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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안의 풍수의 세계

[풍수인문학] 인간 운명은 '주거'에 달려 있어

대들보에 사는 ‘성주’가 길흉화복 관장
집을 설계하고 지을 때 정성 기울여야


[시사뉴스 정승안 교수] 인간의 일상과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식주 세 가지이다. 먹지 않고 입지 않으면 한 시도 사회적 활동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삶의 1/3을 차지하는 잠자리에 해당하는 주거도 일상의 주요한 기반이다.



인간의 역사는 ‘집과 주거’로 읽혀


집은 일반적으로 보금자리를 의미한다. ‘집’이라는 말의 어원은 ‘짓’으로 ‘집을 지은 것’이라는 건축물에 해당한다. 한자로는 ‘家’ 또는 ‘室’, ‘屋’ 등 다양한 용례가 있다. 일반적으로 쓰는 가(家)를 ‘갓머리’에 해당하는 부수와 돼지(豕)를 본 딴 상형문자라는 설도 있다.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집’의 본래적 기능을 넘어 인간은 주위환경에 대한 시지각적인 인식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주거 입지나 건축물의 형상, 형태들이 인간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검증된 관념이기도 하다. 삶에서 주거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보편적인 문화양식의 하나이다. 인간의 역사는 집과 주거를 통해서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풍수는 집터를 구하고 건물의 모양과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물론 건축물의 모양이나 건축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된다. 풍수에는 해당 지역과 문화의 특성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우리 조상들이 집을 대하는 태도에는 최대한의 정성과 믿음이 의례로 반영되어 있었다. 풍수지리라는 음양오행의 체계화된 논리의 이면에는 이러한 전래의 민간신앙과 습속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신이라는 비판적 언사 이전에 수천 년 동안 생활문화가 체화된 산물이자 사회사상으로 이해할만하다.



사직단은 국가의 최고 상징


집을 짓으려면 먼저 입지를 선정하고 터를 잡는다. 여러 가지의 여건들을 고려한 계획과 설계들이 이루어지면 집터의 안전과  보호를 맡아보는 신인 ‘터주’에게 집 짓는 것을 알리는 ‘고사(告祀)’의 의례가 진행된다. 이 때에는 마을 주민이나 친인척 또는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집의 배치나 터의 유래 등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터주는 국가적인 의례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사직단(社稷壇)이 그것이다. 사직의 사(社)는 터주를 의미한다. 옥편에서는 ‘땅 귀신에게 제사’드린다는 의미도 지닌다. 직(稷)은 농사를 주관하는 신을 의미한다. 사직신은 국가의 영토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이다. 동네마다 ‘사직동’이 있는 것은 그곳에서 국가를 위한 의례를 거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이 3척에 사방으로 3층의 단을 쌓아 만들어진 사직단은 1393년 태조 2년에 마련되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이 천명에 의해서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중요한 상징의례였던 것이다. 종묘가 왕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었다면 ‘종묘’와 ‘사직’은 국가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직신을 위한 제사의 규모나 절차는 공자의 문묘제례나 종묘제례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2월, 8월, 동지 그리고 섣달그믐에 제례를 올린다. 나라에 큰 일이 있거나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도 거행했다. 풍년을 위한 기곡제(祈穀祭)도 지냈다. 또 각 지방관아에도 사직단을 세우고 나라의 태평과  풍년을 빌었다. 우리의 사직단을 일본의 ‘신사’로 대체하려는 일제의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사직신을 없애지는 못했다. 사직단의 의례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터주는 일어날 재앙 미리 알려줘


터주는 앞으로 일어날 재앙을 미리 알려준다는 믿음은 삼국유사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의 정신을 사직신에서 찾아내는 것처럼, 집 만들기의 시작을 터주에게 올리는 고사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역마다 의례의 양식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토지지신에게 올리는 제문에는 “땅을 파헤치고 집을 지으니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소서”라는 내용들이 반영된다. 집터 가운데에 흙을 적당히 모으고, 집터의 네 귀퉁이에 술을 조금씩 붓고, 사방의 신들을 위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또 집터를 지켜주는 터주는 집 뒤쪽이나 장독대에 모셔진다. 작은 항아리에 ‘쌀(햅쌀)’을 담고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고깔모양을 씌우기도 한다. 또 무속의 논리와 결합하면서 ‘터신단지’, ‘지신단지’와 같이 오곡을 넣고 땅에 넣어 목만 나오게 묻어두거나, 안방의 장롱위에 ‘신주단지’의 형태로 모셔지는 경우들은 오늘날에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들보, 집안 상서로움의 상징적 존재


건물이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 상량식과 같은 의례를 거행한다. 건물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완성하는 절차이다. 기둥에 보를 걸고 나서 그 위에 들보를 올리는 것을 ‘상량(上梁)’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상량하는 날이 목수의 생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목수들은 돈을 받아낼 욕심으로 ‘그네 태우기’를 했다.  건축과정의 중간점검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겠다.


마룻대(들보)에는 집을 지은 해, 달, 날, 시, 좌향, 축원문을 적은 ‘상량문(上梁文)’이 들어간다. 또 상량에 강태공의 이름을 적는 경우도 있는데 이 이름을 빌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상량문의 좌우 양 끝에 ‘용(龍)’과 ‘구(龜)’자를 서로 마주대하도록 써 둔다. 용과 거북이는 물의 신에 해당하므로 수(水)의 기운이 강하므로 화재를 막아주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상량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지만 막상 중요한 것을 빼먹었을 때를 지칭하는 속담에 ‘귀한 것은 상량문’이라는 말도 있다. 민간신앙의 관점에서도 집안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대들보에 거처하는 신을 ‘성주(成造)’라고 불렀다.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대들보가 부러지면 집안이 망한다’, ‘대들보가 울면 가장이 죽는다’와 같은 말은 들보가 지붕을 받치는 중요한 건축재료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들보나 기둥이 한쪽으로 쏠리면 집안에 시비가 많다’는 속담에서처럼 들보만이 아니라 기둥과 함께, 안전을 위한 조화와 균형미를 매우 중시하고 있는 우리의 생활문화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들보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집의 좌향을 선정한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들보는  집안에서 상서로움의 상징적 존재인 셈이다.


땅을 선택하고 집을 짓는 전 과정에는 이렇듯 주변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진행되었다. 우리의 일상과 운명을 결정하는 집은 공동체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정성을 다해 짓는 과정에 다양한 통과의례가 진행되었다. 인간이 사는 집과 주거에 의해 우리의 삶과 운명이 한 묶음으로 이어진다는 민간의 신앙과 믿음은 풍수적 논리에서도 하나의 원리로 관통된다.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의 전문적인 능력과 더불어 정성(精誠)을 다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건축물과 관련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번쯤은 곱씹어볼 전통의 지혜는 오직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인터뷰] “아동에 대한 특별 배려가 은수미표 복지”
[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80년대, 독재에 항거하던 젊은 청춘들의 죽음이 일상의 삶과 어우러져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하던 그 시절을 살아냈던 것이 지금의 삶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회고하는 은수미 시장을 9일 성남시청 시장실에서 만났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어린이들은 나의 삶과는 달리 굴곡지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은 시장의 발언은 어떤 배경을 통해 나왔을까. 그의 삶과 철학속으로 들어가봤다.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인생 역정에서 언제가 가장 기뻤고 언제가 가장 슬펐나. 나는 행운의 별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분신과 추락사 등의 죽음이 항상 가까이 있었던 80년대를 살아오면서, 시대에 맞서 정면도전을 했기 때문에 굴곡도 많이 겪은 삶이었다. 스스로도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살아났고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고 지금도 도전할 수 있고 심지어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지금도 꾸고 있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내가 행운의 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의 삶 전체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점이 제일 기뻤냐고 묻는다면 내가 35살




[이화순의 아트&컬처] 여인상 속에 담은 삶의 여정
[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나무를 재료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송진화(55)가 17일부터 9월19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3년만에 신작 전시를 갖는다. 25점의 신작들은 재료의 물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자아내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고, 마치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은 아이만한 여인 목조각들이 보인다. 마치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의 아들이 되면서 생명을 얻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작품들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는 작가의 모습이 그 목조각과 함께 호흡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엄마가 따로 없다. 송진화 작가는 본디 세종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다가 마흔 언저리에 꼭두 인형에 반해 나무 조각을 생각하게 됐다.“2006년부터 나무를 깎아 작업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나 같은 여인상에 담아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나무로 조각된 여인상은 작가가 살아온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게 하고, 마치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때론 성숙하게, 때론 매력적이고, 위트있는 표정과 몸짓도 보인다. 마음이 따뜻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