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환경관련 법안 시행을 코앞에 두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산업계의 움직임이 숨가쁘게 이뤄지고 있다.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시행을 앞둔 안전·환경 관련 법안만 해도 '탄소배출권 거래제', '저탄소차협력금제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유해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등 4개에 달한다.
일단 산업계는 안전과 환경을 지키려는 정부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4개 법안을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은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외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4개 규제가 동시에 시행되면, 이에 따른 행정적, 경제적, 시간적 비용 부담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관련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재계 주변에선 이와 관련,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와 맞물리면서 산업현장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해 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진데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환경정책을 밀어부칠 해당 부처의 정책의지가 상당히 위축됐다는 점 등이 가세한 상황"이라며 "내수침체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글로벌 경기상황도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등도 산업계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시행을 불과 6개월여 앞둔 현 시점까지 업계와 경제단체 등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이들 법안이 과연 정부의 계획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도 주목할 대목이다.
실제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최근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놓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 등은 산업계의 '환경비용'에 대한 부담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산업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이 이뤄지는 것은 자동차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2015년부터 도입이 계획된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이 제도는 당근(보조금)과 채찍(부담금)을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경소형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프랑스에서 2007년부터 시행 중인 '보너스 맬러스' 제도와 유사한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차량에 수백만 원대의 부담금을 물리고 반면 배출이 적은 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주요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도입한 곳은 프랑스가 유일하며, 캐나다는 도입 2년만에 폐지했다.
산업계는 이 제도가 정작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사회적, 경제적 비용만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이 제도를 도입한 후 평균 기준 탄소배출량은 미미하게 감소했지만, 자동차 운행거리와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총탄소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 제도가 소비자들의 부담을 높이고, 국내 자동차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소지가 높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경연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검토안과 같이 보조금·부과금이 적용되면 자동차의 평균가격은 2015~2020년에 걸쳐 약 52만~243만원이 인상되며, 국내 자동차업계의 이익감소는 최소 415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국내 완성차 업계와 전경련 등 국내 산업계가 내년 시행을 앞둔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철회를 위한 공동대응에 나선 상황. 지난 1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10개 주요 산업단체가 공동건의서를 통해 관계부처에 도입 철회를 공식 요구한데 이어, 23일에는 한경연이 저탄소차 협력금제도의 영향 평가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협회 관계자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온실가스 저감효과가 없고 또 다른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비효과적인 환경 규제"라며 "규제 도입은 전면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네거티브한 환경 규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 세수를 활용한 인센티브 등 포지티브한 식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며 "조세제도도 단계적으로 시장중립적이고 친환경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 한경연 연구위원은 "환경개선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자동차 구매가 아닌 자동차 사용에 초점을 맞춘 해결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부과금의 적용보다는 친환경차를 개발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정책이 우선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평법과 화관법도 일부 합의점을 찾기는 했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법안은 구미 불산 유출사고,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같은 독성 물질 피해사고와 구미 불산 누출사고와 같은 사업장 내 화학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 화학물질의 관리와 사고 책임의 근거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화관법은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논란이 됐고, 화평법은 신규 화학물질의 경우 용량에 상관없이 모두 등록해야 한다는 부분이 독소 조항으로 꼽혔다. 신규화학물질을 등록하려면 제출자료 준비에 평균 8~11개월이 걸리고, 물질 당 평균 5700만~1억12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환경부는 산업계와의 논의 끝에 1t 미만의 화학물질은 간이등록을 허용하고,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화학물질 성분 및 함량 등은 보고 대상에서 제외하며 화학물질 사고 발생시 영업정지 대상을 '사고 사업장'으로 제한하는 등 비교적 완화된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과징금 산정 방식 등 핵심 사안을 놓고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완화된 화평법·화관법 하위 법령안이 마련됐지만, 1일 과징금 산정기준 유지 등 주요 쟁점사항은 원안대로 유지돼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며 "시행까지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아직 하위법령이 확정되지도 않는 등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법이 시행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위험물 안전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법안과 화관법의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설치 및 관리 기준이 중복된다"며 "원화강세, 이라크 정정불안에 따른 유가변동, 내수 위축 등 경영 환경이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중복규제는 경제 활력을 더욱 저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