이 개개인 입장에서 보면 중하지 않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권한다툼으로 보여 지기도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인권보호에 어떤 게 좋을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수사권조정 주장이)많아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질문 드렸다’는 이어진 질문에도 그는 “알겠다”고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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