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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들고 떠나는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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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꿈꾸는 세 청년의 2년간 12개국 35개 농장 투어 ‘파밍 보이즈’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농업을 통해 미래를 꿈꾸던 지황, 대학을 졸업했지만 무엇을 할지 고민인 하석, 아버지의 농사일이 싫어 공대에 진학했던 두현. 이들 세 청년이 2년간 12개국 35개 남짓의 농장을 다니며 농사를 배운다. 무일푼으로 떠난 해외여행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희망을 찾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홀리워킹데이’ 등과 맥을 같이 하는 농업세계일주 다큐다.

건강하고 본질적인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

극심한 청년실업 속에서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20대들. 이 팍팍한 현실에서 세 청년은 전혀 다른 도전을 시도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네팔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11개국의 커피농장, 과수 채소 연구소, 농군학교 등 다국적 농장 투어라는 독특한 여행으로 실업 탈출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이 다큐의 흥미로운 점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홀리워킹데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두려울 거 없는 청춘의 아름다운 도전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이다. 동시에 제도권의 취업 외에 다른 경제활동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뭇 진보적인 교훈의 메시지도 던진다. 더불어 아름다운 농장의 풍경, 자연 속의 힐링은 이 다큐를 상당한 대중적 힘을 가지게 만든다. 각국의 농장 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농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생생한 정보도 빼놓을 수 없는 가치다.

세 명의 등장인물들은 마트 청소부터 음식 배달까지 마다않고 1년 동안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기본 여행 자금을 모았다. 라오스 가나안 농장 학교에서 돼지를 돌보고, 인도네시아에서 유기농 농사를 배운 후 유럽으로 떠났다.

영화는 의외로 ‘먹방’이기도 하다. 직접 기른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로 만든 음료를 마시고, 직접 짠 양젖으로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바라보는 시각적 즐거움도 준다. 영화는 삶의 건강성과 본질적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농업의 새로운 모델

‘파밍 보이즈’의 첫 여행지 이탈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높은 청년 실업률에 허덕인다. 이탈리아의 청년 농부에게 농사란 투쟁의 모습이다. 정부 소유의 땅을 무단으로 점거해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농사란 높은 실업률 속에 자급자족의 삶을 찾아 나선 대안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개발 논리와 농지를 기업에 파는 것을 반대하고 환경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냉소보다 저항을, 절망보다 행동을 선택한 청년들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농사를 짓겠다는 청년에게 초기 자금과 농지를 무상으로 장기대여해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직접 딸기 농사를 지어 잼과 시럽을 만들어 판매하는 프랑스의 젊은 농부들은 행복해 보인다.

벨기에의 시스템도 농업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한다. 농부의 한 해 농사 계획을 소비자들이 보고 선 계약을 맺어 한 해 동안 그 농장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을 소비한다.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는 직거래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안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농장을 방문해 수확할 수도 있어 대리 농장을 즐기면서 자연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소비자들에게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6차 산업’ 형태의 네덜란드 농장은 농업이 나아가야할 미래를 보는 것 같다. 농장에서 양을 직접 키우고, 양젖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그리고 농장 내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판매까지 한다. 농장주 아니타는 시동생이 양을 돌보며 우울증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 양을 통한 치료를 돕는다. 농장은 생명이며 삶의 터전, 가게이자 쉼터이며 병원이기도 하다.

천진한 무모함이 주는 위안

이들의 여행 경험은 한국의 농업 시스템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불만투성이의 이 농경 환경을 행복하게 바꿀 실마리를 찾게 된다. 동시에 청년 실업 해결법을 여전히 개발에 있다고 신봉할 것인가 의심하게 된다. 꼭 농사를 꿈꾸지 않아도 자급자족의 본질적 삶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다. 농지 장기임대 등의 선진국의 국가사업은 다른 어떤 실업 대책보다 생산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이득이 돌아가는 정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게 만든다.

여행을 마친 청년들은 자신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더 명확히 알게 됐고 그것을 실천할 힘도 얻었다. 농업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를 가까이에서 봐왔던 두현은 고향 산청으로 내려가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를 피할 수 없었지만 3년차가 된 지금은 제법 어엿한 농부가 됐다. 유럽에서 배운 농업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 두현의 목표다.

농작물을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일을 꿈꾼 하석은 iCOOP생협 ‘자연드림’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지황은 자본이 없는 젊은 농부들에게 주거지를 마련해주는 이동식 소형 주택 ‘코부기 1호’를 만들었다.

농지의 도시화로 대표되던 자본주의 근대화는 이제 농업이 희망이 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상실한 것들의 회복이 필요한 때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청년들의 그 천진한 무모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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