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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축소판, 그날 밤 ‘알제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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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비극... 인종차별, 편견과 혐오의 속성 <디트로이트>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허트 로커>의 거장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이다.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 당시 한 모텔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과잉 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진실 규명과 처벌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적 비극을 오늘의 미국에 빗댔다. 존 보예가, 안소니 마키, 윌 폴터 등이 출연했다.

심장 조여오는 심문 장면 백미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이제는 버스에서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하거나, 흑인을 대상으로 한 백인의 집단 린치가 공공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버스에서는 아닐지라도, 흑인이 백인에게 공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치명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공권력의 흑인 살해가 대표적 경우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이 시대에도 여전한 차별과 편견, 분노와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1967년의 알제 모텔 사건을 불러온다.

전반부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디트로이트 폭동의 현장을 재현한다. 약탈과 방화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며, 주방위군 장갑차까지 투입되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폭동의 계기가 공권력의 인종 차별에 따른 분노임을 명확히 하지만, 저항의 수단이 꼭 저토록 폭력적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하는 면도 있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 같은 질문을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알제 모텔 사건을 재구성한 중반부다. 경찰들이 저격범 색출을 위해 모텔 투숙객을 심문하는 대목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특유의 감성적 서스펜스의 진가를 보여준다. 경찰의 충격적인 폭력 행위는 어둡고 좁은 모텔 복도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야만의 세계로 만든다. 제복과 총, 무감정 등의 비인간적 요소들이 주는 공포에 피해자의 피, 땀, 호흡, 떨림, 눈물, 비명 등의 생생한 묘사가 더해져 관객의 심장을 죄여온다.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모르는 압박감과 분노 등 피해자의 복합적 감정을 관객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종적 프레임을 넘어 다양한 인간군상

알제 모텔이라는 작은 공간, 그것도 그 곳의 복도라는 한정된 공간은 미국의 축소판이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관찰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현재 미국의 얼굴이다. 피해자 중에는 베트남 참전용사도 있고, 건실한 노동자도 있으며, 유명 가수로 도약하기 직전의 청년도 있다. 백인과 똑같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평범한 흑인 시민인 것이다.

백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타협적 흑인 멜빈 디스무케스 캐릭터의 딜레마는 인상적이다. 흑인으로부터 백인 재산을 지키는 그의 직무는 그 자체가 많은 것을 내포한다. 흑인으로는 유일하게 현장에서 피해자가 아닌 신분으로 존재한다. 사설 경비원이라는 정체성은 경찰이라는 가해자 백인 신분의 권한보다 하위이면서 협조자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는 기득권을 ‘연기’하며, 결코 백인과 갈등하거나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로서 얻은 작은 권한을 때로 흑인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사용한다. 저항 세력도 아니고 기득권자도 아니며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극도로 불공정한 사회에서 도시 노동자의 지위를 유지하며,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현실적 생존법이다. 실제로 이 같은 방식 덕에 폭력과 살해에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중립적 정체성 때문에 그는 살해 용의자로 지목받는다. 자신의 생존원칙이 파멸로 이끈 꼴이다. 아무리 기득권의 잣대에 맞춰 살아도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진짜 백인의 친구가 될 수는 없음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겉은 백인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현재의 흑인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흑인 중 유일하게 증언하지 않는 그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한 고발조차 할 수 없다.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믿을만한 흑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 그가 느낀 구역감은 위선적 백인사회에 대한 경멸이자 주류에 기생한 비주류자로서의 자기혐오일 것이다.

멜빈과 비슷한 선상에서 폭력에 억지로 동참하는 백인, 흑인을 도와주는 백인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도 부조리한 시스템에 정면 도전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양심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의 전형이다. 영화는 그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단정하지 않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감독은 흑인 피해자들과 함께 벽에 손을 얹고 머리를 파묻힌채 고통의 시간을 보낸 두 명의 백인 여성을 통해 편견과 차별의 속성을 더 깊이 파헤친다. 흑인 차별을 여성 차별과 나란히 세우며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이들은 흑인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창녀로 간주되며, 성추행과 언어폭력, 구타 등을 당한다. 가해자인 경찰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혐오감의 분출일 뿐임도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보편적 테마

법정 장면을 비롯한 후반부는 알제 모텔 사건이 왜 사이코 인종차별주의자 개인에 의한 범죄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를 강변한다. 그날 밤의 폭력은 사법기관도 언론도 공범자인 미국 사회가 낳은 결과다. 가해자는 아무 일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 그 날의 기억이라는 감옥 속에서 살아야 하는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특히 가수를 꿈꾸던 래리 리드의 트라우마와 선택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감독의 성찰이 녹아있다. 살아남은 자의 참담한 상처는, 끝나지 않은 역사에 대한 미국인의 아픔을 묘사한 것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공권력의 폭력, 불공정한 사법체제, 편견과 차별의 속성, 혐오감의 실체, 부당한 권력을 대하는 자세 등 ‘영원한 인간의 테마’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호흡은 꽤 길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장황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캐릭터의 상징성을 구축하기 위한 섬세한 장치들이다. 흑인들의 저항 수단이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백인이 흑인에게 해왔던 수많은 폭력의 야만성을 생각하면 저항 방식의 논리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알제 호텔의 단편적 사례만 봐도 백인의 혐오와 폭력에는 광기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축적된 분노의 배경을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이 영화에 등장한 부조리는 모래알 정도에 불과하다. 감독은 바로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와 다소 긴 러닝타임이라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것도 모자라 오프닝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함축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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