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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잃어버린 제국, 가야를 찾아서 ②
파사석탑에 남은 허왕옥의 ‘세계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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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박웅준 성보문화재연구위원] 늦여름의 세찬 호우를 뚫고 김해로 향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답사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신기하게도 도착하자마자 비는 그치고 해가 간간이 비추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이후로도 이동 중에 비는 계속 내렸지만 답사를 하려고 밖을 나서면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내 조상님이 이번 가야지역 답사를 위해 돌봐주시는구나’라는 느낌이 여행 내내 떠나지 않았
다. 어머니가 김해 김씨인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김씨와 허씨, 한때 맺어질 수 없던 사연

처음 간곳은 김수로왕릉과 그의 부인인 허왕옥의 능이었다. 가야의 태조이자 김씨의 40%을 차지하는 김해 김씨의 시조. 사실관계를 떠나서라도 한국인 10명중 1명은 김수로왕을 조상으로 한다. 허왕옥은 그의 초대 왕후로, 널리 알려졌듯이 수로왕과 혼인을 위해 바다를 건너 인
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로 김해 허씨의 시조이다. 

둘 사이에서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2명이 어머니 성인 허씨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두 성은 지금까지 동성동본이라 하여 결혼을 기피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수로왕이 서기199년에 돌아가시니 대궐 동북쪽 평지에 빈궁(殯宮)을 세웠는데 높이가 한 길이고 둘레가 300보인데 거기에 장사 지내고 이름을 수릉왕(首陵王)이라고 했다 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빈궁이 봉분을 가진 묘라면 높이가 한길(약 2.4m)이고 둘레가 300보(약 540m)라면 지름이 170m인 거대한 규모이다. 신라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이 길이가 120m에
높이가 22m 정도라 불가능한 크기는 아니지만 넓이에 비에 높이가 낮아 둘레는 묘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로왕릉 ‘쌍어문’ 가야
인도 해로 통한 문화교류의 상징

‘고려사’에는 고려 문종 31년(1076)까지 정기적으로 제사도 지내고 봉분, 묘역의 나무, 부장품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조선시대 세종실록에는 ‘왕릉의 길 옆의 논 가운데에 아무런 보호시설도 없이 방치되어 그 위로 길이 나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며, 소나 말을 놓
아기르는 장소가 되었다’라고 하여 황폐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년)에는 임란때 왜구들이 수로왕릉을 파헤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기록한다.

“구덩이 안은 매우 넓었고 두개골은 구리 대야만큼 컸으며 관 바깥에 20세 정도인 2명의 미인이 있어서 안색이 살아있는 듯하였으나, 구덩이 바깥에 내놓고 해를 쪼이니 곧 녹아 없어졌는데 이는 아마 순장한 사람인 듯하다.” 왜구가 발견한 2명의 미인이 가야인의 미이라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이미 도굴되어 가야의 유물은 남아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안타까운 기록이다.

현재의 묘역은 임란 이후 서서히 정비되다가 정조 17년(1793년)에 건물을 신축하면서 완성되었다. 묘역의 정문인 숭화문(崇化門)과 가락루(駕洛樓)를 지나면 납릉심문(納陵心門)이 나온다. 이 문의 현판 좌우 공포에 있는 장식 판에는 가야의 정체성을 알려줄 그림이 있으니 유명한 쌍어문(雙魚紋)이다. 

이 쌍어문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정리하자면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문양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똑같은 쌍어문이 있고 그가 지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루트에 따라 이 쌍어문이 발견되기 때문에 금관가야의 상징으로도 전승되었다고 한다. 

김해에는 신어산(神魚山)이 있고 현존하는 신어(神魚)전승도 김해지역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수로왕릉의 쌍어문은 가야와 인도와의 해로를 통한 문화교류의 상징이자 가야 왕국의 심벌로 정착이 된 것이라 한다.

결국 이 쌍어문은 인도에서 온 허왕옥과 관련이 있다. 이 문양을 마음에 새기면서 허왕옥릉을 찾아갔다. 왕릉에서 1km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왕비릉은 규모는 작지만 쌍어문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유물이 전해지는데 바로 파사석탑(婆娑石塔)이다. 

이 파사석탑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각각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공주가 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으로 향하려 하다가 수신(水神)의 노함을 만나 돌아가서 부왕에게 아뢰니 부왕은 이 탑을 싣고 가라했다. 그제야 순조로이 바다를 건너 (금관국의) 남쪽 해안에 와서 정박했다. 

금관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일 때 시조 수로왕의 비 허황후 황옥이 후한 건무 24년 무신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탑은 4면이 5층으로 그 조각은 매우 기묘하며 돌은 옅은 무늬가 있고 그 질이 좋으므로 우리나라의 것이 이것이다. 본초란 책에 이른 닭의 볏의 피를 찍어서 시험한 것이 이것이다.”

“파사석탑은 호계사에 있으며 5층이다. 돌빛이 붉게 아롱졌으며 질은 좋으면서 약하고 조각한 것이 매우 기이하다. 전설에는 허왕후가 서역에서 올 때 이 탑을 배에 실어서 풍파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고대 기록 ‘파사’, 페르시아 아닌 인도 아유타일수도

이와 같이 파사석탑도 쌍어문과 같이 천축에서 온 유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돌의 재질이다. 붉은 무늬가 선명하여 흔히 보는 돌이 아니라 닭의 핏빛을 닮았다는 계혈석(鷄血石)과 유사하다. 중국 송나라때 가장 권위 있는 의약서인 증류본초(證類本草)에는 파사석을 성취석(醒酒石) 또는 마살석(婆薩石)으로도 불리며 해독작용이 탁월한 약재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한다. 주로 남해에서 호인(胡人)이 채취하여 무역품의 하나로 거래된 돌이라는데 그렇다면 탑의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담색이며 반점은 없거나 콩 같다고 하는데 허왕후의 파사석 외양과 일치하지 않는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파사석탑을 파사석으로 만든 탑으로 해석하여 당시 유행한 의약서를 참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파사석탑을 파사석이 아닌 파사의 석탑 또는 파사에서 만든 석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파사라는 지역을 추적해야 한다.

파사는 파사(波斯) 즉 페르시아라는 설도 있지만 기록에 의거하여 허왕옥의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유타는 산스크리트의 음역어이며 아유타(阿踰陀, 阿喩馱), 아비사 등 여러 개의 한자표기를 가진다. 아유타국은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 나오는데 인도 중부지방에 위치하고 불법이 활발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5세기 초에 인도를 다녀 온 법현의 기록인 법현전에는 아유타와 유사한 기록을 가진 사케타가 등장한다. 이 두 지역은 사실 같은 지역을 뜻하며 사케타에서 아유타로 개명이 됐다는 주장이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파사는 사케타 즉 아유타를 의미한다. 

사케타는 산스크리트 음역어로 사계다, 파계제, 파기타, 파시다, 비삭가 등으로 표기되는데 사는 파사(婆娑)의 파(娑)는 사(娑)의 오기로 볼 수 있고 사(娑)는 케타의 여러 음차 가운데(계다, 기다, 지다, 시다, 삭가 등)에서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유타와 사케타는 근접할 뿐 다른 지역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파사라는 지역이 중인도라는 점은 같기 때문에 파사가 지역 이름이라면 인도에서 온 석탑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인도에서 가야까지, 해상 문화 교류 흔적 찾아나서야 

아유타와 파사가 밀접한 관계에 있음도 파악할 수 있다.

<대당서역기>와 <법원주림>에는 비삭가국(鞞索迦國)이 나오는데 사케타를 음역한 도시 이름이며 필자는 이곳이 파사라고 생각한다. 여기 도성 남쪽에 절과 탑이 있는데 높이는 20여장이며 부처님께서 6년 동안 설법한 곳이며 부처님의 머리털과 손톱의 탑도 있으며 탑의 밑 부분과 모서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파사가 사케타라면 이 지역에 불탑조성이 활발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지역의 탑이 전해졌다면 인도의 탑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파사석탑은 화강암으로 추정되는 방형의 기단과 복발(覆鉢)형태의 석물위에 붉은 가로선 무늬가 있는 6개의 돌이 무심한 듯 얹혀 있다. 가장 큰 네모난 1단은 자세히 보니 각 면에 인공적으로 아치모양 감을 깍은 흔적이 있다. 각 면 하단에 4개씩 이단으로 감을 낸 것이 확실한데 2단 돌에도 같은 모습이 보인다. 즉 1단과 2단 돌은 기록과 같이 4면에 조각이 있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나머지는 훼손이 심하지만 4단에도 희미한 조각 흔적이 보여 기록의 4면 5층으로 구성된 것이 기록과 어느 정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탑의 원형은 어떠했을까.

이 탑에 대한 복원을 위한 노력이 없진 않았다. 이 탑에 애착을 갖고 연구한 허명철이라는 지역 향토사학자가 1989년 이 탑을 분해하였는데 3번째 돌에서 지름 10㎝, 깊이 6㎝의 사리공과 뚜껑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당국의 허락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전문기관이 아닌 일개 개인에 의해 해체되었다는 사실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어쨌든 그는 파사석탑이 인도불탑과 유사하다며 복원도를 공개했는데 현재 상태에서 거꾸로 되어있는 특이한 모양이다. 초기 인도불탑의 복발 위에 있는 상륜부의 형태를 보고 착안한 것으로 보이나 파사석탑 하부의 기단석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상륜부에 사리공이 있는 경우는 없으며 이것으로 층수를 나누지도 않았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있는 복원이라 생각된다.
 
인도에서 가장 유사한 형태는 현재 파키스탄 탁실라(Taxila)지역 조울리안(Jaulian) 유적의 일부 봉헌탑(votive stupa)이라 할 수 있다. 방형의 기단이 층을 이루며 쌓여있고 각 층에는 감실이 표현 되어있기 때문이다. 봉헌탑은 공덕을 쌓기 위한 탑으로 주로 중심 대탑 주변에 소규모로 조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파사석탑이 인도에서 왔다면 반드시 조울리안의 봉헌탑이 아닐지라도 이와 유사한 소형의 안정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쌍어문으로 돌아가면 물고기 문양 가운데 탑모양의 물체가 있다. 허왕후의 파사석탑을 묘사한 것으로도 추정하지만 그 형태는 인도의 것보다는 티벳의 불탑과 유사하다. 그림이 그려진 조선시대에 이미 파사석탑의 원형을 잃어서 당시 중국에서 유행한 라마탑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탑과는 다른 인도탑의 원형을 추구한 노력의 결과이며 파사석탑을 파사에서 온 석탑으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허왕후의 기록은 신화에 불과하며 이를 기반으로 재생산된 이야기는 역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애릭 홉스붐(Eric Hobsbawn)이 <만들어진 전통>에서 지적했듯이 잘못된 역사 복원과 무분별한 이미지 창조는 산업사회 이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가야사 관련 사업은 이러한 점을 경계해야 한다. 수로왕릉의 부침에서 알 수 있듯이 옛 기록도 이러한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남겨있는 유물은 진실을 말한다고 믿고 싶다. 앞서 가야에서만 발견되는 동물형 뿔잔이 해상교역의 산물임을 언급했듯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당시 문화교류의 실체를 파악하는 노력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허왕후의 파사석탑은 유일한 가야의 불교유물로 면밀한 조사와 재평가를 시도해야 한다.
 
허왕후릉을 나서고 시내로 가니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인근 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했다. 이 중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을 뒤로 하고 다시 가야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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