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승환 기자] ‘한땐 그도 잘나가는 그룹 회장님’
지난 달 20일 서울중앙지법 506호 법정.
초점 잃은 퀭한 눈동자, 어리둥절한 표정, 감지 못한 듯 헝클어진 백발.
비둘기색 수의를 입은 노인이 법정으로 들어왔다.
“인적사항을 확인하겠습니다. 피고,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말씀해 보세요.”
노인은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답변하지 못했다.
“피고, 안 들려요? 보청기 안 가져왔어요?”
친절히 마이크 볼륨을 높여준 판사 덕에 그제야 노인은 답변할 수 있었다. 비록 흔들리는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였지만.
검사가 공소사실 요지를 낭독할 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에 잠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땐 재계 10대에도 들었던 DB그룹 김준기 전 회장의 첫 재판이 12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나는 완숙한 여자가 좋더라.”
공소 내용은 흡사 포르노 같았다.
음담패설을 쏟아 붓고는 "속옷을 갈아 입혀 달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성폭력 5회와 성추행 8회.
김 회장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별장에서 가사도우미를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비서로서 내 기를 세워 줄 테냐?”
2017년 2월부턴 욕정의 대상을 비서로 바꿨다.
6개월간 이어진 29회의 성추행.
“피해자들의 기억을 대체로 인정한다. 다만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믿었다.”
변호인은 성폭행과 추행에 관한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지만 "피해자 동의가 있었기에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합의과정에서 발생했던 피고와 피해자와의 평소 관계를 증거로 채택해 달라.”
변호인은 검찰 측 증거엔 동의하지만 김 전 회장과 피해자들의 관계는 해명할 필요가 있다며 전 비서실장 등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과연 가사도우미와 비서가 70대 노인과의 성관계를 동의했을까?
증인심문은 1월 21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