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이 브라질 월드컵 재전송료를 두고 갈등을 벌이면서 방송 중단 사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작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적극적으로 분쟁 조정에 나서고 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과 11일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각각 성명서를 내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지만 방통위는 각 사업자에 방송이 중단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월드컵 방송 재전송료를 놓고 지상파와 유료방송 업계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11일 지상파를 대변하는 한국방송협회의 성명에 반박하면서 허위 사실로 여론을 호도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케이블 협회는 "상업 논리에 앞서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국민들의 시청권"이라면서 "지상파 3사는 월드컵 중계방송 재송신료 추가 부담이라는 부당한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방송협회도 월드컵 중계권료 협상에 관한 케이블SO의 대응이 시청자를 볼모로 한 부적절한 처사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방송협회는 "2009년 재송신 계약을 완료한 IPTV 3사(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계약에 따라 2010년 남아공월드컵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별도의 재송신 비용을 지불한 바 있다"면서 "케이블SO의 주장은 궁색하다"고 맞섰다.
특히 지상파가 근거로 내세운 재송신 계약서 '제6조 재송신에 따른 양사의 책임'의 부분에서는 양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제6조는 "SBS가 프로그램을 재송신하는 데 문제없도록 한다"는 내용과 함께 단서에 "단 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 재송신 등에 대해 별도로 협의한다"는 언급이 있다.
방송협회는 "올림픽, 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의 재송신 대가에 관해서는 별도 협의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면서 "국제적 스포츠이벤트에 소요되는 중계권료 등의 비용 증가는 재송신 계약 당시에는 사전 추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료방송과 협의를 통해 수급비용을 공동 분담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케이블협회는 "재송신 계약서에는 별도의 대가 협상에 대한 언급은 계약서 어디에도 없다"면서 "단지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위한 중계권과 방송수단 확보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부담하는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을 둔 것일 뿐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지상파와 유료방송사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분쟁을 조정해야할 방통위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현재 방송법상 보편적인 시청권에 저해될 경우 방통위가 분쟁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조항은 있지만 분쟁 상황에서 미리 방통위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다만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을 하게 된다면 조정에 나설 수는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사업자들 간 자율적으로 협상을 하는 단계"라며 "만약 방통위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분쟁조정 등의 제도를 활용하라고 전달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적 책무를 지닌 방송산업에 정부가 공정한 시장규칙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힘의 논리에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대등한 힘의 위치를 가진 사업자라면 자율 협상에 맡길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기에 정부가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의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방통위 1기 위원회부터 재전송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고, 2기 위원회 때는 이경재 위원장이 의무재송신 범위 확대 등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매년 지상파TV의 가입자당 재전송료(CPS) 부과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산정 기준과 가이드라인 제정에 정부가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여전히 방통위는 제자리 걸음이다.
특히 통신분야의 경우 2년마다 유무선 상호접속료 산정을 하면서 이통사 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정확한 기준과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이를 가지고 소수점까지 세세하게 결정하는 반면, 아직 재전송료 협상은 무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마나 지난해 3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지상파 재송신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방송법과 IPTV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계류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유료방송사업자가 90%가 넘는 한국 방송 시장에서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 하기 위한 기준 마련과 법 개정 등에 방통위가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