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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유쾌하고 행복한 화가 여동헌의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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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크서 5월 25일까지
11번째 개인전 ‘핑크 파라다이스’

그의 그림은 아주 유쾌하다. 행복한 환호성이 그림을 뚫고 들리는 듯하다. 주제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보지 않아도 되고, 난해한 해석도 필요 없다.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작가가 꿈꾸는 파라다이스다. 그림 감상자들도 그 속에서 다 함께 저절로 행복해진다. 여동헌 작가가 서울 삼청동 아트파크에서 11번째 개인전 ‘핑크 파라다이스 Pink Paradise-Romantic Road’를 전시한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나무꾼이 등장하는가하면, 고래가 날고, 페가수스도 힘차게 난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네 가족이 봄 소풍 가기 위해 총출동한다면 이랬을까. 분홍 꽃길에는 드라이버와 고양이가 탄 차, 토끼가 올라탄 코끼리, 기린, 사자, 염소가 차례로 달린다. 거북이도 그 뒤에 있다. 선물 상자를 가득 실은 차와 고양이가 올라탄 차를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쫓고, 사자 꼬리를 잡은 아이의 행복한 표정도 보인다. 강아지 길고양이와 밥 먹는 아이도 보인다. 콧수염 사내가 운전하는 오픈 카 뒤에는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과 외계인 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달린다. 

 

작품 ‘시집가는 날’에는 조선시대 공주의 혼례복을 복원해 그린 활옷 입은 신부와 그녀를 호위하는 12지신, 축하객들이 온통 솜사탕처럼 뭉글몽글한 핑크빛 천지인 꽃 숲을 지나간다. 

전시명으로 쓴 ‘Romantic Road(로맨틱 로드)’는 파리에 체류하며 그림을 그렸던 2012~2013년,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알프스 산자락까지 걸쳐 있는 ‘로맨틱 가도’를 달렸던 행복한 추억이 바탕이 됐다. 
 

작가는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좋아했다고 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만화 같은 한 장면을 회화적으로 표현해서 성공한 작가다. 여동헌의 작품 역시 만화적인 요소가 곳곳에서 보인다. 디테일을 보면 무척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하다. 밝은 색조의 색을 과하게 많이 쓰고 있는 데도 화면이 매우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 그가 그린 작품 속에는 동물과 식물, 무생물과 외계인까지 모두 친구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핑크가 솜사탕처럼 녹아내린,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이 담긴 즐겁고 행복한 세상이다. 그들이 달리는  길은 온통 핑크빛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녹음 짙은 초록과 핑크의 조화도 멋지다. 

 

50대 중반의 남자 작가가 핑크 핑크한 파라다이스 그림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가 그토록 바랬던 핑크빛 세상을 얻지 못했기에 지금까지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큰 트라우마가 생겼죠. 부친의 사업이 잘 나가다가 망해 경제적 어려움이 컸습니다. 제가 그림 그리는 것도 심하게 반대해 갈등이 컸죠. 2남1녀의 장남이었기에 저는 너무나 큰 압박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상처가 깊었던지 성인이 되어서도 힘들었죠.”

 

한때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 작가는 길고양이 밥주는 일을 우연찮게 하게 되어 본인이 많이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 

 

“누구나 파라다이스를 꿈꾸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겠죠. 핑크빛은 ‘파라다이스’를 표현하기에 좋은 컬러이구요. 한때 어머니를 위해 암 환자 연구를 많이 하면서 핑크색이 치유의 색임을 알게 된 것도 한 이유에요. 저는 돼지도 핑크 돼지로 그리는 등 핑크를 많이 썼죠. 어머니도 암투병을 하셨는데 그린색 양과 핑크색 돼지를 그려 어머님 방에 걸어놓기도 했었어요.”

 

신촌 세브란스를 자주 드나들면서 그곳의 소아암병동에 환우들을 위한 작품을 설치했던 작가는 아이들이 핑크색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도 핑크색은 치유의 색이라고 한다. 

작가는 20대부터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왔다. 지금도 ‘내 스스로 파라다이스의 삶을 살지 않더라도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에게는 파라다이스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파라다이스’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다. 

 

고충환 평론가는 “어른들은 상실된 유년을 꿈꾼다. 억압적인 현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는 파라다이스를 상상한다”면서 “그렇게 돌고 돌아 마침내 작가의 그림의 전제이면서 주제이기도 한 파라다이스에 당도했다. 실제로는 없는데, 다만 사람들의 상상력으로만 존재하는 장소다. 작가는 어쩌면 현대인이 상실한 유년을, 존재가 상실한 원형적인 세계를 꿈꾸고, 상상하고, 복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한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학과를 졸업한 여동헌 작가는 제16회 한국 판화가 협회 공모전에서 ‘대상’, 제1회 신세계미술제-주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판화가협회 대상 수상작가답게 활동 초기에는 남다른 판화가로 활약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입체 판화를 시도했다. 대중과 손쉽게 만나기 위해 작은 시계 같은 일상 용품도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도 그의 주제는 파라다이스였다. 판화에서 회화로 장르를 바꾼 이후에도 파라다이스를 향한 그의 열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스스로 작업 과정과 예술적 선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얻고, 시력의 변화로 인한 어려움에도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한층 발전된 작품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그의 이전 작업에서 두드러져 보였던 검은색 라인이 줄어들고, 대신 효과적인 색면 처리가 눈에 띈다. 심한 노안 중에도 관객들에게 새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그의 예술적 성장을 보여준다. 전시는 오는 5월 25일까지.  

<사진 = 아트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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