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로 숨진 19세 청년의 죽음을 빗대 2년여전 '지상의 세월호' 사고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작정 문 전 대표의 발언을 비난할 성질의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다만 그가 말한 '현 정권이 만든' 이라고 하는 부분만 빼면 그렇다는 얘기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쪽은, 백보를 양보해도, 박원순 서울시장에 있음음 이미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여기서, 왜 문 전대표를 무작정 비난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가 하면, 2년전 306명의 어린 생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비리와 부패사슬을 고스란히 보여준 부끄러운 민낯이었다면, 이번 구의역 19세 김 군의 사고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한 사고(思考)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일대 사건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썩은 정신구조라면 앞으로 306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수 천 수 만 젊은이들을 희생하고도 남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19세 김 군은 한국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정의로운, 그러면서도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돌이켜보자.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을. 노동을 하찮게 보는 우리 사회의 주류 지배층, 화이트컬러의 사고방식을. 번듯한 대학을 나와야만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든지, 대기업에 다니고 강남에 살아야 사는것같이 여기곤 하는 이 사회의 거짓된 관행이 얼마나 뿌리깊은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혹여라도 이런 잘못된 관행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한 것은, 과거 70년대 산업화시절로 되돌아가 다소 비속한 말로, '공돌이' '공순이'들이 주경야독하며 신분상승을 꾀하려했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던가.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들을 통해 '희망의 사다리'에 오르고자 했던 것이다.
손에 공구하나 들지 않고 시원한 사무실에서, 아니면 그저 서류상 입사된 것만으로도 4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가는 메피아들을 원망할 틈도 없이 시간에 쫒기며 스크린도어를 살펴야 했던 청년이었다.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했다. 만일 그가 죽지 않았더라도, 1년뒤 과연 정규직의 희망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모은 돈으로 대학 몇 학기나 다닐 수 있겠는가? 또 그렇게 대학을 나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백군데 이력서 내며 청년대학 백수가 그대로 그려지지 않는가?
그가 '죽음'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그저 아주 높은 신분상승, 계층상승이 아니라 작으나마 오르고자 했던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었을까? 이마저도 이루지 못할 사회라면 이미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는 죽은 사회일 것이다.
배부른 공기업 노조, 대기업 노조들이 이런 비정규직 혹은 '공돌이'격의 하급 노동자들의 심정을 알까? 절대로 모른다. 수조원의 혈세로 틀어막으며 살리려는 대우조선해양같은 회사가 경영을 잘못하고, 수주절벽에 이르고도 엉터리 경영으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노조는 파업결의를 해서 그저 노동총량 유지 명분만 지키려하는 것, 그 하나만 봐도 우리 사회는 이미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러고도 경영 책임자들이나, 관이나, 금융책임자들이나, 노조나 누구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없이 배만 불리면 그만이란 식이다.
만약 메피아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투입되지만 않았더라면,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계산을 하는 이도 있다.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는데, 그런 노동 환경은 차치하고라도,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19세 김 군은 지금 영계에서, 노동의 땀을 기억하며, 노동이 예술이 되고, 노동이 희망이 되는, 그래서 노동을 더 존중하는 그런 사회를 기약하면서 '희망의 사다리'에 오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