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20 (금)

  • 맑음동두천 10.3℃
  • 맑음강릉 14.5℃
  • 맑음서울 11.0℃
  • 맑음대전 10.8℃
  • 맑음대구 13.6℃
  • 맑음울산 13.6℃
  • 맑음광주 13.0℃
  • 맑음부산 14.9℃
  • 맑음고창 11.5℃
  • 구름많음제주 12.8℃
  • 맑음강화 9.7℃
  • 맑음보은 10.8℃
  • 맑음금산 12.2℃
  • 맑음강진군 14.3℃
  • 맑음경주시 14.7℃
  • 맑음거제 14.4℃
기상청 제공

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몽환적 상상력의 거장 권옥연, 탄생 100주년 기념전

URL복사

현대화랑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 오는 12월 16일까지
‘권옥연 그레이’, 풍부한 질감의 인물, 풍경화 20점
딸 재불화가 권이나 작가, 오프닝 전시서 인사

 

 

- 작가의 생애  -

 

권옥연 화백은 1923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어린시절 조부로부터는 서예를,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는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아버지와 같은 음악가가 되길 꿈꾸던 소년은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미술을 시작했다. 학생 시절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1941)에서 수상하며 미술계에 존재를 드러냈다. 

 

1942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결과,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 1953년 제5회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문교부 장관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 나갔다. 

 

 

절제된 청회색의 풍성한 질감 아래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했던 권옥연(1923-2011). 인간의 감정 그 근원적인 부분에 와닿을 듯한 몽환적 상상력의 연금술사 권옥연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현대화랑이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권옥연(1923-2011)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을 11월 15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아슴프레한 미명의 회색톤 ‘권옥연 그레이’로 은은한 감성적 여운을 머금은 특유의 회색빛 인물과 풍경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권옥연 화백은 특정 사조나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독특한 톤과 색채 등 특유의 화풍을 이룩해 내며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펼친 한국 근현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딸 권이나 작가가 내한해 부친의 100주년 기념전을 한동안 지켰다가 출국했다. 

 

 

전시 오픈 직후 갤러리에서 만난 권이나 작가는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때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요”라고 추억에 젖었다. 아울러 전시장 2층에서 상영되는 생전의 부친의 디지털 아카이빙 비디오와 작품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권옥연 화백의 아내는 한국 연극계의 1세대 대표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 부부가 함께 파리에서 유학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대가로 또 멋쟁이 예술가 커플로 생전 유명했다. 

 

 

권이나 작가가 전시작 중 최애 작품으로 꼽은 작품은 <부인의 초상>(1951). 권옥연 화백이 당시 20대 후반의 아내를 그린 이 작품은 강한 인상에 붉은 티셔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의 도도한 자태가 6.25 전쟁의 아픔과 폐허 속에서도 강한 생명이 기운을 보여준다.권이나 작가는 그림 속 젊은 시절의 어머니 초상화를 쓰다듬으며 부모님에 대한 추억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또 권옥연 화백이 프랑스 유학 중 창작의 고통과 번민 등을 예술로 승화시킨 듯한 <절규〉(1957)도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유학 당시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주창자였던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에게 ‘동양적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 Surrealism)’이라고 호평받은 작품. 작가의 변화된 조형 의식을 보여준다. 그외 권옥연 화백이 파리 유학 시절 그린 <몽마르트 거리 풍경>(1957), <소녀>, 〈달맞이 꽃〉(1986), 〈귀향〉(1999) 등 회색 풍경 이전의 1950년대 초반 작품부터 작고 직전인 1990년대까지의 주요 작품 20여 점이 걸려있다. 권 화백의 작품은 시대에 따라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고, 풍경화와 인물화, 정물화를 두루 그렸지만, 초기 회화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청회색 색조와 암시적인 사물의 묘사는 평생 일관되게 나타났다.

 

 

 

권이나 작가에 따르면 권옥연 화백은 생전에 “한결같은 중후함과 삶의 진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난 아직 부족해”라며 늘 사색했던 음유시인이자 낭만 화가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권옥연 화백의 그림은 회색 톤임에도 창백하거나 차갑지 않고, 오히려 은은한 감성적 미열의 여운처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권옥연 회색 미학의 출발은 프랑스 파리였다. 권옥연 화백은 1957년 35세 되던 해에 아내와 함께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자녀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떠난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행보였다. 


그 시절 유럽에서는 2차세계대전의 상흔을 표출해낸 추상주의 운동인 ‘앵포르멜(Informel)’이 유행이었다. 권 화백 역시 한국전쟁을 경험했기에 유학 초기엔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모더니즘 미학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앵포르멜을 추구했던 유럽 작가들의 감성까지 닮을 수는 없었기에, 자신만의 고유한 자각의 독립된 조형적 의식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고분 벽화나 민속적 요소,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한자 습자의 경험 등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들은 권옥연만의 조형성 기반을 다지는데 좋은 길라잡이였다. 이러한 자신만의 시도를 ‘정적인 앵포르멜’로 여겼다.  특히, 인간 내면에 숨겨진 환상적 욕망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낸 권옥연 화백은 파리 체류 시절 프랑스의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주창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에게도 깊은 인상을 전해줬다. 앙드레 브르통은 1960년 파리에서 열린 《제9회 쉬르레알리즘전》에 권 화백을 초청하기도 했다. 권 화백은 브르통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자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서울로 귀국한 권 화백이 선보인 작품들은 당시 자생적으로 한국적 앵포르멜 운동을 전개하던 국내의 청년 작가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또한, 1970년대 <우화>나 <탈(전설)>, 1980년대 <옛이야기>와 <달맞이꽃> 등은 한국적인 정서의 신화와 설화의 이미지로 출발했지만, 문학적 상상력까지 더해진 그만의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 1990년대 이후에도 <무제> 혹은 <귀향>처럼 은유적이고 시적인 한편의 문학작품을 함축해놓은 듯한 지속적인 화풍은 이어진다. 또 <소녀>나 <여인> 시리즈의 인물들은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다소 신비로운 내적 美를 드러낸다. 한평생 예술의 멋과 풍류 속에 살았던 작가는 향토적 소재주의, 목가적 서정주의, 절제된 색감과 화면구성, 상상과 무의식의 초현실적 조화를 이룬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도움말 김윤섭 미술사 박사).


김미정 미술평론가는 “권옥연은 평생 에콜 드 파리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림을 그린 미술가는 많지 않다. 토속적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 효과는 늘 이국적이었다”면서 “권옥연이 평생 집착했던 여인상은, 아시아라는 지역의 미술가가 쉽게 성취할 수 없었던 중심을 향한 욕망의 기호였다고 할수 있다”고 평했다. 


한편 미술평론가 유준상(1932-2018)은 권옥연을 ‘비구상적 표현주의 작가’로 칭하며 ‘허무적이고 신비적인 관념적 영원성을 지녔다’고 평했다. ‘그의 신비성은 마치 꿈 속의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비교적(秘敎的)인 허무화를 지향했다’고 평한바 있다. 또 인간을 비극적이고 고뇌의 생명으로 보고 있으며 실존주의적인 네오로맨시스트라고 썼다(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100인선집, 권옥연. 금성출판사). 


<사진 = 현대화랑, 이화순>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CJ프레시웨이 '푸드 솔루션 페어 2026' 개최..."O2O 기반 식자재 유통 혁신 모델 제시"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CJ프레시웨는 B2B(기업간거래) 식음산업 박람회인 '푸드 솔루션 페어 2026'을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O2O 기반 식자재 유통 모델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CJ프레시웨이는'푸드 솔루션 페어 2026'의 사전등록 관람객 수가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솔루션 페어 2026'의 사전등록 관람객 수가 행사 일주일 전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120% 증가했고, 외식 프랜차이즈 관계자, 개인 사업자 등 산업 종사자 중심으로 신청이 크게 늘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번 푸드 솔루션 페어는 식자재 상품 전시와 플랫폼 서비스 체험, 푸드 비즈니스 솔루션 제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외식·급식 사업자들은 현장에서 식자재 유통과 푸드서비스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고,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체감했다. 특히 CJ프레시웨이가 지난달 지분 투자한 플랫폼 기업 ‘마켓보로’의 온라인 식자재 오픈마켓 ‘식봄’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식자재 유통 혁신 모델을 선보이며 큰 관심을 모았다. 식봄은 외식 사업

정치

더보기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 서울특별시장 출마 선언...“기성 정치인들과 연계된 사업 전수조사”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개혁신당 김정철 최고위원이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김정철 최고위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해 “짧지 않은 고민 끝에 저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청산, 심판, 적폐, 종식. 화려한 말들로 장식된 서울의 정치 속에서 정작 시민의 삶은 단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며 “서울은 여전히 청년이 떠나고 삶을 지탱하기 힘들며 가난한 사람이 꿈꾸기 어려운 도시다. 정치는 요란했지만 시민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김정철이 바꿔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은 다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저력이 있는 도시다. 제가 그 기적을 다시 시작하겠다. 서울을 다시 성장의 도시로 만들겠다. 적극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뉴딜 수준의 산업 유치와 개발을 시작하겠다”며 “그동안 산업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서울특별시)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은 각각 '바이오 연구 및 교육특구', 'K-Culture 관광특구', '시니어 헬스케어특구'로 탈바꿈시켜 서울 북동부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정철 최고위원은 “중랑천은 수변 감성의 거점으로 개발하겠다. 성수동에서 (경기도) 의정부(시) 경계까지 자전거와 러닝 전용 하이웨이

경제

더보기
이재명 대통령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자세 가져라...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 중동 상황에 대해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자세를 갖고 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동 전황의 불투명성이 확대되면서 원유와 일부 핵심 원자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수급 관리 대책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은 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고, 안정적인 공급선을 개척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시기에 비서실장께서 UAE(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원유 2400만 배럴을 확보하고 우리나라에 원유를 최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낸 것은 매우 큰 성과다”라며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와 모든 정부 부처는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점을 엄중한 자세로 가져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해선 “민생 전반에 대해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사실상 ‘전쟁 추경'이라고 할 이번 추경도 민생 경제의 충격을 덜고 경기 회복의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편성해야 될 것이다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도한 듯한 제작 연출은 ‘과유불급’이었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트롯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4’가 큰 인기를 끌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매회 참가자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화려한 무대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 속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연 프로그램의 연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여성 참가자의 이야기는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는 결승 무대에서 탑5를 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최종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순위를 뒤집고 결국 ‘진’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 있는 가수가 정상에 오른 것은 분명 당연한 결과였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평가도 나왔다. 우승 자체보다 방송이 보여준 연출 방식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 참가자는 이미 예선전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무대매너로 주목을 받아왔다. 예선 1회전에서 ‘진’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고, 무대마다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며 심사위원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10년 차 가수였지만 그동안 큰 기회를 얻지 못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