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르누아르, 클림트, 앵그르의 명작 속 여인들이 왕눈이 소녀 캐릭터로 거듭났다. 고려 불화의 변신도 눈길을 끈다. 한국의 대표적 팝아티스트인 마리킴(43)의 개인전이 열리는 가나아트센터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은 만화에나 나올법한 크고 반짝이는 큰 두 눈, 아이돌(Eyedoll)을 가진 명화 속 주인공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전시는 31일까지.
아이돌(Eyedoll)은 유난히 강조된 두 눈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 다양한 심리를 꿰뚫어보는 것 같다.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굵은 선, 강렬한 형상의 개성적인 얼굴로 바뀐 명화들과 고려 불화들은 마치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기도 하다.
전시회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켜온 마리킴이 이번엔 세계적 명작을 차용한 오마주(hommage) 작품들을 내걸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그림 '물 조리개를 든 소녀'를 비롯해, 르네상스 대표 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흰 담비를 안은 여인', 프랑스 신고전주의 초상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이상적 여인의 초상’ 등 명화 15점과 일본 도쿄 신사 센소지가 소장하고 있는 고려 불화 중 으뜸작인 ‘수월관음도’ 등이 마리킴의 아이돌(Eyedoll) 캐릭터와 만나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났다.
오마주(hommage)란 원작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특정부분을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명화 원작의 아우라에 그만의 상상력과 현대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구글에서 찾은 명화 이미지를 바탕으로 컴퓨터에서 그림을 그린 후 인쇄해 물감을 칠하는 절차를 택했다.
일부 관람객들은 작가에게 "명화를 그냥 가져다 써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그 물음에 대해 작가 마리킴은 "나는 예술작품을 훔치지 않았고 예술가는 훔칠 수도 없으니 여기서 내가 훔친 것은 예술이라고 봐야 하겠다”면서 “작품 속에 원작 작가 서명까지 있는 그대로 그려 넣는 것으로써 작가의 작품임을 표현하는 것이 오마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발언이나, “예술작품의 근원이 되는 것은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이라는 독일 실존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이 답이 될 수 있겠다.
명화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한다
마리킴은 '왜'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인 유명 작품을 가져와 작품화했을까.
그는 당당히 말한다. “현대적이고 만화적인 것이 명화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또 ‘미술작품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등 명화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가 눈 큰 캐릭터(Eyedoll)를 그리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해 따라 그리기 시작했단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 명작에 대한 오마주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이 쉽게 보기 힘든 해외 명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작가는 “만화와 회화그리고 기술을 결합한 형태의 작품속에는 아이돌(EYEDOLL)이란 이름의, 로봇같이 복제된 얼굴을 한 소녀들은 바비 인형처럼 각기 다른 옷이 입혀져 각각의 유니크한 작품이라고 주장되는 그림들 속으로 들어가 여러가지 매체로 변형 또는 조작되어 갤러리에 전시되는 만큼 내 작품에 제의적 의미에서의 ‘아우라’는 붕괴된다”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인터넷 홍보로 억만장자 컬렉터도 팬으로
마리킴은 호주 멜버른 공대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했다. 석사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 작품을 만들었지만 판매되지 않자, 2007년부터 인터넷 블로그에 자신의 작품을 수백 개 씩 올렸다. SNS, 인스타그램 홍보 시장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서 인스타그램 회원수가 10만이 넘어갈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해외의 억만장자 기업인과 사교계 유명인사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사기 시작했다. 기존 미술품 유통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도전이었지만, 그로 인해 미술품 시장이 넓어진 셈이다.
유명 인사들이나 사교계 유명인사들은 자신이 소유한 마리킴의 작품을 자발적으로 홍보했고 상하이, 홍콩, LA, 런던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작품은 매번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소더비 인스티튜트 예술 대학원의 학과장 이아인 로버트슨은 이러한 것을 마리킴 현상이라 말하고 “단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뜬 마리킴의 마네킹들은 멋진 신세계의 목표 고객”이라 말하기도 했다.
마리킴은 오는 9월 독일 베를린에서도 명작 시리즈의 오마주 작품으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오토딕스 등 독일 작가들의 명작들을 오마주한 작품을 소개할 예정인데, 독일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좋아해 작가는 ‘미인도’ 등도 전시할 예정이다.
<마리킴, 미니 인터뷰>
Q. 이번 전시에 명화와 고려 불화를 오마주한 기준은 무엇인가.
A. 기준은 별 다른 것이 없다. 단지 유명하면서 많이 알려진 것이 기준이라면 기준이었다. 고려 불화를 선택한 것은 한국의 명화를 찾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의 조충도 같은 벌레를 그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꽃을 피웠던 시대인 고려의 작품들을 골랐다. 특히 예전에 관람한 전시인 ‘고려불화대전’의 책자를 참고해 오마주할 작품을 선택했다.
Q.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양자학이라든지 과학에 관심이 많아 책을 통해 많은 공부를 했다. 과학 등 현대적인 것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불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이번에 ‘수월관음도’를 작업하면서 여러모로 많은 공부가 되었다. 관음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 평화의 마음이라는 것에서 충분히 여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국이나 동남아 등에서는 이처럼 여성을 표현한 것이 많은데, 한국에는 제대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
Q.처음 아이돌 캐릭터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아이돌 캐릭터와 이번 오마주의 만남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나.
A.나는 미술전공자는 아니다. 눈 큰 캐릭터(아이돌)를 그린 계기는 어릴 때부터 단지 만화를 좋아해 따라 그리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번 명화 오마쥬를 하면서 현대적이고 만화적인 것이 명화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고, 미술작품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등의 명화에 대한 편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한 명화 오마쥬를 하면서도 이러한 기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해외 명화를 쉽게 볼 수 없다는 것도 있어, 되도록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를 보여주려 했다.
Q.불화와 작가의 현대적 요소를 접목시켰을 때, 어떤 결과의 이미지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나.
A.쉽게 나오는 이미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도 비슷하겠지만, 하나의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작가 중에는 나와 같은 오마주 작업을 하는 작가가 없으니,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것이라 생각했다. 불화에 대한 오마주라기 보다, 그 시대에 대한 오마주라 생각해 주길 바란다. 유럽의 경우에도 많은 명화들이 종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Q. 금박이 화려한 클림트를 오마주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클림트 그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A. 클림트의 작품 속 여성들을 그동안 늘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예전부터 좋아했다. 그의 작품 속 금박처럼 화려함을 좋아했고 또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매우 흥미롭고 즐겁게 작업했고, 결과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클림트를 오마주한 작품은 이미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Q. 대학때부터 비디오, 단편 영화를 찍었는데,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 계획인가?
A.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작품 속에도 접목시키고 있다. 대학에서 세부전공으로 애니메이션과 영상 영화를 공부했다. 직접 출연, 편집, 감독한 작품들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출연한 영화를 전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