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2014년 8월3일 이라크 현지 파견근무를 하던 삼성엔지니어링 소속 차모 선임이 사망했다. 회사 측이 밝힌 사인은 교통사고였지만, 유족 측은 여러 정황을 들어 사고가 교통사고일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의혹의 시작은 고인이 사망당시 입고 있던 옷에서 출발한다
당시 이라크는 대표적인 분쟁지역으로 이슬람 종파 간 갈등을 비롯해 이슬람 수니파의 무장 세력인 IS 등이 국제 사회와 충돌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낳는 전쟁터였다.
지난 2014년 삼성엔지니어링(사장 박중흠)의 이라크 건설 현장에서 근무를 하던 차모 씨 또한 2007년 입사 후 국내에서 근무를 하다 2012년 5월 이라크 현지 건설현장으로 파견됐다.
하지만 차 씨는 2014년 8월 3일 저녁 9시, 현장 근로자의 비자 문제 논의 차 다음 날 오전 9시로 예정된 이라크 장관과의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밤 일행과 떠나던 중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사건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단순 교통사고로 이라크 현지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입장을 밝혀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정리되는 듯 보였다.
사고 이후 숨진 차 씨 유족들과 사건 현장에 있던 관련자들에 의해 삼성엔지니어링 측이 밝힌 사고 경위와 당시 사건 보고서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진실 공방이 펼쳐졌다.
앞서 <시사뉴스>는 ‘삼성엔지니어링, 이라크 보고서 공개하라’ 제하의 기사를 통해 △차 선임 사망 당시 경호업체는 동승하지 않았다 △탑승 차량도 삼성엔지니어링이 공개한 보고서와 달리 이라크 정부 광산부 소속이었다 △사고차를 경호업체의 차로 위장시키려했다는 의혹들을 보도했다.
심지어 유족 측은 차 선임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는 의심마저 하고 있다. 차 선임의 죽음을 전해들은 유가족들이 같은해 8월8일 이라크에 도착하면서부터 이같은 의심은 시작된다.
시신 여기저기 수상한 흔적들
유족 차 씨에 따르면 사망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것은 2014년 8월9일. 차 씨는 교통사고가 아닌 피살 임이라고 짐작하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호텔에서 미리 준비한 대형 타월로 아들의 시신을 닦으며 얼굴을 확인했다. 이 때 왼쪽 눈가 옆 8센티 길이의 볼펜 굵기의 깊은 흉터를 발견했다. 오른쪽 이마 위에는 머리카락을 잡아야만 벨 수 있는 전문가의 칼질로 보여지는 5센티가량의 가로로 A4용지 2장정도의 두께로 얇게 잘린 상처가 보였다.”
차씨는 이 상처를 발견하자 한국으로 시신을 이동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는 방법외에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다.
상체는 벗긴 상태였고 하체는 하얀 원단의 이불로 덮여있었다. 상체의 외상은 얼굴의 두 군데 상처외에 스친 자국이나 찰과상이 전혀 없고 손을 보니 열 손가락 손톱이 새까맣게 멍이 들었다.
차씨는 이불을 제껴 차 선임의 하체 바지를 벗겨보니 오른쪽 허벅지에 성인 주먹 만한 깊은 상처가 아물지 못한 상태에서 핏물이 고여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은 차씨가 시신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니 항문에 지름 10센티미터 가량의 타원형 시커먼 멍이 형성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차씨는 “순간적으로 발생한 공포로 손톱과 항문에 나타난 것으로 판단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때 입은 바지는 어디로?
무엇보다 의심을 굳힌 것은 병원에 누워있는 차 선임의 시신이 입고 있던 바지였다. 사고 당시 입었던 바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B 공무수석이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사고 당시 차장환선임의 사진 속 바지는 곤색 면바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한 밤색바지로 바뀌어 있었다. 훗날 서울로 와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고 현장의 사진을 보이자 삼성엔지니어링 A상무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2014년 10월4일 국과수는 “차장환 선임의 사인은 우측 허벅지 근육에서 광범위한 출혈과 함께 일부 근육 및 근육 등이 절단된 것을 보며 (중략) 사인은 다발성 손상으로 판단된다”는 5장짜리 부검감정서를 제출한다.
특히 “수사기록에 나타난 교통사고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손상과 배칭되지 않음. 그렇지만 이러한 손상의 발생에 대한 판단은 사고현장에 대한 조사 및 차량과 변사자가 입고 있던 의류 등에 대한 검사를 통한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명시한다.
시신확인 후 A상무와 이라크현지 삼성엔지니어링 B상무에게 교통사고가 아닌 피살임을 알리고 차선임과 함께 동승했다는 직원 C,D의 재면담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들은 차 선임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상황을 덮었다”는 차씨의 성토이다.
차 선임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기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시신 전문가라고 자처한 이라크인은 “이라크에서 죽은 시신을 외국으로 보낼 땐 이라크식의 화장을 해야 하고 옷도 검정색 양복정장이어야 한다”고 설득, 차씨의 허락을 이끌어낸다.
또한 차씨는 깊은 상처부위를 살짝 꿰매는 것에도 동의한다. 먼저 한국에 도착한 차씨는 삼성엔지니어링의 A상무에게 “아들(차선임)은 피살된 것이다. 장례일정을 미루고 국과수에 부검을 신청하겠다”고 표명한다.
이에 A상무는 긴급히 회사와 통화를 시도하더니 이라크 공항 화물책임자가 지각해 시신은 다음 날 출발한다고 차씨에 알린다. 이라크 공항에 냉동시설이 있어 시신관리는 문제없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직원끼리 상반되는 시신 인도과정
A상무의 말은 다음날 도착한 시신인도자 F선임의 말과 상반돼 큰 혼란을 주었다. F선임이 차씨에게 “병원에서 인천공항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차 선임)의 시신을 인도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놀란 차씨가 “시신은 공항에 있지 않았나?”고 되물었다. F선임은 분명한 어조로 “아니다”고 말한 뒤 뭔가 착오가 있다며 삼성엔지니어링으로 가더니 더 이상 차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차씨가 이 사실 확인을 위해 이라크 공항 체류일정과 경비내역을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삼성엔지니어링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반면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해당 사건은 경찰조사를 통해 교통사고로 마무리돼 정리가 된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대법원까지 삼성엔지니어링이 승소했다”며 “해당 사건과 관련한 경호업체는 사건 이후 변경됐고, 사건대응팀 또한 내부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사건은 이미 종결된 사항이라 더는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