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우유 재고량이 12년 만에 사상 최대치에 달하는 등 소비 침체로 우유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17일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분유재고는 2009년 3822톤(t), 2010년 1050t, 2011년 1648t을 기록한 뒤 급격히 증가했다. 2012년 7469t, 2013년 7328t에 이어 올해 7월 기준 1만4896t으로,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최악의 재고 사태를 맞았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도입된 원유가격연동제때문에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지난해 원유가를 바탕으로 1년간 원가 변동 요인을 적용하는 제도로, 공식에 따라 생산비 변화액을 원유 기본가격에 반영하기 때문에 수요 감소나 과잉 생산 등 가격 하락 요인이 반영되지 않는다.
업체들은 그동안 거래 농가들과 함께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으나 재고 관리에 일부 숨통을 열어 줬던 대중국 수출길마저 막히면서 남은 우유가 계속 쌓여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업체들은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 자체 보유한 분유 저장시설은 물론 외부에서 임대한 창고까지 재고물량으로 넘쳐나면서 조만간 재고를 폐기해야 할 처지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우유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소비가 줄어든 요인도 있지만, 원유가 남아돌아서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할인점 행사와 B2B(기업간 거래)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으며, 올해 들어 발효유 시장 공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첨가물을 넣지 않은 무첨가 발효유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것을 감안해 요거트 '불가리스 프룻', 'milk100' 등을 출시했다. 무첨가 발효유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마트에서 시음행사와 덤으로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해 소비 촉진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유업은 유업체의 대표제품으로 꼽히는 '백색우유'를 세분화해 새롭게 출시했다. 웰빙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저지방 제품을 선보여 새로운 고객층을 흡수하고 우유 소비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우유는 3% 이상의 유지방을 갖고 있는 경우 '일반우유'라고 부르며, 유지방 함량이 2.6% 이하인 우유를 '저지방 우유'로 분류한다.
또 롯데푸드 관계자는 "국내 최초로 저온살균우유를 출시하고 저온살균 우유시장을 이끌기 위해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며 "발효유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제품 개발과 출시에 집중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프리미엄 분유 '위드맘'을 한국에서 쓰는 브랜드 그대로 판매하면서 한국 제품의 긍정적 이미지를 높이고, 홍보·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유 소비 침체가 우유 업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만큼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용구 한국유통학회 회장(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정부와 낙농가, 비영리단체 등과 공조해 우유 소비 촉진을 위한 캠페인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우유가 가장 완벽한 식품'이라는 문구로 제품의 품질력을 강조하는 등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유도 다른 음료처럼 신선한 아이디어로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제품 용기를 새롭게 디자인해 개선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며 "고급화된 제품으로 차별화된 프리미엄(Premium) 이미지를 구축, 해외수출 활성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덕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한국축산경영학회 회장)은 "국내에서 유통 중인 버터·치즈 등 유제품의 원료가 대부분 수입산으로, 체다치즈는 임실치즈를 제외하고 모두가 수입산"이라며 "유제품의 원료를 수입산을 안 쓰고, 국내산을 쓸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국제 가격에 맞춰 원유 용도별로 가격을 달리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처음부터 어렵다면 한도 수량을 정해서라도 국산 원유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