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엔저 여파로 유통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엔저가 가속화되면서 농산물 수출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일본 화장품 회사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또 방한 중국인이 해마다 20% 이상씩 증가하며 관광시장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일본 관광객은 감소세에 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엔저(엔화 약세)가 시작돼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발표한 10월 말 이후 10엔 이상 급락했다. 아베신조 총리가 지난달 18일 소비세율 인상 연기를 발표하면서 더 떨어졌다. 지난 8일 원·엔 환율은 6년9개월 만에 가장 낮은 100엔당 910원대까지 떨어졌다.
엔저 심화로 농산물 대일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 상대국인 중국, 미국, 일본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이 24.9%, 미국이 12.0%인 반면에 일본은 5.7%에 그쳤다.
6.2%였던 지난해 일본 수출 비중이 0.5%포인트가 줄어든 것으로, 대일 수출 증감률은 2012년 -2.2%, 2013년 -10.7%, 2014년 1~9월 -4.6%로 3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특히 일본으로의 화훼류 수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말 기준 화훼류의 일본 수출실적은 물량은 4558톤(t), 금액은 3452만7000달러였으나 올해 동기 기준 물량은 3271톤, 금액은 2268만5000달러로, 물량이 28.2%, 금액은 34.3%가 각각 감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대(對) 일본 농식품 수출업체들의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며 "특히 일본이 우리나라의 최대 농식품 수출시장이란 점에서 상황이 심각하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관광 제1시장의 자리를 내준 것은 이미 오래다. '씀씀이'가 중국인 관광객에 비해 적으면서도 '선진국 손님'이라는 이유로 대우받던 시절은 갔다. 수적으로도 열세에 몰리면서 안내, 통역 서비스 등에서 중국 관광객보다 못한 처지에 놓였다.
한 유명 백화점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순으로 진행되던 안내방송에서 중국어를 일본어보다 먼저 내보내기도 한다. 특히 화장품 쇼핑으로 외국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 일대 판매원들의 언어가 바뀌었다. 요즘에는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
한 업체의 경우 일본어와 중국어 가능 판매직원의 비율이 엇비슷했으나, 올 1월에는 3대7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화장품 업체들도 국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화장품 수입액은 2011년 2억2787만달러(약 2524억원)에서 2012년 2억1926만달러(약 2428억원), 지난해 1억8065만달러(약 2000억원)로 감소했다. 이에 제품가격 인하, 매장 철수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P&G의 일본계 화장품 브랜드 SK-Ⅱ는 지난 1일부터 면세점 화장품 가격을 평균 2.6% 인하했다. 회사 측은 환율에 따른 가격 조정이라고 밝혔으나, 계속되는 엔저 상황에서도 높은 가격을 유지했던 만큼 가격인하는 매출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SK-Ⅱ는 롯데면세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내국인 매출 5위권에 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DHC는 지난해 오프라인 매장사업을 접었다. 또 통신판매로 인기를 누렸던 오르비스는 올해 8월 통신판매 종료에 이어 내년 2월 한국법인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시장은 업계 1·2위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세계 최고의 화장품업체인 프랑스 로레알그룹 등만이 남은 과점 체제로 변했다"며 "일본 화장품 업체가 끼어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자들의 화장품 소비 패턴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