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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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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정신과 육체 어느 쪽에서든 아프다는 건 사람의 근저를 흔들어 놓기에 창조의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 배우를 예술가로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예술'로 구분되는 업종에 종사해서가 아니다. 배우는 남을 산다. 역할과 대사를 주는 건 감독이지만, 단 몇 초라도 그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은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그들은 만들어진 성격(캐릭터)을 내면화해 '인간을' 살아낸다. 그들은 인간을 온몸으로 표현하기에 예술가다. 아픈 사람을 연기한다는 건, 그래서 배우에게 기회다.

폭을 다르게 말하면 깊이 또한 상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아픈 인간을 제대로 연기한 배우들은 한 번쯤은 배역에 깊게 몰입한다. 그 몰입은 때론 배우라는 인간 자체를 휘저어 놓는다. 연기가 끝났어도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요컨대 배우는 타인을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하는 존재다. 2013년과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녀주연상이 모두 아픈 인간을 연기한 배우들이 가져갔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한 배우가 있다. 그도 예전에는 타인을 살았다. 지금도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 살고 있다. 딱 한 번, 배우 김호정(47)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살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성격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바로 '나'를 다시 내가 받아들여야 했다. 아픔을 겪는 인간을 상상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나의 아픔을 똑같이 겪는 인간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아픔을 겪어야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남이 아닌 자신을 다시 산 그는 더 나은 연기를 하는 배우로 태어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인간으로도 태어났다.

김호정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 역할을 어떻게 연기하고,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크게 고민 안 했던 것 같아요. 하느냐 마느냐 그게 중요했던 거죠. 아마 살면서 제가 했던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에서 김호정이 맡은 역할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여자다. 한 번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으나 뇌 다른 곳에 또 종양이 생겼다. 수술을 받았지만,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 여자에게 고통스러운 건 육체만이 아니다. 병에 유폐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남편을 바라보는 일이다. 더군다나 남편은 여자를 극진히 간호한다.

김호정도 매우 아팠다. 그는 오랜 시간 병마와 싸웠다.(그는 병명을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아버지를 잃은 정신적 고통에 육체적 고통이 더해졌다. 그는 당시의 고통이 떠올라 출연 제의를 단박에 거절했다.

 "연기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요, 배우들이 그러잖아요. 상상력에 경험을 동원해서 연기한다고요. 그런데 이 역할은 그냥 제 경험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어요. 그래서 싫었어요. 제가 경험했던 고통이 다시 떠올리기 싫더라고요."

김호정은 연출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가려고 했다. 영화 출연 제의도 거절했으니 떠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화장'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는 이 영화를 "운명 같았다"고 했다.

 "멋지게 말하려고 '운명'이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내 경험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까'라고요. 그런 상황이 진짜 온 거죠.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 역할을 거절하면 그냥 이 마음 그대로 살 것 같더라고요. 이건 배우가 아닌 저의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하기로 하고 원작 소설 읽고, 그때부터는 담담하게 했어요."

김호정은 '화장'을 준비하면서 딱 한 번 울었다.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고, 환자를 표현하고자 체중을 감량했다. 그리고 영화사에서 준 캐릭터 관련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그는 울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내가 아는 감정들이니까."

영화는 아픈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면서도 젊은 여자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남편의 이야기다. 임권택 감독은 이 남자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속절 없는 인간 감정의 결을 짚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장면은 김호정의 몫이다. 남편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를 화장실에서 씻겨주는, '노출'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 바로 그 신(scene)이다.

 "노출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만 그 장면이 아름다웠으면 했어요. 감독님도 그러셨던 것 같고요. 전 그냥 살을 더 못 빼서 아쉽던데요."

관객에게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가는 건 화장실 장면일 테지만, 김호정은 자신의 마음을 가장 흔들어 놓았던 장면으로 다른 신을 꼽았다. 여자가 수술을 받기 위해 삭발을 하는 대목이다. 남편은 바리깡을 들고 아무 말도 없이 아내의 머리를 밀고, 여자는 그 상황을 묵묵히 바라본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거라서, 연기하는 게 고통스럽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근데 삭발하는 장면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저는 자리 잡고 의자에 앉고 스태프들은 카메라 동선 짜고 조명 맞추는데,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김호정 같은 거예요. 뭔가 시큰해지면서 예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더라고요. 정신 차리고 눈물 참으려고 가만히 있었죠. 허리 꼿꼿이 세우고 미동도 없이 두 시간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어요."

 '화장'은 김호정이 겪은 현실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아내는 죽는다. 김호정은 수의를 입고 관에 누웠다. 카메라는 눈을 감은 여자의 얼굴을 담는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이 장면이었다.

 "그 장면 찍고 나니까, 갑자기 뭔가 저 자신이 확 달라진 것 같았어요. 제 안에 쌓여 있던 모든 것들을 한 방에 날려버린 기분이랄까요.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활짝 웃게 되더라고요."

서러움을 날려 버린 것이냐고 묻자, "나를 넘어선 거지 울분이나 서러움은 아니다"며 "그저 내가 항상 고민하고 내 안에서 갈등하던 것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김호정은 현재 SBS TV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하고 있다. TV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화장' 이후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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