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의 꿈과 행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화가 이사라가 7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 'What Happened in the Wonderland’를 열고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행복하고 호기심 가득한 세상인 원더랜드(wonderland) 시리즈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그는, 유토피아인 원더랜드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어린 시절의 향수와 동심(童心)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작품 속에는 별과 하트로 반짝이는 눈동자의 소년과 소녀, 몬스터 등이 등장한다. 머리에 빛나는 관을 쓴 소녀는 하트와 별이 금방 쏟아질듯한 반짝이는 큰 눈을 하고 있다. 우주가 들어있는 듯한 반짝이는 큰 눈에는 분홍 하트도 초록 별도, 또 황금빛 태양도 보인다. 환한 미소를 띤 그녀는 신데렐라 같기도 하고,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또는 또 밍키 공주 같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마음 속 깊은 곳에 동심과 환상의 유토피아를 갖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그 동심을 잊어가지만 말이다.
이소라 작가의 이번 원더랜드 시리즈에는 '설레임 있는 사랑이야기'가 숨어있다. 작가는 "밤바다를 걸으며 느낀 감정들이 영감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헤르몬하우스)한 작가는 "책을 통해 원더랜드의 세계관을 심화시키고, 관람객들과 환상의 유토피아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보면 더 잘 아시겠지만, 저의 원더랜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울메이트가 돼야 하는 등 지켜야 하는 6가지 룰이 있어요.”
다음 주부터는 노화랑에서 수요일과 금요일에 책 사인을 해주겠다는 그녀는 “소녀의 눈은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라는 힌트를 준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 부분인 소녀의 눈은 간단치가 않다. 가까이서 보면 붓 터치가 조금도 없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먼저 천 캔버스가 아닌 우드 위에 수차례의 폴리 작업을 거쳐 특수한 캔버스를 만든다. 건축재료 등 여러 재료를 섞어서 10번 이상 바르고 사포질을 반복한다. 이런 밑 작업과 아크릴 물감을 얇게 여러번 덧바르는 과정을 통해 밀도 높은 여러 층의 레이어를 쌓고, 날카로운 칼날로 긁어내어 하얀 선을 만드는 과정을 마치 수행하듯 무수히 반복하며 패턴화시켜 완성한다.
“저는 작품을 하면서 제 작품을 감상하는 분들의 행운을 빌어드립니다. 특히 소녀의 눈을 표현할 때는 아주 정교하게 깊이 몰입해 작업을 합니다.”
칼로 기존 색깔을 파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그녀의 손에는 상처의 흔적이 적지 않다.
“제가 힘들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줬으면 좋겠어요. 저의 목표는 관객들이 제 그림을 보자마자 그냥 행복해 하는 거에요.”
작가는 아크릴 물감의 반짝이는 광택을 없애서 뽀얗고 뽀송뽀송한 부드러운 형광색 색감을 최대한 살려냈다.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원더랜드 컬러’를 미리 만드는 등 특별한 과정을 거친다.
작가에게 원더랜드 속에서 색다른 주제가 나오냐고 물었다.
“어두움이나 죽음도 표현하고자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꿈’이라는 시리즈를 1998년부터 시작해 20여년간 지속하고 본인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제가 80세, 90세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런 그림을 그리는 힙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품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함께 한다. 아메바 같기도 한 캐릭터부터 외눈박이 몬스터, 파도입술 몬스터, 광대 몬스터, 하품 몬스터 등 대략 10개 정도의 캐릭터가 보인다.
“이 몬스터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담당한다. 다들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이고 함께 여행도 떠납니다.”
작가는 언제부터 이 소녀 캐릭터를 그리게 됐을까?
“저도 캔디세대고 종이인형 갖고 놀던 세대에요.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순정만화 그런 것들을 잘 변화시켜 나름대로 만들어낸 캐릭터죠. 사람에 따라서는 바비인형처럼 볼 수도 있겠죠.”
첫개인전부터 인형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작가는 인형에서 자연스럽게 소녀를 그리게 됐다고 말한다. 외동딸로 자란 작가는 어렸을 때 친구나 형제 없이 인형들이 자신의 친구이자 형제 자매였다고 말한다. 조금 더 각별한 친구이기도 했다.
외동딸인 작가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친구삼아 지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림에 등장하는 곰인형인 럭키 베어도 옛날 그녀가 친구처럼 대했던 인형이었다.
김성호 평론가는 “순정만화를 좋아한 어른들에게 동화적 감수성을 끌어낸 전시”라며 “만화 세대들이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이미지를 잘 끌어냈다”고 말하고, 윤진섭 평론가는 "머리에 왕관을 쓰고 큰 눈을 가진 이사라의 요술공주는 원더랜드에 사는 해피 바이러스이자 변신의 천재"라며 "작가의 이런 자유분방한 몸짓을 통해 변형된 신세대 아방가르드 전사의 새로운 유미적 도발을 본다"고 평했다.
노화랑 디렉터로 잘나가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노세환 대표는 '네번째 차원'이라는 글을 통해 이사라의 회화적 서사에 대해 “이사라의 유토피아는 감정적으로 삭막해진 현대사회의 결핍을 반영하며, 사랑하는 감정이 온전히 감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현재의 결핍은 이사라 본인의 네번째 공간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맘껏 활동하는 화가로 성장
이사라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꿈을 먹으며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한국현대연극의 거목이었던 할아버지(이해랑)와 하이퍼리얼리즘 화가인 부친(이석주) 덕분에 일찌감치 예술의 즐거움을 알게 됐고, 하루 종일 성실하게 예술하는 자세를 배웠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예술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셨어요. 할아버지와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죠. 할아버지가 연극 햄릿을 연출하시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햄릿을 유인촌 장관이 맡았어요.”
그녀는 또 아버지 이석주 화백으로 작가의 자세를 배웠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아버지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작업하는 분이셨어요. 지금 제가 12시간 이상 엉덩이 붙이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버지로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거에요. 또 예술을 할 때 남의 눈 생각지 않고 내 맘대로 활발히 펼칠 수 있는 것은 집안 분위기 덕분이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작가는 숙명여대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작업하는 틈틈이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30여회의 개인전을 진행하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국내는 물론, 독일 칼스루헤, 프랑크푸르트, 미국 마이애미, 타이페이 등 해외 아트페어에도 참가하고 있다. 태국과 일본 등 외국에서도 그녀의 작업을 좋아하는 컬렉터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노머니 노아트' ‘화백’ 등 TV 프로그램에 참여했는가 하면, 서울시 관광재단, 아디다스, 투다리, 신한카드, 하리보, 대웅제약, 삼성TV, 롯데아트초콜릿 등과 협업하기도 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모란미술관, 서울미술관, 아디다스, 스페이스몸미술관, 숙명여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