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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안의 풍수의 세계

[풍수인문학] 감천마을 ‘풍수적 마을공동체’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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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뿌리 둔 '태극도 마을' 조성
앞집과 뒷집 가리지 않게 지어
천마산-옥녀봉 ‘음양합덕지궁’


감천문화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천마산(청룡)과 안산격인 옥녀봉(백호).
▲ 감천문화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천마산(청룡)과 안산격인 옥녀봉(백호).


[시사뉴스 정승안 교수] 최근 들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뉴스 중 하나는 ‘원도심활성화’ 또는 ‘도시재생’이다.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법)’이 시행된 이래,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각각 지원 조례를 만들어 나름의 대책을 수립해오고 있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 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쇠락한 지역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활력을 불어넣고, 다시 자생력을 갖추게 하여 다시 활동적인 지역으로 재생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다양한 기획들과 전문가들이 등장하고 여러 정책들이 제시된다.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마을활동가들의 활동과 지원금들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남는 것은 ‘벽화’들과 자연스럽지 않은 ‘스토리’들이다. SNS의 날개를 타고, 곳곳에서 찾아오는 순례객들의 물결은 ‘성공사례’라는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대부분의 원도심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상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마을을 찾아서, 새로운 목표를 중심으로 헤쳐 모인다. 이른바 토건업자들의 개발만능주의와 ‘재생마을 사냥꾼’들의 행보들이 겹쳐 보이는 요즘이다.


이런 곳들이 작가들의 작품 소재와 관광의 명소로 부상한 것은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2010년 컨텐츠융합형 관광협력사업(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 2012년 마을미술 프로젝트(마추픽추 골목길 프로젝트)와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같은 도심재생사업이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


60년대의 감천문화마을.
▲ 60년대의 감천문화마을.


최근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부산의 산동네 마을이 ‘감천문화마을’이다. 인근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독특한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한국의 마추픽추’라고도 불린다. 이 좁은 마을의 골목길에 한 해 동안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58년에 만들어진 오늘날 감천2동의 근본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르기도 하지만,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다. 1918년 조철제가 증산사상에 기초해 세운 종교인 태극도의 신앙촌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몇 명이나 알았을까.


감천문화마을의 모습은 이주 초기에 화려한 옷만 추가된 셈이다. 모두들 지금의 감천이 예쁘고 아름답다고 한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레고블럭처럼 산비탈 계단에 가지런히 놓여있지만, 특이하게도 어느 집 하나 햇살이 가려지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산동네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애환과 흔적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에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태극마을’ 인가


태극도는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 1895-1958)에 의해 만들어진 증산계의 종교이다. 1919년 전북 정읍(井邑)에서 창시한 무극대도교(無極大道敎)가 모체다. 항일 투쟁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부친과 함께 15세 때부터 그 곳에서 살다가 1917년 강증산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입산수도한뒤 개안(開眼)했다고 한다. 조철제는 23세에 귀국, 증산의 유족들과 함께 1921년 ‘무극대도’를 만들어 기세를 올리고 기반을 닦았다. 일제의 민족종교 탄압정책에 의해 약화된 교세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던 중에 부산에서 무극대도를 태극도로 개칭하며 자리 잡았다. 부산의 교단은 감천동에 남아 있고 태극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감천문화마을에 교단이 있다. 감천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는 일명 ‘태극도 마을’로 일컬어졌다. 지금도 태극마을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소통·나눔·정(情)의 공간으로


전국에 흩어져 살던 태극도인들은 안면도와 태안, 함안을 거치며, 1948년 부산 보수동에 정착한다.  전국에서 몰려 온 피란민들과 열악한 주거문제로 판자촌을 외곽으로 이주시키는 부산시 정책에 따라 집단이주지로 선택된 곳이 감천2동이었다. 애초에는 30여 가구의 원주민이 전부였던 감천마을에 1955년 3000세대, 1만여 명의 태극도인들이 이주하며 신도들에 의해 ‘도인촌’이 건설됐다. 당초 사람이 살기에는 몹시 척박한 땅이었다. 천마산과 옥녀봉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들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돌투성이었던 천마산과 옥녀봉을 계단식으로 정비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곡괭이와 손, 그리고 세숫대야와 새끼줄, 가마니가 작업장비의 전부였다. 집을 지을 수 있는 재료들도 보수동에서 이주해 올 당시 살던 집을 뜯어 가져온 나무판자가 전부였다고 한다.


천덕수 우물: 우물(大德)에까지 종교적 신성성을 부여했다.
▲ 천덕수 우물: 우물(大德)에까지 종교적 신성성을 부여했다.


태극도인들의 삶과 이상에 대한 꿈과 희망 덕분에 이들은 감천을 삶의 터전으로 일구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집과 뒷집이 서로 가리지 않게’, ‘모든 집들이 담과 마당을 두지 않고’ 형제의 정을 나누듯 ‘경계가 없이’ 집을 짓는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감천을 9개의 ‘감’으로 나누고, ‘종과 횡으로 일정한 계단과 길을 내어’ 정비했다. 이주 초기부터 5감을 중심으로 팔괘의 방위를 고려해 9개 권역으로 구획하는 등 도시계획에 따라 마을을 조성했다. 태극도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상호부조로 이룩했다.


풍수 논리를 '종교적 상징'으로


감천문화마을 서쪽에는 옥녀봉이, 동쪽에는 천마산이 솟아있다. 북쪽에는 반월령(반달고개)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곳을 물형론(物形論)으로 '옥녀단장형(玉女端粧形)'에 속한다는 평가도 있다. 여인이 용모를 단정히 하고 있는 형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미인이 단장하려면 거울 형상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겠지만 ‘옥녀봉’이 있기에 나오는 언급 정도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옥녀형인만큼 음의 기운이 강하다는 논리도 어설프다. 종교적 신성성의 극대화를 위해 풍수적 상징과 논리를 결합하며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길을 끈다.


한반도의 '태극 형국'인 감천문화마을.
▲ 한반도의 '태극 형국'인 감천문화마을.


태극도에서는 이미 105년 전 현재의 감천(甘川)이라는 지명이 예언됐다고 주장한다. 1909년 강증산이 남긴 책자에 현재의 감천지명과 ‘감천’ 모습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또 후천팔괘의 배치에 따라 계획된 마을의 모양이 항공사진을 보면 ‘한반도’ 형국으로 보인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부산이 한반도의 산과 물과 정기가 한곳에 모이는 지세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감천의 천마산은 양(陽)이고, 옥녀봉은 음(陰)으로 태극을 이루어 ‘음양합덕지궁’이라는 것이다. 천마 4개의 봉우리와 옥녀의 4개봉은 팔괘(八卦)를 이루고 있어, 태극(太極)이 춤추는 아름다운 감천에 태극도가 있다는 것이다. 풍수의 논리를 종교적 신성성을 배가하는 장치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곳은 한국의 전근대사에서 풍수를 활용한 종교적 마을공동체의 대표적인 모델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다. 감천문화마을을 답사할 때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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