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풍요와 행복을 상징합니다. 한국의 전통 가치인 ‘효’와 ‘부부 화목’을 통해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알리고 싶었지요.”
지난해부터 3월3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에서 열린 ‘생의 찬미’(Korea in Color:A Legacy of Auspicious Images)에 참가했던 화가 김용철(75). 당시 33명의 작가들과 함께 출품한 김 화백은 다시 강화도 온수리 작업실에서 일상처럼 붓을 잡는다.
미국 LA에 사는 딸도 볼겸 샌디에이고미술관 전시 오프닝에 참여했던 일화를 펼쳐 놓았다. 미국 전시에는 모란을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 또 ‘행복하세요,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joayo’ 등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한글을 읽고 느껴 볼 수 있도록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한 글을 써넣기도 했다.
김용철이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표현하고,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한국 문화와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작품 속에 녹여온 지는 오래 전부터다.
그는 우리 현대미술 작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독창성 있는 그림을 그리는 몇 안되는 화가에 속한다. 대부분의 동년배 작가들이 추상 그림을 그리는 화단의 풍토에서 일관성 있게 구상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이다.
그는 민화나 우리의 옛 그림에 등장하는 화조도, 문자도, 모란꽃, 수탉, 장승, 해와 달, 구름 등을 오늘날의 재료와 방법으로 그려서 현대화해왔다. 색채는 불화나 탱화, 단청의 현란한 색감을 재현하기 위해 금속 안료와 원색 안료 또는 광택을 내는 바니스 등을 사용한다.
민화의 소재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의 그림이 고리타분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현란한 색채감각은 민화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더불어 형광발색의 색채와 금속성 재료 사용해 화면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메탈릭 재료의 사용은 그림을 장난스럽게 보이게 한다. 기운생동한 분위기도 가미된 현대적 감각의 민화로, 표현주의적이기도 하다.
#사회비판적 회화에서 ‘화합’ 뜻하는 하트 그림으로
“그림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작가는 1970년대에 다른 작가들처럼 심각하고 사회 비판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군사정권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며 사진작업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표출해내곤 했다.
1970년 GROUP-X 창립전 이후, 1980년초까지 주로 사진 매체와 회화기법을 접목한 실험적이고 사회비판적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1980년 광주사태 이후 작품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 이상 비판적이어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날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4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그는 2m 길이의 대형 캔버스 위에 하트모양을 그리고 반짝이는 안료로 화면을 덮어 밝고 희망찬 그림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하트모양은 ‘화합의 정신’을 상징하는 심볼인 셈이었다.
“작가가 문화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1988년 이후에는 화조도와 모란, 수탉, 산 풍경 등 전통 이미지를 찾아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속에 녹아있는 가치를 표현해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잠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효(孝)와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끈끈한 정(情)이었어요.”
“가정의 사랑과 평화가 주요하다”는 그는 닭 그림도 많이 그렸다. 닭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는 작가의 그림은 부부애를 상징하고, 늠름한 수탉의 모습은 가장인 아버지들의 권위를 되찾아 주고자 한다.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가부장적 지위를 본능적으로 지키고 있는 수탉을 통해 가부장적 기틀이 와해되고 그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질타와 위안이 녹아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전시에 소개된 것처럼 그의 작품엔 글자들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입춘대길’ , ‘늘 가까이’ , ‘천년 만년 살고 지고’ 등이다.
#강화 성베드로성당의 빛깔그림창 예술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가 본향인 김용철 작가가 자랑하는 작품은 또 있다. 온수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온수리 교회의 한옥 성당인 ‘성안드레성당’ 옆에 2004년 신축된 ‘성베드로성당’이다. 성베드로성당에서 볼 수 있다.
성당 내 모자이크 제단화와 스테인드글래스 작품을 비롯한 방대한 작품들은 그가 오랜 세월 그의 공방에서 제자들과 손수 만들었다.
김작가는 프랑스 낭시에서 스테인드글래스 아트를 전공한 제자에게 배우며 그 길을 개척했다. 성베드로 성당 성전 좌우 벽면에 예수 수난의 14처를 담은 성화를 비롯해 그위 성당 특유의 높은 천장 옆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을 프랑스와 미국에서 들여온 색유리와 안료를 활용한 고전적 전통기법으로 오랜 시간을 공들여 제작했다. 성당부지를 기증한 분, 한국인에게 풍성함의 상징이었던 모란꽃 문양이 보인다. 심지어 성베드로가 들고 있는 천국의 열쇠 문양엔 불교의 상징인 만卍자와 단청문양도 들어있다.
2004년부터 종탑부 스테인드글래스 10점을 만들었다. 작가는 스테인드글래스를 ‘빛깔그림창’이라고 우리말로 만들어 부른다. 제단 모자이크 벽화를 제작하였으며, 2006년에는 십자가꽃으로 유명한 산딸나무꽃 무늬로 장식한 과슈아크릴로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도(圖)’ 14점, 2017년에는 회랑 창 좌우 10개씩 총 20점을 제작 설치했고, 이후 소성전 제단에 빛깔그림창 3개를 완성해 성베드로성당 내 성화(聖畫) 콘텐츠 제작 대장정을 끝냈다. 서울 대학로교회 스테인드글래스 작업도 그가 했다.
“성베드로성당은 7촌 아저씨가 땅을 기부해 세워지게 됐죠. 그 인연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기초부터 배우면서 만들게 됐죠.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론으로만 알고 있어서 방학때 프랑스 낭시에서 유리공예를 배우는 제자를 찾아가 공방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익혔어요.”
작가는 강화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도 표현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강화 길상면 온수리에 2004년도에 새로 축성된 성베드로 성당이다.
강화 길상면 온수리에서 자란 그는 길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대광 중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77년부터 숭의여대에서 응용미술과 교수로 재직했고 91년도부터는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다가 2014년 정년퇴임했다. 그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어릴 때 뛰놀던 뒷산 과수원터에 1984년 지은 작업실에서 살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홍익대학교박물관, 이화여대박물관, 토탈미술관, 한원미술관, OCI미술관, 기당미술관, 주중국한국대사관, 주브라질한국대사관, 주아르헨티나한국대사관, 주스위스한국대사관, 전등사, 대한성공회 온수리교회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