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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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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과사람] 존재한다는 것은 ‘좋아요’를 얻는 것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셀피를 SNS에 올려 수시로 울리는 알람으로 ‘좋아요’ 개수를 확인한다. 언제부턴가 카톡에서 말 대신 이미지(짤)로 대화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엘자 고다르는 우리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의 신호인 셀피 현상을 기술 발전, 언어와 타인에 대한 인식, 가상의 자아의 탄생, 에로스적·병리적·미적·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미지를 숭배하는 시대

저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지금을 ‘셀피 단계’라고 칭한다. 아기가 거울을 통해 처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인 라캉의 ‘거울 단계’. 화면을 통해 가상의 자기 자신, 타인과 만난다는 점에서 셀피단계는 거울 단계와 통한다.

이렇듯 셀피는 ‘가상의 나’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을 파악할 수 없어진 상태를 나타낸다. 이제 ‘증강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체의 형성 과정 자체에 가상이 결합된 증강 주체성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사는 게 고달프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우며 많은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 중 하나는 시·공간에 대한 인식과 언어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빠른 속도로 반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해 사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인간에게 남은 것은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뿐이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힘을 잃고 이미지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나르시시즘의 표현이기도 한 셀피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와도 맞닿아 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비극은 서로 말을 듣지 못한다는 상호 이해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로 말을 듣지 못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만날 수 없다는 점은 말이 쇠퇴하고 픽 스피치(이미지를 통한 말)가 득세한 지금 시대에 대한 완벽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싫어요’를 받을 용기

인간이 주체로 떠오른 르네상스 시대에 자화상이 유행한 것처럼, 가상의 주체성이 등장하는 디지털 시대에 셀피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시대를 제2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되는 청소년기처럼 지금 우리는 개인적·사회적으로 과도기, 변모의 시기를 겪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우리가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타인에 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속에서 자유를 잃어 버렸다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싫어요’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우리가 가상 세계를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을 우리의 일상에 완전히 통합해 내는 것, 즉 ‘가상의 나’와 ‘실재의 나’를 연계시켜 받아들이길 권한다. 그리고 기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만 관심을 갖는 바이오 윤리가 아니라, 비인간적 일탈과 가상 세계에 대한 과도한 소비욕을 막아줄 셀프 윤리, 가상 세계에서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애타주의를 통해 우리가 책임감 있고 자유로운 존재로 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세상이 변했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최악의 사태가 가능하다면 최선의 사태 역시 가능하다고, 실존의 조종석에 앉아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걸음마 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권역별 건립’ 약속은 어디로?
[시사뉴스 조아라 기자]공공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재활 전문병원이 국내에 전무한 가운데, 어린이재활치료에 대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어린이재활 의료기관 확충 계획에 대해 그동안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요구해왔던 각계각층은 “미흡하다”,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국내 어린이재활병원의 실태와 정부 확충 계획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 저는 11살 중증장애아동 건우의 아빠입니다. 건우는 2살 때 사고로 인한 뇌손상으로 9년째 병원을 찾아 떠돌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직 입으로 밥을 먹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건우에게 재활치료는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방법이고, 병원은 세상을 배우고 재활의 꿈을 꾸는 곳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건우에게 이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200여개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이 대한민국에는 단 1개뿐입니다. 대다수 재활병원들은 수익성이 없다고 소아재활치료를 기피했고, 소수의 재활병원에서도 대기를 걸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중증장애라고, 나이가 많다는 이

"장밋빛 뜬구름·빛 좋은 개살구가 文 정책 본질"
[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자유한국당은 8일 국감대비 정책위원회 전략회의를 열고 주요내용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은 이번 주 10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통해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명확하게 짚어가도록 할 것"이라며 "제대로 된 한방과 끝장을 보는 투지로 오만과 독선에 쩔어있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아내는데 야당으로서 총력을 기울여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민을 상대로 검증이 덜된 실험정책을 남발하는 정권의 독선을 심판하고,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세판단을 독단적으로 밀고 가는 정권의 오만에 반드시 제동을 걸도록 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김 원내대표는 국정감사에 임하는 각오도 밝혔다. 그는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오직 국민의 편에서 단단한 각오와 투지로 어금니 꽉 깨물고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참모습을 보여 갈 것"이라며 "그동안 산적해온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오류와 난맥상들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짚어내는 국정감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 해 "이미 실패로 판명이 난 소득주도성장뿐만 아니라 여전히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이는 탈원전, 대통령이 국민과



[책과사람] 존재한다는 것은 ‘좋아요’를 얻는 것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셀피를 SNS에 올려 수시로 울리는 알람으로 ‘좋아요’ 개수를 확인한다. 언제부턴가 카톡에서 말 대신 이미지(짤)로 대화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엘자 고다르는 우리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의 신호인 셀피 현상을 기술 발전, 언어와 타인에 대한 인식, 가상의 자아의 탄생, 에로스적·병리적·미적·윤리적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미지를 숭배하는 시대 저자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지금을 ‘셀피 단계’라고 칭한다. 아기가 거울을 통해 처음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인 라캉의 ‘거울 단계’. 화면을 통해 가상의 자기 자신, 타인과 만난다는 점에서 셀피단계는 거울 단계와 통한다. 이렇듯 셀피는 ‘가상의 나’ 없이는 더 이상 자신을 파악할 수 없어진 상태를 나타낸다. 이제 ‘증강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체의 형성 과정 자체에 가상이 결합된 증강 주체성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사는 게 고달프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우며 많은 불안을 극복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삶의 변화

[간단칼럼] 동물 살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어
[이정민 칼럼니스트] 인류는 다른 생물들의 희생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좀 더 애정을 갖고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귀여운 동물이나 포유류에 한해서 동물학대를 논의할 뿐 다른 종류의 희생이나 학대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들은 대부분 피장파장의 오류와 현실성 문제로서 반박된다. 심지어 일부는 “개미까지 죽이는 것조차 처벌한다면 처벌 안 당할 사람이 있겠는가? 단속 자체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부터 점차 동물학대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모순되게도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곤충을 죽이는 행위도 법으로 처벌하면 좋겠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을 살해한 사람이 “너는 개미를 밟아 죽였으니 내가 동물 죽이는 것에 뭐라 하지 말라”며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논리로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려 든다면 그대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피장파장의 오류일 뿐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형성은 불가피한다. 동물을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이 물리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 함게 존재하는 한 서로의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