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또는 윗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범죄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막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바로 그러한 사랑을 행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의 일입니다. 소년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나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다윗은 원래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이스라엘과 이방 족속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믿음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요.
사울왕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다윗을 매우 기뻐하여 처음에는 군대의 장관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그날 이후로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사울왕의 시기심은 심해져 다윗을 죽이려고 무리하게 전쟁에 내보내기도 하고, 그의 집까지 군사를 보내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을 애매히 죽이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왕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삼상 19:4~5).
만약 여러분이 요나단과 같은 입장이라면 누구 편을 드시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아버지요, 한 나라의 왕이니 사울왕의 말을 거역하고 친구 다윗을 옹호하는 것은 불효이자 불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이미 하나님의 싫어하신 바가 되었고 다윗이 다음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 뜻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다윗을 돕고자 합니다. 살기등등하여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왕을 막기 위해 계속하여 간청하였습니다. 아버지 사울왕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어찌하든 더 큰 악을 행치 않도록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의 선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단지 아버지의 범죄를 막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악을 행할 때에 눈을 돌리고 악한 사람 곁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더욱 큰 고통을 받지요. 아버지 사울왕으로 인해 요나단은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녀로서의 도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리신 것을 알았고, 그분이 외면하신 악인과 함께하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왕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생사를 함께함으로 도리를 다했던 것은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도 도리를 좇아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선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나단은 자녀 입장에서 멸망의 길로 가는 아버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함께한 것입니다.
우리도 참된 사랑을 소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사심 없이 바른 길을 좇아 행하며, 상대가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사랑으로 권면하며 힘써 막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글: 이재록 목사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