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아끼고 사용치 않다가 귀한 손님이 오거나 아주 특별한 날에 식탁에 내어놓는 귀한 그릇이 있는가 하면, 늘 편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금그릇이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금그릇은 어떠한 그릇일까요?
첫째로, 변함이 없는 그릇입니다.
금은 불활성 금속으로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본래의 아름다운 광택이 유지되며 변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변치 않는 중심을 가진 사람을 금그릇에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한 번 만난 후로 어떤 시험, 환난, 풍파가 올지라도 조금도 변개함 없이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7~39에 당당히 고백하기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했습니다. 이런 그릇이 진정 변함 없는 그릇입니다. 만일 어떠한 사소한 일로 감정을 품고 힘들어하며 수군거리거나 원망 불평하고 탄식한다면 아직 금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베드로도 복음을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께 대한 의를 굳게 지켰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일도 있었으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떤 고난과 핍박 중에도 결코 변개치 않고 죽기까지 주님을 전하였지요.
그러면 우리가 변하지 않는 금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하지 않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먹은 바를 지키려고 하고 충만함을 잃지 않으며 신앙생활 하려 해도 내 안에 육이 있는 이상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해야지, 혈기 내지 말아야지, 사랑해야지’ 다짐해도 죄성을 버리지 않는 이상 내 마음, 생각 하나 지키지 못하지요.
그러나 마음의 죄성, 육을 온전히 버리고 나면 마음먹은 바를 지킴은 물론 성령 충만함도 잃지 않고 주의 나라를 위해 날로 더욱 뜨겁게 달려갑니다. 결국 육의 속성을 다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금그릇이 될 수 있는 시작점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장, 팔복, 성령의 열매로 가득 채울 때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