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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임산 칼럼] “평생의 공부가 젊게 만든다”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공부할 것

[시사뉴스 임산 칼럼니스트]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여덟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함부르크에 있는 면제품 수출 회사에 견습공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공무원, 교수, 변호사 그리고 의사들을 배출한 집안이었는데 드러커는 부친의 뜻을 헤아려 당시 함부르크 법과 대학에도 등록을 한다. 그 당시 대학은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할 필요가 없었고, 조교를 통해 대출도 쉬웠기 때문에 견습생 생활과 대학생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대학생은 팔리지 않은 가장 값싼 좌석에서 오페라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는데, 견습공일을 마치고 무료로 오페라를 관람하던 어느 날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e, 1813~1901)의 오페라, 폴스타프(Falstaff)를 보게 된다. 그날 이후 폴스타프의 매력에 빠져든 드러커는 오페라를 관람한 후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다 깜짝 놀란다. 그토록 명랑하고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가 여든 살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건강한 사람의 평균 수명도 50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80세란 나이는 흔한 나이가 아니었다. 그 날 드러커는 베르디가 직접 쓴 글을 읽었는데 누군가 베르디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당신이, 왜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는가?”

그 때 베르디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습니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디에 깊은 영감을 받은 드러커는 남은 인생과 저술활동 가운데, 베르디가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완벽을 추구하며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 때 그 심정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몇 년 뒤, 드러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증권 회사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데 1929년 10월 뉴욕 증권 시장이 붕괴되고 그가 근무하던 증권회사도 파산하게 되면서 정확히 스무 살 되던 날에 프랑크푸르트 최대 신문사에 금융 및 외교 담당 기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당시 그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법과 대학으로 전학을 했는데 당시 유럽에서는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학적을 옮기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했다.

법학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드러커는 퇴근 후 남은 오후 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면서 자기만의 공부법을 개발해서 활용한다. 그는 3년 혹은 4년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해서 공부했는데, 그 주제는 통계학, 중세 역사,일본 미술, 경제학 등 매우 다양했다. 물론 3년 정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분야를 완전히 터득할 수는 없겠지만, 그 분야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 후 드러커는 200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가지 60년이 넘게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새로운 분야를 공부했다. 이 방법으로 그는 상당한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새로운 주제,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 등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공부한 모든 주제들이 각기 다른 가정과 다른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대한나노의학회가 주최하는 '바이오나노메디신쌀롱'에 참석했다. 바이오, 헬스케어, 유전체 플랫폼 등 생명과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은 '허혈성 질환 치료를 위한 나노의약품 개발'이라는 테마로 전북대 정환정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이번 모임에 새로 참석한 지인중 한 분은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과 치의학을 복수전공한 독특한 커리어를 지녔다. 늘 그렇지만 이 모임의 백미는 발표 후에 이어지는 토론이다. 

가끔 바쁘다며 토론에 참석 안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문용어로 'PEST 분석(외부환경분석)'은 "기업이 무엇으로 돈을 벌 것인가?"를 고민할 때 경영자들이 관찰하고 분석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드러커 선생은 이것을 'Business Theory'라고 명명했는데 '사업이론'이라고도 번역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을 '돈 버는 이론'이라고도 부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인문사회계열 출신으로 지난해 미래의료포럼 위원으로 초대받아 의료분야 혁신을 위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당시 위원장이셨던 대한나노의학회 강건욱 회장의 제안으로 한 달에 한 번 바이오 관련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생명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맛이 솔솔하다. 

어떤 분이 경영학 창시자 피터 드러커 선생에게 늙지 않는 비결을 물었을 때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뇌리를 스쳐간다. 

"평생의 공부가 마음과 몸을 젊게 만든다." 






[수원 태극기 시위대後] “네티즌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고…”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나들이를 가던 일가족이 수원역 태극기 시위대에 폭행을 당한 사건이많은 파장을 일으켰던 가운데 폭행 피해자 이하진 씨(30세)가 직접 인터뷰에 응했다. (이 기사는 시사뉴스 525 4.3일자에 게재됨.) 본지가 최초 보도한 이 사건은 주요 방송 및 언론, 인터넷, SNS로 퍼져나가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취재진이 다시 찾은 날, 이 씨는 여전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심경을 밝혔다. Q: 수원 중부경찰서에서 폭행 혐의자들을 찾았다고 하는데 -인터넷에 올라왔던 폭행 영상을 통해 가해자 4명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들었다. 특수상해, 모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고발을 준비 중이다. Q: 지금 경찰을 상대로도 고소를 준비 중인걸로 안다.-맞다. 현행범체포방해, 직무유기 건이다. Q: 변호사 선임 등 비용이 만만찮을 텐데-(한숨) 천만원이 넘는다고 들었다. 내 직업이 마술사이다. 그런데 시위대의 폭행으로 손을 다쳐 공연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Q: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 이렇게(고소) 까지 하는 이유는- 폭력적인 시위는 근절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위대로부터 두들겨 맞으면서도 내가 확보한 가해자를


[시사칼럼] 인간은 죽을 때 가장 순수해진다
[시사뉴스 민병홍 칼럼니스트] 인간은 죽을 때 가장 순수해 진다고 한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작금의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빈손이다. 인간은 약관까지 세상을 살아갈 준비기간을 거쳐 50년의 사회생활을 하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고희(古稀)가 되면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생활을 정리하면서 살았던 사회에 족적을 남기려 인사유명(人死有名) 호사유피(虎死留皮) 한다. 후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덕도 쌓아 자녀들에게 남기고 간다. 이것이 하늘의 도이고 인간의 본성이다. 김재규, 그는 경북 선산에서 1926년 3월6일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 동기생의 인연으로 중앙정보부장 재직 중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갈등과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박정희에게 실망하며 결국 10·26 방아쇠를 당겼고 1980년5월24일 신군부에 의해 55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이다. 군사재판에 회부된 김재규는 재판과정과 사형집행 직전까지 '10·26은 민주회복국민혁명' 임 을 시종일관 주장하였다. 김재규는 박정

[특집ㅣ양평군] 김선교 군수 “양평은 살고 싶은 도시, 누구나 행복한 도시”
[시사뉴스 양평=강기호 기자] 빼곡하게 들어선 빌딩들, 답답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사는 것은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이러한 로망을 반영한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가 최근 조사돼 발표됐다. 제주도와 강원도 속초시에 이어 경기도 양평군이 3위에 꼽혔다. 이어 강릉과 춘천, 원주와 여수, 용인과 파주, 천안 순으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이러한 평가와 함께 ‘누구나 살기 좋은 도시’,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건강한 도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양평의 모습을 재조명해본다. 천혜의 자연환경 사통팔달의 교통망은 보너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일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천혜의 자연환경은 필수다. 그 중에서도 배산임수(背山臨 水)의 입지는 주거 지역으로서 최고로 손꼽히며 양평에서는 듬직한 용문산을 등지고, 수려한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와 함께 서울과 강원도를 잇는 제2영동고속도로와 충청 이남의 내륙지방을 연결하는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쾌적한 주거여건 조성에 한 몫하고 있다. 문산에서 서울을 거쳐 지평에 이르는 경의중앙선도 주민의 교통복지 실현에 기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