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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전통의 현대화'에 매진한 이희중 5주기 추모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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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 10월 10~18일, 《이희중 0426:무한의 시선》
10월 10일, 이희중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라운드테이블 비평세미나> 개최
- ‘전통의 재발견’ · ‘전통의 현대화’ 매진한 대표작 100점 전시
- 추상·구상 넘나들며 현대적 풍속화 추구

 

 한국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석운(石韻) 이희중(李熙中. 1956~2019).

작가이자 교육자의 삶을 산 이희중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첫 추모전《이희중 0426:무한의 시선》이 10월 10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이희중의 유족과 제자, 친구 및 지인들이 어렵사리 뜻을 모아 마련된 이번 전시는 작고 후 5년만에 마련된 첫 추모전시이다. 작가의 대표작 100여점을 내건 이번 전시는 근현대 미술사의 발전에 이바지한 이희중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예술세계를 회고하고 재조명해보는 전시다.

전시 구성은 ‘로컬과 글로벌’ ‘자연과 우주’ ‘풍경과 추상’ ‘1970-1980년대 드로잉과 회화' 등으로 구성되었고,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과 이희중 작가의 삶과 예술을 소개했다.

 

 

#한국인의 정체성 탐구 작업 지속

 

생전의 이희중은 “삶이 예술이다”라며 명산대찰 등 한국적 지형을 찾아다니며 선조들과 교감함으로써 풍류를 그렸다. 병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유작 800점을 남겼다. 전시제목인 《이희중 0426》은 화가 이희중이 1956년 4월 26일 태어나 2019년 4월 26일 유명을 달리한 기념비적인 의미를 담았다. 


이희중은 무속신앙, 민담, 불교 등 전통 소재를 현대적 회화로 재해석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출품작들은 작가가 제작한 <우주> , <첩첩산중>, <푸른 형상> 등의 시리즈를 선별해 1980년대 제작한 <산과 용>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 시기에 걸친 작품들이 오랜만에 나왔다. 작품들은 작가가 얼마전 작업을 마친 듯 깨끗하고 보존상태가 좋았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800점 유작을 기반으로 이희중갤러리(용인)를 연 권정옥 대표가 주최했다. 또 석운의 수제자인 작가 다발김(본명 김지영)이 기획 총괄을 맡았다. 전시명 속 0426은 이희중의 탄생일이자 소천일이다.

 

#첫제자 다발김, 은혜 보답코자 추모전 기획 총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쳤던 이희중은 교육자로서도 열심히 살았다. 용인대학교 첫제자인 다발김은 “용인대 졸업 후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석사를 하게 된 것도 교수님 덕분이었다. 많은 용기를 주셔서 미국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았다”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 총괄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며 스승을 추모했다.

 

또 홍익대 회화과 동기인 윤진섭 평론가는 “한창 열정적으로 작업하던 때에 쓰러져 너무 아까운 작가이다. 살아서 작업을 계속했다면 한류 붐 속에 그의 작품이 얼마나 활짝 피어났을지 가늠이 안된다”며 이번 기회에 작가의 작품 세계가 제대로 널리 알려지기 원한다고 말했다.

 

유족측은 이번 전시를 기념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알리기 위한 작품 도판 및 목록, 작품 연보도 1년 전부터 정리했다. 그리고 발간사와 함께 평론가 박영택· 김병수·함선미·이리스 렌츠(독일)의 평문이 실린 300p 특별 도록도 발간했다

#10일 개막식 & 라운드테이블 비평세미나

 

10일 오후 4시 개막식은 작가 다발김이 진행을 맡았다. 권정옥 대표는 “평생을 그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일관했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로 증명이 될 것”이라며 “작가가 떠난지 5년이 되었지만 작가가 남긴 작품들을 꾸준하게 선보여 많은 분들과 나누려고 한다”고 참가객들에게 인사했다.

 

용인특례시 이상일 시장을 대신해 부인 김미영씨와 용인대학교 회화학과 송수영 학과장이 전시 축사를 했다. 이날 용인대학교 회화과 학생 수십명과 컬렉터, 언론인, 지인, 관람객 등이 약 200명 가까이 시차를 두고 오갔다.

오후 5시쯤 이어진 ‘라운드테이블 비평 세미나’에서는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 김병수(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조각가 성동훈(국제사막예술프로젝트 감독, 이희중 추모전 추진위원 대표), 이화순(아트칼럼니스트, 에이앤씨미디어 대표), 임순길(용인대 체육학과 교수) 등이 우선미 교수(평론가)의 사회로 이희중의 작품세계에 대한 아트 토크를 이어갔다.

 

김병수 평론가는 “이희중 선생님의 화면엔 지역적인 ‘로컬’과 지구적인 보편성인 ‘글로벌’이 공존한다. 별개의 것 같은 이 두 가지가 이희중 선생님의 한 화면에 어우러져 있다”고 평했다. 또 박영택평론가는 “그의 그림의 소재는 대개 18, 19세기 조선 후기의 민화나 문자도, 책거리 그림에서 차용한 소재들이 뒤섞여있다. 그 외에도 인류가 사용해 왔던 다양한 상징과 기호들이 혼재한다. 그림은 그러한 상징들의 조합이고 번안이다”라 평했다. 홍익대 동기였던 평론가 윤진섭과 이화순 칼럼니스트, 용인대 임순길 교수는 생전에 이희중 작가와 특별한 인연을 말해 박수를 받았다.

 

▲여말선초부터 시작된 예술가 혈통...도도한 예술가의 피 

 

이희중은 전통적인 삶의 철학과 기호화된 우주관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남겼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이 시대 새로운 개념의 풍속화를 추구했다. 그가 전통을 중시하며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몰입했던 배경을 찾다 보니, 흥미롭게도 작가의 가문에 600여년전부터 이어온 도도한 예술가의 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술과 관련된 선조가 무려 여말선초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최초의 지도로 알려진 ‘팔도도(八道圖)’(1402년)의 제작자인 조선전기 문신 이회(李薈)를 비롯해, 조선시대 궁정화가, 일제강점기 때 미술가, 삽화가, 미술교사 등으로 활동한 행인 이승만(1903-1975) 등이 그의 선대 할아버지들이다. 러시아 레핀인스티튜트 졸업생으로 뛰어난 서정적인 풍경화를 남긴 화가 이호중(1958~2010)은 동생이다. 

 

▲그림 앞에선 아픔도 싹 잊던  천상 화가 

 

이희중에게 그림은 최고의 취미이자 인생의 낙이었다. 그는 위중한 병중에도 매일 몇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며 붓을 쥐었다고 한다. 작가로서 그는 우리 고유의 민화와 옛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일관되게 선보여 왔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 및 ‘전통의 재발견’, ‘전통의 현대화’. 용을 주제로 한 <문자도>, <풍류도>, <우주도> 등은 이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이다.

 

이희중에게 있어서 전통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현재적 시점에서 전통을 정면 돌파하고자 애쓴 작가이다. 그에게 ‘전통의 현대적 해석' 의 문제는 중심 화두였다.

‘전통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양식화하느냐’. 이것이 그의 예술 작업의 본질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주된 방법론은 ‘차용’과 ‘각색’으로 볼 수 있다. 민화나 선대 화가들의 작품에서 일부를 차용하고 이를 각색하여 ‘자기화’ 하는 방법론은 이희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시켜 온 것이다. <문자도>와 <풍류도>에 주로 나타나는 이러한 태도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과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

 

그로부터 새로운 공간해석이 나타나고 전통적 상징이나 기호가 새롭게 각색된다. 그것은 끊임없는 변형의 과정인 동시에 자기화, 곧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다. 상징과 기호의 추상화의 정도는 <풍류도>보다 <문자도>나 <우주도>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평론가 윤진섭)

 

▲한국의 문화적 원형 찾기와 새로운 창조 향한 노력

 

이희중이 전통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홍익대 졸업 후 1985년 무렵 떠난 독일 유학이었다. 1991년까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Kunst Akademie Düsseldorf)를 졸업하고 마이스터슐러(Prof.Hohenbuechler Irene)를 취득한 약 6년간의 독일 체류기간 동안 고국에 있을 때보다 더 한국의 문화적 원형을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잡초> 시리즈를 비롯, 문자 추상과 민화를 번안하는 작업에 몰입한 적이 있는 그는 독일 체류 기간에 이 일련의 작업을 심화시킨다.

이 작업이 가져온 성과는 스테들러 화랑 초대전(1989), 스테허 화랑 초대전(1989), 안파리나 화랑 초대전(1989), 이파 화랑 초대전(1991) 등을 통해 나타났다.

한편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민화는 당시 이희중에게는 소재의 보고(寶庫)였다. 화제(畵題)에 따라 십장생도백록도, 노송도, 운룡도, 금상산도, 용호도, 치우도, 어락도, 문방도, 모란도 등으로 나뉘는 민화의 다양한 세계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걸러지거나 종합됐다. 그의 작품에서 <우주도><풍류도>. <문자도> 등도 1990년대 초반의 조형적 실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가 치열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민화적 소재에 천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전통의 현대화’의 성공 요건은 무엇보다 그것이 오늘의 관점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희중이 보여 주는 비전은 ‘생동감 있는 조형 감각’으로 나타나 있다.

그가 민화 특유의 기(氣)와 치기(稚氣)를 탈색시키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나아간 점은 국면은 ‘전통의 현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18일 한가람미술관 전시가 종료된 후에는 이희중갤러리(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외개일로 20번길 46-8)에서 기획전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희중갤러리 첫 기획전은 11월 1일~12월 31일 예정이다. 아울러 이희중갤러리는 카이스트미술관과 작품 기증 여부를 논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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