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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안의 풍수의 세계

[풍수인문학] 율곡 “토정은 기화이초(奇花異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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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 한국인의 ‘삶의 원리’ 상징
‘과유불급(過猶不及)’ 경각심 가져야
“필부의 재앙은 많은 보배에서 초래”


[시사뉴스 정승안 교수] 오늘날에는 존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인 역할모델이 없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본보는 것은 혼란한 시대에서 새로운 길 찾기가 될 수도 있다. 조선 중기는 이른바 이인(異人)이나 술객(術客)들로 불리며 천문·역학·점복이나 풍수지리의 사상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던 뛰어난 선비들이 활동하던 조선사상의 황금기였다.



‘사랑채에는 정감록, 안채에는 토정비결’


한해가 저물어갈 때나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신수를 점치며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토정비결이다. 토정비결은 길흉화복을 내다보는 ‘비결서’라고도 하지만,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다. 오늘날에도 가족들 간의 담소와 재미거리로서 활용되는 풍습의 하나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조선후기까지만 하더라도 ‘사랑채에는 정감록, 안채에는 토정비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정감록이 사회정치적인 예언이나 변화에 대한 기록이 많았다면 토정비결에는 사소한 일상의 변화에 대한 기록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고증에 의하면 토정비결이 등장한 시기와 토정의 유고와 관련해 살펴보면 토정 이지함이 지은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애초에 썼던 토정의 저서는 찢어서 없앴다는 기록도 있지만 후대에서 토정의 명망성에 기대어 가탁하였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토정 이지함과 관련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것은 토정의 삶과 신비스럽고 기이한 행적으로 가득한 그의 삶에 기대어 신비성을 높이고자 한 때문으로 보인다.



토정비결의 원리는 기본적으로는 주역의 원리와 맞닿는다. 주역의 괘가 64괘로 이루어져 있는데, 토정비결에서는 48괘만을 대상으로 활용한다. 16괘는 쓰지 않는다. 주역에서는 424개의 상이 등장하지만 토정비결에서는 144괘만이 활용된다. 물론 최근의 연구자는 토정비결에서도 64괘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토정이 남긴 원본 ‘토정가장결’의 연구를 통해 본래 모습을 찾았다는 이들도 있다.


토정비결은 음양오행을 활용하는 구조는 사주팔자의 원리와 비슷하지만 태어난 시간(生時)을 제외한 연월일의 삼주(三柱)만을 활용한다. 먼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는 나이의 수에 해당하는 태세수(太歲數)를 찾아서 8로 나눈 수를 상괘(上卦)로 한다. 다음에는 태어난 달(月)의 수(큰 달은 30, 작은 달 29)와 자신의 태어난 달에 해당하는 월건수(月建數)를 6으로 나누어 얻은 수를 중괘(中卦)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태어난 생일의 날짜를 일진수(日辰數)로 하여 3으로 나눈 나머지 수를 하괘(下卦)로 하여 작괘한다. 그 숫자에 해당하는 숫자를 찾으면 한 해의 전체 운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토정비결은 전체 144괘로 구성되어 있다. 근거 없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분석 틀에 기반하였기에 한 해와 월의 운세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토정비결의 작괘 방법은 주역에서의 괘를 구하는 방법과는 상당히 다르다. 주역에서는 천리와 형이상학에 대한 음양론적 논의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토정비결에서는 길흉화복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생활세계와 우리의 일상적 삶의 내용을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주역의 12벽괘에서도 절후의 변화를 음양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토정비결에서는 괘상, 괘사 및 월별 길흉을 말한 총 6,480구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특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부귀(富貴), 화복(禍福), 구설(口舌)과 개인의 삶의 구비에서 만나게 되는 사건들과 길흉을 중심으로 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민초들의 생활세계에서 더욱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주역에서 파생했지만 한국인의 삶의 원리에 대한 경계와 태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토정비결의 문장들은 한 해나 열 두 달의 운세를 4언 3구의 시구로 풀이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한글로 번역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구석구석에서 깨알같은 비유와 은유 그리고 상징적인 내용들을 만나게 된다. 더구나 아무리 흉한 괘를 만나더라도 일상의 사소한 측면에 대한 경계의 문구와 희망적인 내용들이 곧 뒤따라 나온다. 문맥을 따라 가다보면 빨리빨리의 현대사회에서 놓치게 되는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의 경각심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토정비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선비의 재앙은 나를 알아주는 데서 생겨”


토정 이지함 선생은 마포 강변가(마포 용강로 부근)에서 흙집을 짓고 살았다고 토정(土亭)선생이라 불리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흙담 움막에서 청빈하게 지냈는데 토정 선생이 머물던 부근지역은 오늘날 ‘토정로’라는 도로명까지 부여되어 있다.


토정은 도학과 문장으로도 당대에 명문이 높았지만 기행이적(奇行異蹟)으로 더욱 세상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 때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장사를 하면서 불과 몇 해만에 많은 재물을 모았었다. 또 한때는 어느 섬에서 농사를 지어 몇 백석지기를 장만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해서 모은 재물을 그는 하나도 자기 소유로 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올 때는 모두 도민(島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동패락송>에는 ‘솥을 머리에 쓰고 그 위에 패랭이를 얹어서 밤낮으로 다녔다. 잠을 자고 싶으면 길가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서 잤다. 오고가는 소나 말이 부딪혀서 동서로 옮겨 다니다가 5,6일 후에 비로소 깼다. 나막신을 신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저잣거리에 나오면 주변에서 손가락질하며 비웃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10여일 정도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너끈했다’는 기록도 있다.


토정선생은 제갈량과 비교되기도 한다. 황강 김계휘(1526-1582)가 율곡 이이에게 “형중(토정)이 제갈량에 비해 어떠하냐?”고 하니 “토정은 직용할 인재는 아니나 물질에 비하면 기화이초(奇花異草)나 진금기석(珍禽奇石)와 같아서 놓고 구경이나 할 것이지 포금(布錦) 숙속(菽粟)같이 긴요한 것은 못된다”고 하였다. 후에 토정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내가 콩이나 조가 못된다면 도토리나 밤은 될 것이니, 어찌 전연 쓸 곳이 없으랴”했다고 한다.


의병장으로 이름난 중봉 조헌(1544-1592)은 토정을 스승으로 섬겼다. 토정은 죽기 전에 자기가 묻힐 자리를 정해놓아 그 자리에 묻혔는데 훗날 증손자 되는 이가 감사를 지내면서 당시 유명하다는 지관의 말을 듣고 이장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파고 보니 안에서 글씨가 새겨진 빗돌이 나오는데 그 빗돌에는 “모년 모월 모시에 불초손이 이 묘를 파고 개봉축하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은 바가 있어 이장을 멈추고 선생의 묘 밑에다가 조그맣게 자기 묘 자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명신록>에는 ‘조부모를 장사 지낼 때 장례 모실 산을 보니 자손들 중에 두 재상이 나오게 되어있고 막내는 불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이 스스로 그 재앙을 당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러나 이인술객이라 불리는 이면에서 선생의 진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토정집에 이르기를 “사람은 누구나 안으로는 신성스럽고 굳세기를 원하며, 밖으로는 부귀를 원한다. 귀하기란 벼슬을 안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고, 부(富)하기란 욕심내지 않음보다 더 굳센 것이 없고, 신령스럽기는 알지 않음보다 더 신령스러움이 없다. 재물이란 흉한 물건이 아니나, 나라의 재앙이 재물에서 많이 생기고, 권세 또한 흉한 물건이 아니나 필부의 재앙은 보배를 많이 지니는 데서 많이 생기고,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나 선비의 재앙이 나를 알아주는 데서 많이 생긴다”고 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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