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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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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모뉴먼트로부터 인공지능 예술까지

국가 주도 미술로부터 공동체·개인의 내밀한 예술 세계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형 미술의 등장 예감.

[시사뉴스 김성호 평론가] 1988년 이후의 한국미술은 ‘88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 국가 행사로부터 기술된다.  ‘서울올림픽조각공원’은 이러한 국가 행사의 산물이다. 이것은 종합적 테마를 기반으로 다양한 체육, 문화, 예술 시설들을 구축해서 ‘서울시민들에게 예술 속 쉼터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명목을 내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허허벌판에 문화의 위상을 급조해서 구축하려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부터 잉태했던 80년대 말-90년대의 다양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1972년 입안된 일명 ‘1% 법’이라는 건축법은 어떠한가? 이것은 1995년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의무화되면서 예술 지원을 도모했으나, 독재 정권 시대 창궐했던 영웅을 테마로 한 조악한 초상 조각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연하는 ‘미술장식품 제도’로 변질되었다는 비판 또한 없지 않다.


1990년대 시작된 지방자치는 미술관, 공연장, 조각공원과 같은 하드웨어적 시설 구축에 집중했는데, 당시의 예술 행정은 예술의 껍데기만을 만들었다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1988년 이후 한국의 공공미술은 이상적 담론과 실제가 엇박자 속에서 실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창립으로 촉발된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민중미술’은 군사 독재 시대의 희망이었다. 민중미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해 내달렸던 20세기 서구의 미술을 특별한 비판적 성찰 없이 모방하고 이식하기에 급급했던 1970년대까지의 한국미술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비주류의 민중미술과 제도권의 모더니즘 미술의 대립의 시대를 거치면서, 양측 모두에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은 하나의 화두였다. 197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은 사대부의 문인화적 전통을 끌어안고, 1980년대 이후의 민중미술은 서민의 민화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대립했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의 담론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기치를 높이는데 공히 기여했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한 백남준의 위성아트프로젝트는 한국에 비디오아트를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1993년 호암갤러리의 ‘미국 포스트모던 대표작가 4인전’은 한국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을 상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몰아친 X세대라 호칭되는 1960-70년대 출생의 신세대 미술가들의 등장은 국내 미술 현장을 다원주의로 물들이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들은 20대에 문민정부를 맞이하고 80년대 이후의 해외여행 자율화의 수혜를 입고 유학을 다녀오기 시작한 세대였다.


특히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위시로 오늘날 한국에 ‘비엔날레 천국’을 도래케 한 여러 국제전이나 우후죽순 생겨난 블록버스터는 국내의 미술 현장을 전통의 미술 장르뿐만 아니라 대형의 설치 언어와 더불어 커뮤니티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와 같은 다양한 예술 유형을 실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8년 이후의 한국미술 현장이 언제나 발전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올림픽 이후 해외 미술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더불어 화랑의 급증은 해외 미술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게 만들었지만, 1992년의 양도소득세 파동과 1997년 이후의 외환위기는 미술시장의 장기적 침체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한국미술 발전의 자양분이었다. 2000년대 단색화의 재조명과 2010년대 해외 소개를 통한 한국 미술시장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나, 홍익대와 서울대의 고착화된 대립을 벗고 다원화된 중심축이 자리한 오늘날 미술 현장은 다양한 미술 인구의 급속한 성장을 맞이했다.


게다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상용화된 2000년대 이후의 미술은 이제 웹아트, 디지털아트, 모바일아트를 넘어 첨단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미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융복합예술 세계의 지평을 열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미술이 앞으로 30년 이후에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 양상에 대한 진단은 제각각일지라도, 한국 미술이 세계의 미술을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할 미래 또한 머지않았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폼페이오-김영철 뉴욕회담 무산…‘인권ㆍ비핵화 논의’ 부담?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뉴욕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북미고위급회담 무산되면서 그 배경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현지시간 8일 북미 고위급회담을 개최키로 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현지시간 6일 돌연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 관리들과의 회담은 차후에 개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북미고위급회담 연기와 관련해 “북측에서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는 게 미국 측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이번 북미고위급 회담이 취소된 여러 말들이 정치권 사이에서 오가고 있지만, 실제 원인은 뚜렷하지 않아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체로 미국측이 제기한 북한 인권 문제 및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 요구에 따른 부담이 북한 측으로서는 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실제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국무부 당국자는 “미국은 북한 정부가 저지르는 지독한 인권침해와 유린에 깊이 우려한다”며 “북한 지도부의 책임을 계속 추궁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제


‘스프링쿨러無’ 종로고시원 화재 6명死… 밀양참극 잊었나
[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9일 오전 5시께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8시40분 기준 6명이 사망하고 18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상자 대부분은 50대 후반~70대 초반으로, 고령자인 만큼 부상자중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부상자들은 한강성심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 병원 등으로 실려갔다. 목격자에 따르면 소방당국의 출동은 5분 내로 이뤄져 3층 고시원과 옥탑에 거주하던 18명을 구조했다. 불도 소방대원 173명과 경찰 40명 등 총 236명이 투입돼 오전 7시께 꺼졌다. 이처럼 소방당국과 경찰들의 신속한 대응 및 처리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원인중 하나로 스프링클러의 부재가 거론되고 있다. 소방관계자는 “건물이 노후화됐고 스프링클러가 없었다”며 “비상탈출구 개념의 완강기가 있었지만 거주자들이 당황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도 스프링클러 미설치에 따른 인재(人災)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사망 37명에 중경상 80여명이라는 대규모의 사상자를 낳았다. 당시 정부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권덕철 차


[간단칼럼] 동물 살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인류는 다른 생물들의 희생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좀 더 애정을 갖고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귀여운 동물이나 포유류에 한해서 동물학대를 논의할 뿐 다른 종류의 희생이나 학대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들은 대부분 피장파장의 오류와 현실성 문제로서 반박된다. 심지어 일부는 “개미까지 죽이는 것조차 처벌한다면 처벌 안 당할 사람이 있겠는가? 단속 자체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부터 점차 동물학대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모순되게도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곤충을 죽이는 행위도 법으로 처벌하면 좋겠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을 살해한 사람이 “너는 개미를 밟아 죽였으니 내가 동물 죽이는 것에 뭐라 하지 말라”며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논리로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려 든다면 그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피장파장의 오류일 뿐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형성은 불가피한다. 동물을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이 물리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 함게 존재하는 한 서로의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