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강원도 강릉과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10대 집단 폭행 사건'으로 10대 청소년들의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정시설이나 교화·교육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해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아진 데에는 청소년의 재범률뿐만 아니라 수위도 갈수록 잔혹하고 흉폭해지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과거처럼 담배·본드 흡입 등과 같은 단순 탈선이 아닌 둔기 등을 이용한 집단 폭행·감금, 성매매 강요, 살인, 강도, 성폭행 등의 성인 범죄처럼 수법이 잔악하고 집단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소년법 폐지·개정 여론도 흉포화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극약처방으로 볼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소년사건 재범자 비중은 무려 40%대로 고착 상태에 있다.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15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4년 소년 10만명 당 범죄자 수는 1172명이다. 이는 10년 전인 2005년 760명보다 54.2%나 급증한 수치다. 소년 피의자의 재범률도 2006년 28.9%에서 2015년 42.6%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행법상 '소년'에 대한 연령 기준을 낮추고 형량의 상한선을 높이는 법 개정 작업을 하는 중이다.
최영승 한양대 교수는 지난 6월 한국소년정책학회·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주관한 공동학술대회에서 소년범의 재범 방지를 위한 기소유예제도 개선방안으로 △소년범에 대한 선도 조치를 선행하고 그 효과 여부에 따라 기소여부 결정 △가해자·피해자간 조정 후 기소유예제도 도입 △청소년꿈키움센터와 연계한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법 조항 몇 개만 뜯어 고쳐 형량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다수의 시각이다. 소년범죄의 재발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인들이 여론의 환심을 사려 형량을 높이고 소년법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문제가 많다"며 "아이들을 형벌의 도구로 사용해서 범죄를 억압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살인죄의 경우 과거 유기징역 상한을 15년에서 30년으로 늘렸는데 실제로 범죄가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금 소년법 최장기 20년도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결코 적은 형량이 아니다. 여론에 휩쓸려 하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교정시설이나 교화·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한 데다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고 있어 이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선 지청의 한 차장검사는 "잘못을 한 아이에 대해 무기징역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했을 때 그 아이들을 교화를 시킬 수 있겠냐"면서 "교도소나 소년원에서 교화가 될 만큼 우리 형사교화정책이 탄탄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10세 미만에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형을 구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아이들의 성장 시기에 따른 형사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년법은 19세 미만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10가지 종류의 보호처분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소년들이 사회에서 격리되는 처분은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 소년의료보호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 등이다.
소년범이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에 회부돼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소년원 대신 교도소로 보내진다. 다만 성인 범죄자와 분리 수용하기 위해 일반 교도소가 아닌 '소년교도소'로 보내진다. 청소년들은 사고와 정서, 인격이 미성숙한 상태로 성인범과 공동 수감할 경우 범죄 수법 등을 습득할 부작용이 있어 분리수용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현재 소년교도소는 단 1곳 뿐이다. 소년범 중 남자는 김천 소년교도소로 보내진다. 여자는 별도의 전용 교정시설이 없어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장기형을 선고받으면 10년 이상 복역하기도 하고 수감 도중 만 23세를 넘으면 성인교도소로 이감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점점 소년범이 늘어나고 있고 범죄의 죄질도 안 좋아지고 있는데 정작 소년교도소는 많지 않다"며 "일부 판사들이 정도가 심한 소년범을 소년원으로 보내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는데 판사들도 현재의 교화 시스템이 부족해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소년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년범이 처벌에 무게를 둔 교도소와 달리 교화에 가더라도 관련 교육프로그램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소년범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전문적인 심리상담이나 정신과적 치료 등과 같은 체계적인 지원보다는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만 몰두하거나 제과·제빵, 메이크업, 네일아트, 헤어디자인, 텔레마케팅, 자동화용접과 같은 기술교육이나 직업훈련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개별적인 특성에 맞춰진 교정이 이뤄져야 소년범의 재범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정훈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소장은 "어떤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생활범죄인지 폭력인지 등을 우선 파악하고 그 상태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해야 하는데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며 "소년원을 갔다 온 청소년들을 사회적으로 격리 시키려고만 하고 왜 아이들이 '거기'까지 갔는지 그런 과정들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소년범이라도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심리상담이 계속 유지되는 상태에서 관리가 이뤄지면 정상적인 아이들과도 사회에서 어울릴 수 있을텐데 우리 사회는 계속 차별만 하려고 한다"며 "차별하다보면 소년범들은 갈 곳이 없어 결국 비슷한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의 개별적인 상황에 맞게 맞춤형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며 "아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진단해서 공부가 필요한지 직업훈련이 필요한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맞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진단해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 제공할 수 있는 교도소 내 인력이나 자원이 한계가 있으니 지역공동체를 활용해 전문가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합리적인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교정업무를 담담한 한 검사장은 "법무부에서도 소년범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다른 부처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법무부가 올해 1월 범죄예방정책국 내에 소년범죄예방팀을 신설한 것도 그간 소홀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는 소년범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