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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역사기행] 잃어버린 제국, 가야를 찾아서 ①

서울에서 김해로, 첫발에 앞서…가야의 뿔잔(角杯)


“선생님, 최근 가야사가 왜곡될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것 아세요?”

연재를 끝내고, 내 오랜 꿈이자 숙원인 인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까지의 불교미술 전래 대장정을 연구해나갈 참이었다. 

그런 차에 <시사뉴스> 기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가야사 복원이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전문가를 가장한 자칭 가야사 전문가들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가야사 연구 복원사업이 영·호남의 화합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를 대통령이 직접 밝힌 만큼 ‘가야’는 한동안 역사분야의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럴 때 실증적으로 가야를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사실 가야의 역사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근 600년간 지속된 오랜 역사를 나라다. 백제, 신라와 달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소국연합이라는 특성 때문에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기록도 매우 적어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간 고고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가야의 고분이 발굴되어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대 제국(諸國)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가야의 문화를 빨리 확인하고 싶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깝게 가야의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선 가야토기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토기 가운데 가장 조형미가 뛰어나고 곡선이 유려한 가야토기는 이를 제작하던 도공이 일본에 건너가 스에키(須惠器)라는 토기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해, 함안, 창원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의 다리는 알려진 대로 모두 유려한 곡선
을 가지고 있었다. 

시기가 올라가면서 그 형태가 경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신라의 영향력이 커진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수레모양의 토기, 짚신모양의 토기, 동물모양의 토기 등이 있어 당
시 장송의례(葬送議禮)와 미의식을 엿볼수 있었다.

토기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일명 각배(角杯)라고 하는 뿔잔이었다. 말머리로 끝을 장식한 뿔잔은 부산 동래복천동 고분에서 발견된 금관가야의 유물로 추정된다. 각배는 짐승의 뿔 모양을 본뜨거나 그 자체를 사용하여 만든 일종의 잔이다. 

서양에서는 리톤(rhyton)으로 불리며 기원전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사용된 술잔으로 동서교역을 통해 동방으로 전파되는데 페르시아(Persia)와 스키타이(Scythia)를 비롯한 유목민족이 주로 사용하였다.

리톤의 끝에는 주로 동물모양을 장식하는데 그 입이나 가슴에서 구멍이 있어 잔을 높이 들고 그 구멍을 통해 나오는 물이나 술을 받아먹는 방식이 특징이다.

가야의 각배는 전체적인 형태와 끝을 말머리로 장식하는 형식은 같지만 그 끝에 구멍이 없어 원래 각배의 의미는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각배가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제의적 의미로 사용된 것을 의미한다.

수레바퀴나 기마인물형 토기와 결합된 각배모습의 토기에서 이러한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각배가 서방계통의 유물이고 유목민족이 이를 수용하면서 권력층이 사용한 것을 인식하고 있던 가야에서는 각배를 권력자가 가지는 상징적 위세품(威勢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문제는 금관가야가 이를 어떻게 알고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 형식은 분명하게 중국이 아닌 서방계통 유물의 영향을 받았다. 비록 그 표현성에 있어서 화려함이 떨어지지만 직접 보거나 이를 본 사람의 말을 듣고 제작했음에 틀림없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제4대왕인 석탈해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하루는 탈해가 동구(東邱)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백의를 시켜 물을 구해오라 하였다. 백의가 물을 떠 가지고 오다가 중도에서 먼저 맛보고 드리려 하다가 그 각배가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탈해가 이를 꾸짖자 백의가 맹세해 말하기를 ‘이후에는 멀고 가까운 곳을 논할 것 없이 먼저 맛보지 않겠습니다’ 하니 비로소 그릇이 떨어졌다. 이로부터 백의가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당시 각배가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것과 권력자를 위한 것이라는 함의(含意)를 파악할 수 있다. 석탈해는 신라의 왕이 되지만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출신으로 ‘삼국유사’에는 가락국에 그리고 ‘삼국사기’에 는 금관국 바다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이 지금 김해인 금관가야였다고 하는 것이 흥미롭다. 신라에도 각배는 있지만 동물장식과 결합된 오리지널에 형식 가까운 각배는 금관가야 무덤에서 발견된 뿔잔이 유일하다. 그리고 고구려나 백제 그리고 중국에서는 이 같은 각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실제 유물과 문헌기록을 종합해볼 때 각배는 가야와 신라 모두 해로를 통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루트는 어디였을까?

각배에 관한 유일한 문헌자료인 석탈해 기록에 그가 출생한 다파나국(多婆那國)은 왜국(倭國)이 있는 곳에서 동북으로 1000리라고 되어있다. 그곳이 일본 동북쪽, 인도, 제주도, 대마도라는 등 많은 학설이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야와 신라에 유목민의 도래나 그들과의 무역거래가 있었다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위험은 낮추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동해루트를 주목하고 싶다. 현재 연해주지역은 고대 초원길의 동쪽 끝이었으며 유목민족의 활동무대였다. 

연해주에서 출발해 김해로 들어가는 가장 용이한 해상루트는 동해 연안을 따라 들어가는 동해루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해로를 통한 외래문화의 유입은 가야의 초대 왕인 김수로왕(42-199년)의 부인인 허황옥(33-189년)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황옥은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많은 종자(從者)를 거느리고 김해 남쪽 해안에 이르렀고 이에 수로왕은 많은 신하들을 보내어 맞으며 왕후로 삼았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김수로왕릉의 쌍어문과 연관지어서 인도-중국-가야를 연결 짓는 이른바 허황옥루트라는 학설로 이미 유명하다. 근거자료가 부족하여 추론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해로를 통한 외래문화의 유입이라는 점에서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면 화려한 장식을 걷어냈을 때 실체는 드러난다. 가야에는 이밖에도 로만글라스(romanglass)로 알려진 유리잔, 유목민이 사용하는 동복 등 외래계 유물이 발견되었고 신라의 것과 유사한 금관과 장신구 등도 있다. 신라에 비견되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 은 분명하고 앞으로 다각도로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년대가 있는 불상인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539년 고구려에서 조성된 작품이나 신라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불상이 발견된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는 당시 대가야 권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와 가야와의 관계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가야와 삼국간의 관계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가야사 복원 정책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가야 이외 지역은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각배를 통해 살펴봤듯 고대(古代)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교류가 활발했다. 때문에 한 국가나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연구도 그 이상 필요하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전공자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고대사 전반으로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더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짐을 꾸리고 짧지 않은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서울에서 김해까지가 그 첫발이 될것이다.






[커버] 남·북·미 3자 회담 북핵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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