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1.14 (수)

  • 구름많음동두천 -2.9℃
  • 맑음강릉 5.8℃
  • 맑음서울 0.5℃
  • 맑음대전 4.3℃
  • 맑음대구 5.3℃
  • 맑음울산 8.2℃
  • 구름조금광주 7.4℃
  • 맑음부산 8.2℃
  • 흐림고창 6.8℃
  • 맑음제주 11.9℃
  • 구름많음강화 -1.2℃
  • 구름많음보은 1.9℃
  • 맑음금산 5.1℃
  • 맑음강진군 8.6℃
  • 맑음경주시 6.0℃
  • 맑음거제 6.5℃
기상청 제공

박웅준의 역사기행

삼추가연, 조선 여인들의 우울

URL복사


[시사뉴스 박웅준 칼럼니스트] 조선이 신봉했던 성리학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존천리멸인욕(存天理滅人欲)’을 요구했다. 개인의 욕망은 없애야 했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충신, 효행, 열녀 등의 모범을 강조하고 성(性)을 억제하여 예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시대 전반의 흐름이었다. 

욕망은 정(精)과 욕(欲)이었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했으며, 이른바 선비라고 불리는 사대부들은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이 때문인지 조선에서 강간은 살인에 필적할 정도로 무거운 범죄였다. <대명률>의 규정에 따라 강간이 성립되면 신분과 관계없이 교수형을 처했고 강간미수는 장형과 유배형이 함께 부과되었다.

조선 전반기에는 물리력이 동원되지 않고 단순히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정황만으로 강간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 12년 10월25일 형조에서 강간범인 신통례를 왕에게 데려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목 감역관(斫木監役官) 호군(護軍) 신통례(申通禮)가 관비(官婢) 고음덕(古音德)을 강간하였사오니, 율에 의하여 교형에 처하시고, 고음덕은 처음에는 거절하여 소리를 내어 울었으니 죄에 저촉되지 않을 듯하오나, 그 뒤에는 제 스스로 와서 서로 간음하였으니, 화간(和奸)으로서 논하여 장(杖) 90대를 처하는 것이 마땅하오나, 다만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남자는 강간으로, 여자에게는 화간으로 다루어 죄를 다르게 처결한다면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의문스럽습니다. 성상께서 결정을 내려 주시옵소서(세종실록 권20).” 

이에 세종은 남자에게는 장형을 여자에게는 별다른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 여자가 울었다는 이유만으로 강간미수에 준하는 형벌을 내린 것이다. 이 외에도 실록에서 유사한 기록을 다수 볼 수 있다. 이렇게 강력하던 법의 집행이 조선 후반 이후에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성리학은 더욱 발달하고 강간에 관한 법은참수형에 처하는 것으로 강화되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해지고 오히려 강간 사건이 늘어난다. 

대부분 관인이 직위를 이용하거나 위세를 빌어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피지배층 여성을 겁탈하는 사건이었다. 한성부 좌윤이 숙종 5년에 “요즘 세력 있는 사람들은 남의 아내나 첩을 빼앗아 간음하고 속이며 온갖 추행을 자행”한다고 상소를 올릴 만큼 권력층의 강간 사건이 만연했다. 예전 유행한 사극영화에서 양반 주인에게 겁탈당하는 노비 여성의 기구한 운명이라는 스토리가 이 시기에 정형화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권력을 이용해 빠져나가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예외적으로 여인이 강간에 저항하다 수치심으로 자살한 경우에만 법대로 처벌했다. 이 같은 현상은 사건의 책임을 여성으로 전가한 결과다. 

조선을 지배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절제가 여성의 욕망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었다고 정당화시켰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피해 여성의 자살밖에 없었다. 성매매의 우울함만이 맴도는 삼추가연 통치이념에 변화는 없었고 법은 강화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조선 시대 사대부는 욕망을 극복하지 못했고 국가와 사회는 이를 묵인했다. 이를 사실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조선말 유명한 풍속화가인 신윤복이다. 그는 많은 작품을 통해 사대부의 이런 행태를 풍자하고 조선적 에로티시즘을 보여줬다. 그의 작품 가운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작품이 있다. 

삼추가연(三秋佳緣)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가을 세 명의 아름다운 인연’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좌측의 젊은 양반과 가운데 노파 그리고 뒤돌아 앉아있는 젊은 여성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이들이 인연으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은 웃옷을 벗고 있고 바지는 입고 있는지 벗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노파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남성에게 올리고 있고 우측의 여인은 표정은 알 수 없으나 힘이 빠진 듯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듯하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젊은 남녀 사이에 관계가 이루어졌고(또는 이루어질 것이고) 노파는 이를 중재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조선말 애정 소설인 절화기담(折花奇談)에는 이 그림과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남자주인공은 한양의 이생(李生)으로, 풍채가 뛰어나며 시문도 제법 아는 일대의 재자(才子)이다. 여자주인공인 순매(舜梅)는 방씨네 계집종으로, 이미 머리를 얹은 지 몇 해가 된 열 일곱 살의 절세미인이다. 어느 날 이생이 우물가에서 순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만날 길이 없어 마음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이생이 얹혀사는 집에 말 잘하고 중매를 잘 서는 노파가 있어, 이생은 그 노파에게 순매와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노파가 중간에서 순매와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약속이 번번이 무산되고 만다.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야 주인공들은 한 차례 정사를 나누고 헤어지게 된다. 장르가 다른 두 작품에 공통된 남녀 관계를 주선하는 노파와 양반, 여종의 구도는 유사하다. 그러나 순매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이고 그림에는 소설과 같은 순애보는 볼 수 없다.

그림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이 기녀라는 주장도 있다. 젊은 양반이 재물을 주고 기녀의 초야권을 사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녀는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러기엔 일이 너무 성급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리고 실내가 아닌 곳에서 이러한 일을 벌인다는 것은 맞
지 않는다. 아마도 신윤복은 이 그림을 통해 단순히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대부들의 이중성과 이를 묵인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른 신윤복의 작품은 장면을 묘사할 때 대부분 구체적인 장소를 나타내고 매우 사실적이나 이 작품에는 국화밭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장소로 표현된다. 그 공간에서 옷을 벗은 남자는 유교적 가치를 벗어버린 사대부를 상징한다. 

그리고 젊은 여인의 힘없는 자세는 저항할 수 없는 신분이란 것을, 보이지 않는 얼굴은 특정인이 아닌 조선의 여성이란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운데 노파는 이러한 양반의 행태를 묵시적으로 용인하는 당시 사회 자체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노파는
음흉한 미소와 남자에게 술을 권하는 모습에서도 그 의도가 확인된다. 세 명의 아름다운 인연은 결국 반어법이다.

지금도 우리는 유교적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OECD 34개국 가운데 주요 금기(낙태, 매춘, 사촌간 결혼, 동성간 결혼, 포르노 등)를 유일하게 모두 금지하는 나라이자, 사회적으로도 성에 관한 관념이 보수적이다. 비록 표면적일지라도 다른 나라에 비해 욕망에 대한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순 없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 번쯤 그 가치를 되돌아 보는 것도 필요하다. 진짜로 세 명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지기 위하여.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당정, 공소청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에 사실상 합의...“수사·기소 분리 원칙 지켜지게 최선”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정부가 12일 입법예고한 ‘공소청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법안’에 대해 범여권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가 모두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도 부여하지 않는 것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정청래 당대표는 13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공소청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법안에 대해 “검찰개혁과 관련해 수사·기소 분리가 대원칙이고 검찰청을 폐지하면 검사는 공소 유지만 하라는 것이다”라며 “이런 기본 정신에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게 민주당 의원 대부분의 생각이고 아마 그것대로 (입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청래 당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찰개혁 정부법안은 민주당에서 충분하게 토론하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수정하겠다”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당과 정부 사이의 이견은 없다”며“명실상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검찰개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찰개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사형 구형...“전두환보다 더 엄정 단죄, 12·3비상계엄 중대한 헌법질서 파괴”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1심 선고는 오는 2월 19일 오후 3시에 있을 예정이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과 제25형사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무기징역을, 같은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부 사령관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조은석 특검팀은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징역 20년을, 김봉식 전 서울특별시경찰청장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현행 형법 제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附和隨行)하거나

문화

더보기
뇌와 감정의 관계에 관한 탐구... 진화의 흔적, 삶의 기억, 뇌의 회로, 이야기의 집합체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북라이프가 노벨 생리의학상 유력 후보이자 세계적 과학자인 칼 다이서로스 교수의 첫 책 ‘감정의 기원’을 출간했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낼까? 슬픔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떤 사람은 왜 갑자기 달라지는가? 왜 우리는 때때로 자신을 해치고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는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이자 정신과 임상의이기도 한 칼 다이서로스 교수는 이 모든 질문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연구실과 삶의 가장 치열한 현장인 병실을 오간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의 기록이다. ‘감정의 기원’은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칼 다이서로스 교수의 특이한 경력이 장점으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뇌의 내부 회로에 대한 냉철한 지식과 환자에 대한 깊은 공감을 연결해 정신 질환이 어떻게 발생하고 또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는지,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온전한 마음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지를 서술한다. 칼 다이서로스 교수는 ‘감정의 기원’을 통해 교통사고 이후 눈물이 사라진 남자,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성격이 확 바뀐 정년퇴직자, 남들이 자기 머리를 해킹하고 있다고 확신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새해에도 계속 목도하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세상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대통령이 되었으나 2년10개월여의 재임기간 동안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린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특검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 사건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선고가 어떻게 날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무기징역은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너진 ‘공정과 상식’은 추악한 과거로 돌리고 병오년 새해에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하며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새해 벽두부터 터져 나온 한 장관 후보자의 갑질, 폭언, 투기 등으로 인한 자질 논란과 정치권 인사들의 공천헌금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 대장동 일당들의 깡통 계좌 등을 지켜보며 우리는 깊은 회의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평생을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를 등불 삼아 살아온 이들이 “불법과 비리를 멀리하고 공명정대하게 살라”, “과유불급을 가슴에 새기고 욕심내지 마라”, “남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보다 자존감을 키워라”라고 강조해 온 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법을 만드는 이들과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정작 그 법과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