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과의 대화는 술술 풀리고, 또 어떤 사람은 답답한 걸까
2014년에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으로 구성된 특별 연구팀이 미국 국방부 요청으로 설득과 협상을 가르치는 새로운 방식을 구성하게 되었다. 국방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군 장교들을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난 사람으로 훈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FBI에서 인질 상황을 전담하는 위기 협상반의 시갈라를 찾아갔다. 여러 관료에게 함께 일했던 최고의 협상가가 누구였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펠릭스 시갈라(Felix Sigala)라는 인물에 관해 물었을 때 한결같이 돌아오는 답은 이야기 나누기 편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냥 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은 시갈라와 얘기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와 말하다 보면 왠지 자신이 좀 똑똑하고 재밌고 썩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는 딱히 공통점이 없는 사람과도 마치 둘 사이에 대단한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증언을 꺼리는 목격자를 구슬려 진술을 받아내고, 수배 중인 범인이 자진 출두하게 유도하거나 슬퍼하는 유가족을 위로했다. 한번은 실내에서 코브라 여섯 마리, 방울뱀 열아홉 마리, 이구아나 한 마리로 진을 치고 버티던 동물 밀수범을 설득해 순순히 공범의 이름까지 불게 한 적도 있었다. “상황을 뱀의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시갈라가 말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거든요.”
연구진들이 시갈라와 만나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은 후 질문을 던졌다. “커뮤니케이션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말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더 낫겠네요. 괜찮으시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 하나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갈라에게 질문한 과학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딸아이 결혼식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지요. 그리고 몇 달이 안 되어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갈라는 그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고 중간중간 자신의 기억도 공유했다. ”제 여동생은 2010년에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요. 암이었는데 투병하는 내내 많이 힘들어했죠. 하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어요. 전 그때의 모습으로 동생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45분이 지났다. 시갈라는 과학자에게 묻기도 하고 자기 얘기도 했다. 상대가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그 역시 자신의 사연으로 호응했다.
한 과학자가 사춘기 딸과의 고충을 털어놓자 시갈라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긋나기만 하는 이모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에 관해 물어보니 시갈라는 자신이 원래 수줍음이 많았는데 영업사원이었던 아버지와 사기꾼이었던 할아버지를 흉내 내면서 마침내 사람과 가까워지는 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때로는 무엇을 묻느냐보다 어떻게 묻느냐가 더 중요
한 심리학자와의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끝날 무렵 심리학 교수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왜 그렇게 많은 분이 저희에게 당신을 추천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좋은 질문을 주셨어요.” 시갈라가 대답했다.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교수님께서는 싱글맘이라고 하셨는데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 일을 병행하기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전 상상도 못 하겠군요. 외람되지만 선생님께서는 주위에 이혼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심리학자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뭐, 해줄 말이야 많죠. 제가 남편과 별거했을 때---“
이때 시갈라가 부드럽게 말을 가로막았다. “진짜로 답변을 들으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료 전문가들이 함께 있는 이 방에서 저와 대화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교수님께서는 지금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사적인 영역의 대화를 서슴없이 꺼내셨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시갈라는 그 심리학자가 기꺼이 자기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은 한 시간 동안 그들이 만든 분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갈라는 상대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었고 사람들이 자신의 치부나 취약한 부분을 끄집어낼 만한 질문을 던졌으며, 시갈라의 질문을 받은 사람은 역시 성의 있고 자세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시갈라는 그 자리에 있던 과학자들이 각자 세상을 보는 방식을 설명하도록 격려했고 그런 다음에는 시갈라 자신이 그 이야기를 정성껏 듣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상대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마다 시갈라는 본인의 감정을 함께 밝히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화의 환경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시갈라의 답변이었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와 소통했다는 착각이다“라고 했다. 과학자들은 대화 중에 상대방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사람의 몸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더 잘 듣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무엇을 묻느냐보다 어떻게 묻느냐가 더 중요하다.
의미 있는 대화를 하려면 ‘알아가는 대화(earing conversation)’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상대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배우고 또 반대로 상대 역시 나의 관점을 배우도록 도우는 것이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운을 부르는 인맥 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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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운을 부르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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