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유통업계를 대표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롯데그룹과 CJ그룹이 내홍을 겪고 있다.
신격호 롯데 총괄 그룹 회장은 장남을 경영에서 끌어내리고,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이후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온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형의 부재에도 일본 롯데를 경영하지 않고 당분간 한국에 집중키로 했다.
이는 신격호 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을 전격 해임시키면서 향후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를 모두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일본에서 열린 롯데 홀딩스 임시 이사회에서 주력 자회사인 롯데상사의 대표이사, 제과회사인 롯데의 이사, 아이스크림 회사인 롯데아이스의 이사에서 해임됐다. 지난 8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도 부회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그럼에도 신 전 부회장의 해임에 대해 일본 롯데홀딩스를 비롯해 한국 롯데에서도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업계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언론은 신격호 회장이 일본 롯데의 실적이 나빠 격노하면서 신동주 부회장을 해임시켰다고 보도하면서 이번 해임이 실적 악화로 기우는 듯 했다.
실제 한국 롯데가 연 매출 80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할 동안 일본 롯데는 10분의 1 수준인 6조원에 그쳤다. 그동안 신 회장이 장남을 믿고 기다려줬지만 계열사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해임'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전문 경영인 츠쿠다 다케유키 사장과의 갈등도 커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신격호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내치고 츠쿠다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재벌닷컴이 2013년 회계연도(3월 결산) 일본 롯데홀딩스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5조7572억 엔으로 전년보다 34.3%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한국 롯데그룹의 성장률(11%)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혀 논란이 커졌다.
일본 롯데그룹 전반적인 실적이 좋아진 상황에서 실적 저하로 인해 밀려났다는 일본 보도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오히려 만 93세의 고령인 신격호 회장이 차남에게 롯데를 물려주기 위한 후계 구도를 만들기 위해 신 전 부회장을 해임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됐다.
신동빈 회장도 지난 13일 김포공항에 입국하면서 일본 롯데 경영 여부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하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아버지 신격호 회장의 결정에 따라 롯데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답변이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다.
하지만 롯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지난 13일 밤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일본 롯데 경영 여부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일본 롯데를 경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명확한 신 전 부회장의 사유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고, 신동빈 회장도 제2롯데월드 완공 등 해결해야하는 현안이 많아 향후 롯데 그룹의 후계 구도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CJ그룹은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이후 총수 부재에 따른 경영 차질이 심각한 가운데,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CJ그룹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구나비치에 머물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일 홍콩 아시아 월드 엑스포 아레나에서 열린 '2014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참석했다가 한국에 2주일간 잠시 머문 뒤 라구나비치로 되돌아갔다.
이 부회장은 20대 때부터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유전성 신경질환을 앓아 왔다. 이 병은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이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는 질환이다. 이재현 회장도 앓고 있다.
이 부회장의 미국행은 어머니 손복남 고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병으로 앓아온 유전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서 장기 요양에 들어간 만큼 당분간 국내 경영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뗌에 따라 향후 CJ그룹은 이채욱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기존에는 국내 현안까지 다 챙겼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치료받으면서 글로벌 현장에서의 현안을 챙기고 있다"며 "이 부회장이 미국에 체류 중이라 역할이 한정돼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룹 측은 건강상의 이유에 의한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구설수와 오너 일가의 입김 등이 작용했다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일선 후퇴가 현재 처한 그룹의 사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이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손경식 CJ 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경영위원회가 발족됐으나, 오너 부재의 경영공백을 극복하지 못했다.
2010년 7223억원이던 CJ의 영업이익은 2011년 8510억원, 2012년 9446억원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2013년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2.7% 감소한 8246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은 엔터테인먼트, 문화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식품그룹으로 출발한 CJ그룹을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공을 세우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많은 공을 들인 CJ그룹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계열사 CJ E&M은 적자 행진을 지속 중이다. 지난해 1분기 55억원 영업손실에 이어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130억원, 125억원을 기록하며 310억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이 같은 경영 상황에 대한 오너 일가와 그룹 최고경영진의 고심도 깊어졌다. 이 부회장의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잡음이 커진 것도 입지를 약화시킨 원인이 됐다.
이 부회장이 2010년 영입했던 노희영 전 CJ그룹 고문이 지난해 9월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그 이후에 오히려 CJ제일제당 부사장으로 발탁돼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노 전 부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임직원들의 사기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채욱 부회장은 CJ그룹이 2011년 인수한 대한통운을 2013년 CJ GLS와 합병해 CJ대한통운을 탄생시키는데 공로를 세웠으며, 성장세를 견인했다. 지난해 1~3분기 CJ대한통운의 누계 영업이익은 1078억57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22.7% 늘어났다.
이에 이재현 회장 외삼촌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진두지휘 하에 이채욱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또 이채욱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신현재 CJ대한통운 대표가 지난해 그룹 핵심 보직인 CJ경영총괄에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건강상의 이유도 작용하겠지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등으로 오너 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이미경 부회장이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CJ그룹 이재현 회장에 대한 대법원 최종 상고심 판결이 CJ그룹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상고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