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29일부터 불법 차명거래를 원천 금지하는 강화된 금융실명법이 시행된다. "거액 자산가들 이야기"라며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미리미리 점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자율이 높은 '재형저축'에 가입하려고 지인의 명의를 빌렸거나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자녀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을 입금시켜뒀다면 처벌될 수 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
23일 금융위원회와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돈을 예금했거나 불법도박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타인 명의의 계좌에 예금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또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증여세 감면 범위를 초과해 자신의 자금을 가족명의 계좌에 예금해 둔 것도 조세포탈행위로 간주돼 처벌된다.
증여세 감면 범위는 ▲배우자 6억원 ▲자녀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 ▲부모 3000만원 ▲기타 친족 500만원이다.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 회피를 위해 다른 사람의 계좌에 본인 소유 자금을 예금하는 행위, 생계형저축 등 세금우대 금융상품의 가입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 계좌에 본인 소유 자금을 분산 예금하는 행위 등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절세를 위해 타인의 계좌를 이용했다면 본인 명의의 계좌로 옮기고, 증여를 위해 자녀 등의 계좌에 증여세 감면 범위 이상의 돈을 넣었다면 증여세 신고를 하면 된다.
계좌 실명화로 금융소득이 불어나 세금폭탄을 맞게될 우려가 있다면 '즉시연금' 가입도 고려해볼만하다. 즉시연금에 가입하면 계약자별로 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차명계좌를 그대로 둘 경우 타인 계좌에 넣어둔 돈을 영영 받지 못할 수 있다. 개정 금융실명제법은 계좌에 보유된 금융자산은 '명의자의 소유'로 추정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의를 빌려줬던 사람이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주장할 경우 민사소송을 거쳐야 하고, 사전합의 증거 등이 확실해 소송에서 이긴다해도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 역시 불법을 목적으로 차명거래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공범으로 처벌된다.
다만 동창회비, 가족계 등 불법 목적이 아닌 '선의의 차명거래'는 기존처럼 허용된다.
계·부녀회·동창회 등 친목모임 회비를 관리하기 위해 회장·총무·간사 등 대표자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관리하는 행위는 가능하다.
또 문중·교회 등 임의단체의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대표자 명의 계좌를 이용하는 경우 역시 문제가 없다.
미성년 자녀의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부모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도 허용된다.
시장은 법 시행을 앞두고 이미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 10개 은행에서 이뤄진 1억원 이상 인출금액은 484조546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8조888억원이나 늘었다.
법 시행에 앞서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이자나 배당소득을 올렸을 때 내는 금융소득종합과세나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자금을 쪼개놨던 자산가들이 차명계좌를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