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부탁받은 일이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니 결코 동참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대로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일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성경상 인물로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유다인으로서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사촌 모르드개가 부탁을 합니다.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을 말살하려고 하니 왕에게 나가 간청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왕 앞에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고,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며 왕 앞에 나가기를 권면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 결국 멸절 위기의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며 그 결과도 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부모 없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고, 에스더 역시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신뢰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부탁까지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사실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 원수지간이 되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위치였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가를 버리시고 새로이 왕을 삼기로 결정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버지인 사울왕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다윗은 요나단에게 왕의 동정을 살펴 달라고 청합니다. 요나단은 쾌히 승낙하고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 사울의 의중을 살펴보니 다윗에게 향한 분노가 여전함을 발견합니다.
요나단은 이러한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주었고, 다윗은 피신하여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다윗은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왕에게 속한 모든 재산을 도로 주었습니다. 또한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자신을 생명처럼 사랑한 친구의 아들이니 친아들처럼 극진히 대한 것입니다.
에스더와 요나단은 선 가운데 자기 유익이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상대의 청을 들어 주었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자녀가 늘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면, 부모는 자녀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을 신뢰하시므로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신뢰를 얻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신뢰를 깨지 않고 응답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편에서 신뢰를 깨지 않는 한 반드시 약속대로 축복하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마태복음 27:43)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