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항공 사고로 가족을 잃은 가장과 그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관제사의 ‘사고 이후’ 고통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 2002년 위버링겐 상공 공중 충돌사고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엘리어트 레스터 감독, 아놀드 슈왈제네거, 매기 그레이스, 케빈 지거스 등이 출연했다.
시스템의 잘못과 관리 실패가 만든 희생자
건설현장 작업반장 로만은 우크라이나에서 오게 된 아내와 임신한 딸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간다. 하지만 가족이 탑승한 항공기는 지연되고, 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공중 충돌사고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을 잃는다. 이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된 관제사 제이콥 또한 자신의 실수로 7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영화에 영감을 준 실제 사건 위버링겐 공중 충돌사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사에 남을 사건이다. 이 사고는 국가 별로 달랐던 항공 규범을 통일시키는 계기가 될만큼 구조적 문제를 노출시켰다. 관제사의 책임이 지적됐지만, 한 사람의 실수라고 보기에는 전반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항공경보장치와 관제사의 지시가 불일치 할 때 무엇을 따를지에 대한 규정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문제였다. 이외에도 두 명의 관제사가 처리할 업무를 혼자 떠맡았던 것도 사고의 원인이 됐다. 부족한 인원과 과중한 업무로 한 명의 관제사가 일을 맡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하는 잘못된 관행을 회사는 오랜시간 눈감아왔다. 기계의 노후와 점검으로 인한 통신 상태의 불량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이유로 실제 관제사는 법적 책임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더욱 충격적인 면은 사고 이후 피해자 가족 중 한 사람이 관제사를 찾아가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이 지점에 보다 비중을 둔다. 유가족과 관제사. 어떤면에서 두 사람은 시스템의 잘못과 항공사의 관리 실패가 만든 사고의 희생자다. 사고 이후 이 두 사람의 심리상태와 행동은 많은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대부분은 두 인물의 패닉 상태를 관객에게 공감시키기 위해 애쓰는데 할애한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
사랑하는 가족을 한 순간에 잃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것도 처참한 사고로. 그 사고가 더구나 일어나서는 안되는 황당한 착오와 엉성한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면 유가족의 상처는 몇 배로 더 클 수밖에 없다. 사고를 야기시킨 비합리적 시스템에 비하면 유가족에 대한 심리치료부터 보상까지 항공사의 자기 보호와 형식적 처리는 매끄럽다. 항공사는 법적 봉합에만 신경을 쓴다. 사고자 숫자에 따라 보상금을 책정해 유가족과 합의를 신속하게 이끈다. 하지만 이 같은 사고 처리는 유가족의 고통을 씻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항공사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주인공 로만은 가족 사진을 들이밀며 돈보다 사과를 우선 요구한다. 영화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항공사의 합의 제안 장면에서 끝내 관계자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보상만 논할뿐, 진정한 사과와 책임은 없다.
영화는 관제사도 유가족에 비할만큼 고통받는 이 사고의 또 다른 피해자로 그린다. 그는 특별히 태만하거나 무능력하지 않았음에도 한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사망 사건의 가해자가 된다. 살인자로 지탄받고 이웃에게 버림받는다.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으며 죄책감에 의해 패닉상태에 빠지자 가족과 함께 지내는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영화는 두 인물 모두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원한 피해자도, 자기방어를 위해 그 말을 할 수 없었던 가해자도 안타깝다.
영화는 자극적인 픽션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두 인물을 오가며 일상의 무너짐과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의 우울감을 쌓아나간다. 하지만 실화 자체가 가진 논란에서 더 나아가는 새로운 시선은 많지 않다. 실화에 없는 마지막 장면이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강조하긴 하지만 평이한 메시지다. 오히려 실화에 존재하는 사고 규명과 책임 보상 과정에서 유가족들을 배려하지 않은 항공사의 태도나 구조적 문제들을 좀 더 부각시키는 편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섬세한 심리 표현이 요구되는 캐릭터를 소화하기에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연기가 부족한 느낌이지만 배우의 상징성 덕분에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평이한 영화기는 하지만, 두 인물이 경험하는 극단적 비극이 모든 사람의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점이라는 사실이 가장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다. 영화는 가해자의 처벌이 유가족에게 사법적 복수가 된다면 특정 가해자가 없는 억울한 사고에서 유가족은 어떤 혼란에 빠지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의 ‘세월호 사고’는 물론, ‘삼풍 백화점’ ‘성수 대교’ 등 구조적 문제로 야기된 대형참사의 상처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