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모든 것을 믿어 줍니다. 부부간에도 진정 사랑하면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설령 부족한 모습이 보여도 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기에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지요. 반면 사랑이 없는 사이에는 서로 간에 믿음도 없습니다. 늘 판단, 정죄하고 사사건건 다툽니다.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증거이며,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신실한지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실 때에도 즉시 순종했지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하시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상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모든 것을 바라게 되고, 열심히 마음을 할례해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믿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도 믿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믿어야 합니다. 스스로 보기에 아직 부족하다 해도 나를 변화시키실 하나님을 믿고 변화될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늘 “잘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말씀하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스스로도 “잘할 수 있다. 변화될 수 있다.”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들을 이처럼 믿어 주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구원의 길로 나올 것을 믿으셨지요.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셨기에 독생자 예수님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영혼들이라도 구원받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것을 믿으십니다. 구원받은 자녀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을 닮은 참자녀들로 나올 것을 믿으시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으로, 어떤 영혼이든지 믿어 줄 수 있는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7)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