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각종 시민단체와 대학생들 및 여야 각 정당들이 나서서 일제히 박근혜 정부때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자유한국당만이 다른 소리를 내고 있어서 그 파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위안부 문제는 '자유'와 '인권'의 문제가 결부된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선진민주국가일수록 다른 문제에서는 관용을 베풀더라도 자유와 인권을 압살한 자들에 대한 처벌에는 단호한 경향을 보인다.
이런 측면때문에 한일 위안부 문제를 그냥 불행했던 과거사의 한 조각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역사적인 무게감이 너무 무겁다는 소리가 적잖다.
정치권의 '한일 위안부 합의' 비판
이런 가운데, 한일 위안부 문제로 정치권이 후끈 달아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정조준 해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덮으려는 목적의 합의는 합의가 아닌 것이다. 피해자들을 말도 못하게 입에 재갈을 물리는 합의는 합의라 할 수 없다"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 없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앞서 전날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정론관에서 가진 오후 현안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에 적극 공감하며 피해자 중심 해결과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의 원칙을 지키면서 빠른 후속조치 마련을 위해 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며 "분명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이 확인된 만큼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서 "역사적으로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국가와 국민,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해자 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도 전날 김경진 원내대변인이 국회정론관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졸속처리에 대한 국민의당 입장'을 발표하면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추진되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비판에 공감이 간다"며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일본 측의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통해, 우리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의동 바른정당 수석대변인도 27일 논평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이라며 "재협상이든 파기든 철저하고 집요하게 원칙에 입각해 제대로 된 외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다른 정당들보다 더욱더 완강했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27일 국회정론관 브리핑을 통해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짓밟고 10억엔이라는 돈에 국민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팔아버린 책임자들을 가려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 마음 속에서 이미 무효로 판정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청산 작업을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2015년 합의가 무효인 만큼 잘못된 합의에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도 더 이상 존속할 명분이 없다"며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도 조속히 추진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든 정당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당별로 다소간의 결은 다르지만 위안부 합의가 잘못된 합의였다는 점에서는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의 성토
전(前) 정권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당들의 질타에 이어 각종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동아리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들은 2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어떤 것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인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민대협)도 이날 일본대사관 집회를 통해 "위안부 TF 보고서 발표 직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찾아간 사람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라며 "진정한 촛불 정부라면 일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히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부는 10억엔을 당장 반환하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도 이날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합의는 야합”이라면서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시민단체들과 대학생들은 정당들의 흐름보다는 좀 더 강력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자유한국당의 '나홀로' 행보
이런 가운데, 유독 자유한국당만이 이 같은 흐름과는 동떨어진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28일 국회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밝히고 단죄할 때에도 법과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영속성과 안정성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모두 부정하고 없는 것으로 하기에는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너무나 크다"면서 "문재인 정권의 잣대로 역사적 단죄를 받기에는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찬란하다"고 언급했다.
계속해서 그는 "문재인 정권은 그것이 어떤 나라든 신뢰의 대한민국과 함께 한 외교적 약속과 합의들이 모두 까발려지고 전임 정부의 정책적 결정들이 단죄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계 우방들이 느끼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장 대변인은 '한미 FTA'와 '주한미군'을 사례로 들어가면서 '국가적 영속성과 안정성 보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보자.
"예를 들어,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간 면면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함께 지켜왔던 한미 혈맹의 유대관계가 자국민이 희생 당한 아주 나쁜 동맹이라고 규정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미 FTA를 전면 폐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 입니까. 그 이면에 잘못이 있었다고 모두 공개해서 단죄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미국을 믿고 그 어떠한 계약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외교문서는 30년 동안 비공개를 하는 것이고 비공개 대통령 기록물도 30년이 경과하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서 국가적 영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되 먼 훗날 공개해서 당시 정부를 역사가 평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와 절차를 만든 것입니다"
이에 더해 그는 "우리는 이것을 법치라고 부른다. 이것을 나라다운 나라라고 부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인권'은 최상위의 개념
민주주의와 인권의 모범사례로 곧잘 거론되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1913~1992년) 전 독일 총리는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뱌의 ‘유태인 봉기영웅 기념비’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 600만명에 대해 사죄했다.
당시에 브란트 총리는 언론에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며 인류와 역사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두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브란트 전 총리가 유태인 학살에 직접 관여했던 가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전의 사건때문에 사죄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독일 정부의 수장들은 2차대전때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사죄를 했고 독일 국민들은 지금까지도 그 사건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밖에도 독일 검찰이 2차대전 당시 폴란드의 벨제크 강제수용소 친위대(SS) 경비병이었던 사무엘 쿤츠(88)를 68년의 세월이 흐른 뒤 기소한 사건도 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아돌프 아이히만(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최종해결 작전’을 기획하고 지휘한 인물)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해 2년 뒤 교수대에서 처벌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는 선진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자유'와 '인권'의 가치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임을 공인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에 반(反)하는 행위를 한 자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없이 끝까지 단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도 이 같은 맥락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