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KB금융그룹이 휘청거리고 있다.
잇단 사건·사고에 최고경영진의 갈등으로 리더십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지난 2001년 주택은행과 옛 국민은행이 합병할 때만해도 KB금융그룹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이나 다름없었다. 자산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은행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덩치만 큰 초식공룡으로 취급되고 있다.
거대한 은행들이 살림을 합쳤지만 시너지는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파벌 다툼만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거버넌스의 취약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각종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도쿄지점 대출 비리,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KB금융그룹은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된 내부 갈등 등을 이유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해 문책경고 수준의 중징계, KB금융과 국민은행에는 기관경고 수준의 경징계 방침을 결정했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동시에 중징계를 받은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최악의 경우 임 회장과 이 행장이 동반 퇴진할 수 있다. 이들이 자리를 지키더라도 훼손된 리더십을 회복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KB금융그룹의 경쟁력도 훼손될 것이라는 전망이 만만치 않다.
◇성장판이 닫힌 KB국민은행
임영록 회장은 취임 이후 '리딩뱅크(Leading Bank) 지위 탈환'을 강조해 왔다. 이는 곧 KB금융그룹이 이미 리딩뱅크의 자리를 내놓았다는 뜻이다. 국민은행은 KB금융그룹의 자회사지만 KB금융그룹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KB국민은행=KB금융그룹'이라는 등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2001년 주택은행과 옛 국민은행의 합병을 통해 통합 국민은행은 총자산 172조원, 영업점 1131개를 거느린 1등 은행'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경쟁 은행의 자산은 ▲우리(당시 한빛은행) 77조원 ▲조흥 56조원 ▲신한 55조원 등이었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들은 '난장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합병 직후 KB국민은행의 성장판은 닫히고 말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265조원으로 우리은행(249조원) 신한은행(238조원) 등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다.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것을 비롯해 은행권에서 몇 차례 M&A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국민은행은 성장을 멈춘 것이나 다름 없다.
합병은 오히려 국민은행의 도약을 가로막았다. 통합 국민은행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도 국민은행 출신은 '1 채널', 주택은행 출신은 '2 채널'로 불린다. 서로를 동반자가 아니라 적(敵)으로 간주한다. 오죽하면 이건호 행장이 취임사를 통해 "채널별 안배는 없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거버넌스가 확립되지 않은 탓에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무 역량이나 실적보다는 줄을 잘 서는 게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영 공백으로 큰 위기 맞을 수도
KB금융그룹으로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동반 사퇴다.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연임이 불가능하고 퇴직 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금지된다.
지금까지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당국의 중징계를 받으면 대부분 사퇴했다. 법적으로는 연임이 불가능할 뿐 남은 임기를 수행하는 데는 하자가 없지만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은 중징계를 받은 후 스스로 물러난 바 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전산 시스템 교체 과정에서 팽팽히 맞선 만큼 적어도 한 사람은 퇴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들의 징계 사유로 작용한 사건·사고들은 이전 경영진 재직 때부터 쌓인 문제들이 터져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임 회장이 금융지주 사장, 이 행장이 은행의 리스크담당 부행장을 맡고 있던 시기와 겹치는 만큼 책임을 피해나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은 26일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일련의 사건에 대해 소명할 예정이다. KB 관계자는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의 경우 내부통제 강화 일환으로 직접 적발해 감독당국에 보고한 사안인데 이런 부분까지 징계 사안에 포함된다면 향후 임기 중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한 풍토가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ING생명, 우투증권에 이어 LIG손보마저 놓치나
KB금융그룹은 다각적인 인수·합병(M&A) 노력을 기울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KB금융지주는 은행업의 비중이 80~90%에 달한다. 이 때문에 M&A를 통한 비(非)은행 부문 강화는 KB의 숙원사업이다.
임영록 회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수 차례 "비은행 부문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윤대 전 회장도 ING 생명 인수에 사활을 걸며 비은행 부문의 수익 비중을 30%대로 높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사회가 높은 인수가격과 보험산업의 불투명한 미래를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계획을 접고 말았다. 지난해에는 우리투자증권계열을 놓고 농협금융과 한 판 승부를 펼쳤으나 역시 고배를 마셨다.
현재 KB금융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눈 앞에 둔 LIG손해보험 인수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KB금융에 대한 기관경고 징계가 확정될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M&A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