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을 비롯해, ‘하트와 ‘문자’ ‘수탉’ 등 현대적 민화를 즐겨 그리는 작가 김용철(75·전 홍익대 회화과 교수)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김용철 작가는 지난 3월 3일까지 약 4개월여에 걸쳐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SDMA)에서 열린 《생의 찬미》(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 전에 김종학, 오윤, 이숙자, 이응노, 이종상 등 34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작품을 출품하고 현장을 다녀왔다.
또 올해로 창사 100주년을 맞은 통인가게(주인 김완규)의 통인화랑(대표 이계선, 1974~)은 5층에서 《김용철: 지금도 모란!(Still Moran!)》전을 성료했다.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 전시 《생의 찬미》 출품작 계열의 작품들을 내걸었다. 전시장엔 〈모란〉을 중심으로 한 작품 24점을 걸었다.
한편 김용철 작가에게 뜻깊은 논문도 발표됐다. 강수미 동덕여대교수 겸 미술평론가는 10월 19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열린 한국미학예술학회(회장 하선규) 2024년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 ‘김용철 창작방법론’ 논문을 발표했다. 광주비엔날레 홍보마케팅부 책임 조사라 씨가 질의자로 나섰다.
단색화, 추상화 대신 꽃과 새, 닭을 그린다
1949년생. 일흔다섯의 화가 김용철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배어 있는 강화도의 뒷산 과수원 자리에 작업실을 짓고 마당에는 할머니 집 모란이며 옥잠화를 옮겨다 심었다. 거기에 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고, 꽃과 풀, 새와 곤충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림을 그린다. 그가 왜 단색화와 추상화 보다 화조도를 즐겨 그리는지 이해할 만하다. ‘변하지 않는 것들’을 ‘현재의 시간 속에 되살려 놓기’ 위해 쉼 없이 그림을 그린다.
“가정의 사랑과 평화가 주요하다”는 그는 수탉을 중시한다. 늠름한 수탉의 모습을 통해 갈수록 권위를 상실해 가는 아버지들의 권위를 되찾아 주고자 한다.
미국〮한국, 어디서나 중심은 행복의 상징 모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여 계속해 미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받은 샌디에이고미술관 전시 《생의 찬미》에는 모란을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 모란은 부귀와 풍요와 행복을 상징하는 꽃 중의 왕이다. 작가는 어머니를 그리며 모란을 그리곤 한다.
또 ‘좋아요’ ‘joayo’ ‘복 많이 받으세요’ 등 한글과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한 인사말을 써넣기도 했다. 또 꽃이 있으면 나타나는 새도 사이좋게 쌍으로 등장하고, 사랑의 표시 ‘하트’와 보름달도 등장한다. 이는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선보인 《김용철: 지금도 모란!(Still Moran!)》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용철이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표현하고,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한국 문화와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작품 속에 녹여온 지는 오래전부터다.
그는 정체성을 중시하며 독창성 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대부분의 동년배 작가들이 추상 그림을 그리는 화단의 풍토에서 일관성 있게 구상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민화나 우리의 옛 그림에 등장하는 화조도, 문자도, 모란꽃, 수탉, 장승, 해와 달, 구름 등을 오늘날의 재료와 방법으로 그려서 현대화해 왔다. 색채는 불화나 탱화, 단청의 현란한 색감을 재현하기 위해 금속 안료와 원색 안료 또는 광택을 내는 바니스 등을 사용한다.
민화의 소재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의 그림이 고리타분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현란한 색채감각은 민화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더불어 형광발색의 색채와 금속성 재료를 사용해 화면은 경쾌하기까지 하다. 메탈릭 재료의 사용은 그림을 장난스럽게 보이게 한다. 기운생동한 분위기도 가미된 현대적 감각의 민화로, 표현주의적이기도 하다.
사회비판적 회화에서 ‘화합’ 뜻하는 하트 그림으로
“그림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작가는 1970년대에 사회 비판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군사정권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며 사진작업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표출해내곤 했다.
1970년 GROUP-X 창립 이후 전위적이고 비판적 태도를 공유하며 1970년대 당시 예술의 가장자리를 탐색했다. 특유의 ‘포토 페인팅’에 대한 조형 감각을 익혀나갔다. 쌍을 이루거나 연속하는 화면을 설정해 놓고, 그 화면 배열에 의한 형태나 몸짓의 변화를 환기시켜 임팩트 있는 행위를 시각화했다. 1980년 초까지 주로 사진 매체와 회화기법을 접목한 실험적이고 사회비판적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작품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 이상 비판적이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날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용철 화백은 옛 그림에서 즐겨 쓰이던 우리네 자연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현대화했다.
1984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그는 2m 길이의 대형 캔버스 위에 하트모양을 그리고, 반짝이는 안료로 화면을 덮어 밝고 희망찬 그림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하트모양은 ‘화합의 정신’을 상징하는 심벌인 셈이었다.
“작가가 문화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1988년 이후에는 화조도와 모란, 수탉, 산 풍경 등 전통 이미지를 찾아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속에 녹아있는 가치를 표현해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모란이 화폭에서 메인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 ‘샘 화랑’ 개인전부터다. 2007년 ‘하트가 있는 모란도’ 등을 발표하는 등 현재까지 다채로운 ‘모란’의 변주로 진화하고 있다.
강화 성베드로성당의 빛깔그림창 예술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가 본향인 김용철 작가가 자랑하는 작품은 또 있다. 온수리에 있는 대한성공회 온수리 교회의 한옥 성당인 ‘성안드레성당’ 옆에 2004년 신축된 ‘성베드로성당’이다. 성당 내 모자이크 제단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비롯한 방대한 작품들은 그가 오랜 세월 그의 공방에서 제자들과 손수 만들었다.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역임했다. 작품소장처로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대한성공회 온수리교회(강화군), 홍익대학교박물관(서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서울) 등 다수이다.
(사진 = 이화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