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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창간 특집] '고문·최루탄 정권'에서 '통일예약 정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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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 잡고(Hand in Hand)’ 업그레이드 버전 나올까
‘통일한국’은 위기와 기회의 ‘양날의 칼’


[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1980년대 군부독재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6월항쟁을 통해 형성된 이른바 ‘87년 체제’의 끄트머리에 우리는 서있다. 이제 우리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최근 개최된 6·12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바야흐로 남북 평화공존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또한, 통일 이후 한반도의 모습을 우리가 어떻게 채색해 나가야 할지 모색해보는 것은 상당히 유익한 일일 것이다.


88년은 ‘민·관·군 총력전’, 2018년은 ‘평화공존’ 추구


80년대 후반의 정치를 규정지은 2개의 축(軸)은 ‘87년 6월항쟁’과 ‘88년 서울올림픽’일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이어져 온 군부독재의 시대는 6월 항쟁을 통해 종식됐고, 세계 속에서 ‘변방의 가난한 소국(小國)’ 취급 받던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중심 국가로 발돋움한 계기는 서울올림픽 개최라고 평가된다.


서울 올림픽이 동유럽 공산 국가의 와해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그때까지도 헐벗고 굶주린 나라였던 것으로 알고 있던 동유럽 공산 국가들이 서울 올림픽을 통해 자국보다 더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서울 올림픽은 동유럽 각국에게 공산정권에 대한 회의감을 주었고, 이것이 공산정권 와해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가 폴란드 및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동구권 국가 및 공산주의 국가들과 대대적으로 수교한 것은 1989년부터이므로 서울올림픽의 긍정적 영향의 결과라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 해석일 것이다. 여하튼, 그때까지 전쟁과 기아·가난이라는 키워드로 알려져 있던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것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야말로 냉전시대의 첫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 서울올림픽을 통해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냉전시대의 종말을 알렸던 것이다. 화합과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6월 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의 종식을 가져온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올림픽을 핑계로 끝까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제5공화국의 명줄을 끊은 6월 항쟁의 발생과 6·29 선언이 발표된 이유 중 하나가 ‘민주화 없이 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서울 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였다는 점을 봤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 유지에 도움 받으려고 유치한 올림
픽이 오히려 자신의 명줄을 끊어놓은 셈이 된 것이다.



올림픽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린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서울 올림픽이 민주화 과정에서 안전판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견해에 힘이 실린다. 서울올림픽의 효과는 교통·통신 측면에서도 발전을 가져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등 1기 지하철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성했고, 새마을호 열차가 올림픽 대비용으로 제작됐다. 카드형 공중전화도 서울 올림픽을 위한 중요한 시설이다. 커피 자판기도 바로 이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확산됐다. 또한 1980년대 초반까지 공중화장실 시설도 대폭 개선됐다.


서울올림픽은 긍정적인 효과만 거둔 것은 아니다. “허울좋은 86, 88올림픽이 없는 사람 다 죽여요. 살고 있는 주민들 다 쫓아내고 어쩌겠다는 거예요. 이건 재개발이 아니고 투기개발이요, 투기개발”(‘말’지 1986년 7월 31일자 P49. <투기 개발에 저항하는 오금동 세입자들>)이라는 어둠도 함께 가져왔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이라는 무소불위의 명제 앞에서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길거리로 내몰렸고 심지어는 성화 봉송 중에 불량주택이 보이면 곤란하다며 전국 성화 봉송 루트 주변 경관에 보이는 판잣집이란 판잣집은 전부 무단으로 철거됐다. 부랑자, 거지,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보이면 잡혀가 부랑자/장애인 보호시설에 수용됐다. 올림픽 개최 이후 장애인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율배반적인 행태였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가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 국가 전체가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린 형국이었다. 그야말로 ‘민·관·군의 총력전’으로 비쳐졌다. 그런 과정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회적 사건들이 발생했다. 빛에 가려진 어둠이 결코 작지 않았던 시기로 평가된다.


서울올림픽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그 이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킨 또 하나의 사건은 87년 6월항쟁이었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6월 민주항쟁: 3·1운동, 4월혁명과 비교’라는 글에서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것은 박종철을 죽게 만든 ‘고문’과 더불어 이한열을 쓰러트린 ‘최루탄’이었다. 6월 항쟁기간 동안 총 67만 발의 이상의 최루탄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전두환 정권은 ‘최루탄 정권’으로 불렸다. 최루탄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정권이라는 의미였다”며 “이런 국가폭력의 폭압성 속에서 비폭력시위 주장은 항쟁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썼다.


이어 그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가폭력의 폭압성 앞에서 무조건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이 시위의 열기를 식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6월 항쟁 당시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과도한 호소가 국가의 실체를 중립적 조정자로 희화화했으며, 결국 국본을 비롯한 운동 지도부는 평화적 시민 항쟁이라는 명분 아래, 밑으로부터 떨쳐 일어나고 있던 대중의 의식을 가두려 했던 87년 항쟁의 ‘숨겨진 배신자’라는 신랄한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정상호 서원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는 ‘80년대 말 6월항쟁과 시민운동의 태동’이라는 글에서 “1980년대까지 사회운동의 기본 성격은 정치적 차원에서는 권위주의에서 민간 정부로의 정치권력의 변화를 추구하였던 민주화운동이었으며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는 독점재벌을 비롯한 기득 세력의 착취와 수탈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였던 민중운동이었다”며 “그렇지만 사회개혁을 기치로 내건 이들 단체들은 자신들의 지지 및 활동기반을 전문직이나 중산층에서 찾았다. 이들의 활동은 ‘보도지침’이나 ‘KBS 수신료 거부운동’, ‘개헌지지 서명운동’에서 드러나듯이 일반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서 급속히 확대돼 나갔다”고 분석했다.


87년 6월 항쟁이 가져다 준 이른바 ‘87년 체제’는 이후 30년 동안 이어졌다. 지금의 우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의 남북 간의 화해무드와 거기에서 이어진 4·27 판문점 선언 그리고 최근 6·12 북미정상회담을 경유하면서 ‘평화공존의 시대’의 문 앞에 서있다.


통일한국은 위기와 기회의 ‘양날의 칼’


30년 후 우리의 미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통일 한국’이다. 다만, ‘통일 한국’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라고 예측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반도에서 ‘통일 한국’이라는 명제는 어쩌면 한국이 가진 이슈 중에서 가장 풀기 복잡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당장 통일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제이고 그래서 일시적이든 아니든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수 있고, 안보 정치적으로는 보수 진보를 떠나 국민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으기가 어렵고 그러다보니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다가도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한반도를 둘러 싼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문제도 작은 문제가 아닌 만큼 고차방정식을 풀듯이 풀어야만 풀리는 문제라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비핵화’라는 최대의 난제를 최근 진행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조성된 화해와 평화무드를 통해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특히 경제와 관련해 깊이 고려해야할 문제는 통일로 인해 증가되는 ‘인구 증가’라는 부분이다. 가난한 집과 부잣집이 합쳤는데 가난한 집의 식구가 많다는 점이다. 서독의 인구가 동독보다 4배 많았는데, 남한은 북한보다 인구가 2배 많은 수준으로 가족이 50%나 늘었는데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바꾸면, 4인 가족인데 1사람 입양한 것과 똑같이 4인 가족인데 2사람 입양한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가난의 정도’가 심각하다는데 있다. 가족이 더 많이 늘어난 것까지는 감수하겠는데, 가난한 정도가 우리의 경우, 동독에 대한 서독의 부담보다 20배나 더 크다. 다시 말해, 내 재산보다 반쯤 가진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된 것과 내 재산보다 1/40 가진 사람들과 살게 된 차이라고나 할까. 통합한 상대가 재산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보면 통일 비용에 대한 압박감은 상당히 무거울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을 긍정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난한 인구는 늘지만, 단기와 중기적으로 인건비가 하락하게 될 확률이 있다. 즉, 우리 제품의 단가 경쟁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동독은 경제력에서 서독의 50%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국만큼 인건비 효과가 발생할 수 없었지만, 남한의 복지 수준은 독일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통일 후 독일의 가장 큰 비용은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 비용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 긍정적 측면도 있다. 통일 후 인구가 다소 부담스럽게 늘게 되겠지만, 반면에 활용할 수 있는 큰 땅이 생
기고 풍부한 자원이 생긴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통일전의 서독은 동독과 통일하게 됨으로 인해 불과 서독의 1/4 정도의 크기의 땅이 늘었을 뿐이지만, 한국은 남한보다 훨씬 더 큰 새로운 땅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인구는 겨우 1/2 수준으로 늘지만, 땅 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한 바다면적도 크게 확장된다. 더구나, 늘어난 면적은 중국과 연접해 있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새롭게 신설될 철로를 통해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는 철의 실크로드가 펼쳐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과의 교역이 가장 많은데 운송비가 획
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은 육로로 한국에 들어온다. 수치적으로 보면 우리에겐 너무나도 불리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분명히 보인다.


결국, 상당히 복잡한 문제지만 우리가 지혜롭게 풀어내기에 따라서는, ‘통일 한국’ 이후의 모습은 장밋빛으로 채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이 ‘고문과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정권이었다면, 지금부터의 30년은 ‘통일을 예약하는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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