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30 (화)

  • 맑음동두천 -1.1℃
  • 맑음강릉 5.3℃
  • 맑음서울 -0.1℃
  • 박무대전 1.5℃
  • 박무대구 5.8℃
  • 연무울산 6.1℃
  • 박무광주 5.0℃
  • 연무부산 9.0℃
  • 맑음고창 2.6℃
  • 박무제주 11.5℃
  • 맑음강화 -2.1℃
  • 맑음보은 0.2℃
  • 맑음금산 0.7℃
  • 맑음강진군 6.3℃
  • 맑음경주시 1.9℃
  • 맑음거제 6.9℃
기상청 제공

시네마 돋보기

엄마는 처녀를 죽인다

URL복사

육아의 고단함과 여성적 자아의 상실감을 섬세하게 파헤친 <툴리>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세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를 구원할 환상적인 보모가 등장한다. 육아의 현실적 고통과 그 시점 여성의 심리적 균열을 흥미롭고 섬세하게 그렸다. <땡큐 포 스모킹> <인 디 에어> <레이버 데이> 등의 제이슨 라이트맨이 연출을 맡았고, <몬스터> <노스 컨츄리>의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했다.

집 안에서의 고독한 전쟁

챙겨줄 것이 많은 8살 첫째 딸 사라, 발달장애를 앓는 둘째 아들 조나, 그리고 셋째까지 임신한 만삭의 엄마 마를로는 육아에 지쳐서 무기력하고 피곤한 나날을 보낸다.

이런 동생을 안타깝게 여긴 부자 오빠 크레이그는 곧 태어날 셋째의 육아에 대비해 밤에만 와서 아이를 돌보며 잠잘 시간을 만들어주는 야간보모를 제안하며 자신이 비용을 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를로는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과 이미 여러차레 받아온 오빠의 도움에 대한 부담감에 내키지 않는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잠 한숨 잘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이르고 ‘조금 특별한’ 둘째가 학교에서 재적까지 당하자 마를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에 이른다.

자동차 시트를 발로 차며 이상 행동을 보이는 아들과 큰 소리로 울음을 멈추지 않는 갓난 아기, 예민한 첫째 딸에 미칠 지경이다. 하루하루 냉동 피자로 식사를 떼우고 수면부족으로 졸면서 아이를 돌보는 생활에 치여서 옷 갈아입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진다.

야간 보모 툴리의 등장은 이 같은 상황의 마를로에게 기적을 보여준다. 임신과 육아로 생기를 잃고 뚱뚱한 몸에 지친 얼굴을 한 마를로와는 상반되게 20대의 젊음과 날씬한 몸, 열정이 넘치는 툴리는 우려와는 달리 완벽하게 아이를 돌본다. 정확하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하고, 더 나아가 마를로가 이상적인 엄마라고 생각하지만 육체적 한계로 하지 못했던 청소나 아이들 학교에 가져갈 간식 만들기 등까지 해낸다. 결정적으로, 마를로의 정신적 공허함마저 채워주며 멘토이자 친구가 된다.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툴리>는 시각의 섬세함과 연출적 깔끔함이 잘 완성된 영화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관객의 대리체험을 유도하는 연출로 숨막히는 압박감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엄마라는 이름에게 세상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과도한 것이며 한편으로 비인간적인 것인지도 예리하게 포착했다.

무엇보다 과장이 없다. 남편은 잠자기 전 일정시간 거의 매일 게임에 빠져 있지만 평균 이상의 좋은 아빠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도 함께 돌보며 아내에 대한 걱정도 한다. 극한에 있는 아내와 달리 게임이라는 잠깐의 탈출구가 존재한다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육아에 대한 엄마의 역할이란 타자의 짐작을 훌쩍 뛰어넘는 영역이라는 것이 문제다.

아무도, 심지어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그 고독하고 우울한 세계를 영화는 툴리라는 인물을 매개로 파헤치
며 위안을 던진다. 그 위안은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성숙과 극복 정도일 것이다. 툴리는 20대의 자신이자 일기장이다. 산후 우울증을 앓는 여성, 또는 성적 매력이 없어진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운 중년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동지, 정신적 지지자, 철학가다.

자아를 죽이고, 특히 처녀 시절의 자신을 버리고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아무리 미화해도 그 과정은 우울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일상적인 산후우울증의 실체를 조망한다. 툴리의 등장으로 달라진
마를로의 ‘사는 것 같은 삶’은 역설적으로 툴리의 부재라는 보통의 중년에게 삶이 얼마나 극한인지를 보여준다. 육아에 지쳐 육아의 즐거움마저 느낄 여유가 없는 그런 삶말이다.

샤를리즈 테론의 깊이 ‘독박 육아’ ‘헬 육아’ 등의 용어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사랑하는 자녀를 돌보는 일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그런 불만이 엄마의 도리가 아니라는 시각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노동을 신성시 여기며 ‘산업 역군’으로 아버지에게 채찍질을 가했던 것처럼 모성 신화는 만들어지고 억압적으로 이용된 면 또한 없지 않다. <툴리>는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심지어는 오락성을 갖추면서 모성 신화에 반발한다. 모성은 기꺼이 처녀적 자신을 죽이고 자아를 학대하면서도 끄덕없는 초능력이 아니다. 그리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여성 삶의 터닝포인 암흑기를 사색한다.

이 영화의 가장 많은 칭찬은 배우에게 할 수밖에 없다. 샤를리즈 테론이기 때문에 배가 출렁거리는 그 신체의 변화는 더욱 직설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하지만 20kg 넘게 찌운 몸을 노출까지 하며 자신을 내던진 점 이상으로, 노련하고 깊이있는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생략과 절제, 효과적 편집으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영리한 연출과 더불어 판타지적 결말이나 가족의 소중함 등 의 봉합적 메시지를 거부하는 영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사실 답은 없지만, 가짜 답은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성을 넘어선 진보적이거나 혁명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2025 서울아트쇼’ 개막...국내 미술작품 한자리에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제 14회 '2025 서울아트쇼’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A홀에서 진행된다. 국내·외 150여 갤러리가 소장한 전시는 제프쿤스 알렉스카츠 등 해외 작가 작품을 포함해 약 3000여점 규모로 전시한다. 한국미술 오리지널리티 특별전과 한일수교 60주년 기념전 등 다양한 기획전도 함께 마련된다. 특별전으로 ▲한국미술의 오리지널리티(김환기, 박서보, 백남준, 이우환, 이중섭, 천경자) ▲김창열에서 하태임까지(이배, 이건용 외 18인) ▲한일수교 60주년 기념전(쿠사마 야요이 외 19인) ▲스컵처가든(광화문을 그리는 고흐 등 대형조각전) 등 다양한 작가의 작품도 구성돼 있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행사를 주최한 서울아트쇼 운영위원회는 "그동안 '서울아트쇼'는 타 아트페어와 차별화를 하고자 한국미술의 오리지널리티를 위시해 다양한 특별전을 기획하여 보다 폭 넓은 문화 향유를 관람객과 공유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결과 매년 크리스마스 미술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운영위원회는 "서울아트쇼는 소수의 전유물로서의 예술이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을 모토로 시작된 아트페어이며, 앞으로도 더욱 과감하게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연임…생산적 금융·AX 가속화"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29일 임종룡 현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후보로 추천했다. 임추위가 지난 10월 28일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한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이강행 임추위 위원장은 임 회장을 추천한 배경으로 "재임 중 증권업 진출과 보험사 인수에 성공하며 종합금융그룹 포트폴리오를 완성했고, 타 그룹 대비 열위였던 보통주자본비율 격차를 좁혀 재무안정성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또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시가총액을 2배 이상 확대하고, 기업문화 혁신을 통해 그룹 신뢰도를 개선한 점 등 재임 3년간의 성과가 임추위원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고 부연했다. 임추위는 현재 우리금융의 당면과제를 ▲비은행 자회사 집중 육성과 종합금융그룹으로의 안정적 도약 ▲인공지능(AI)·스테이블 코인 시대에 맞춘 체계적 대비 ▲계열사의 시너지 창출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등으로 판단했다. 이 위원장은 "임 회장이 제시한 비전과 방향이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며 "경영승계계획에서 정한 우리금융그룹 리더상에 부합하고, 내외부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점도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임추위는 지난 10월 28일 경영승계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약 3주간 상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권력과 돈, 정보가 뒤엉킨 후기 한양의 밑바닥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좋은땅출판사가 ‘굿과 떡’을 펴냈다. ‘굿과 떡’은 조선 후기 한양을 무대로 권력과 돈, 정보가 뒤엉킨 사회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역사 소설이다. 포도청 구류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기꾼과 무당, 그리고 민비를 둘러싼 권력의 핵심부까지 확장되며, 썩을 대로 썩은 시대의 민낯을 밀도 높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장마당과 군영, 무속과 정치가 교차하던 시대의 공기를 치밀한 고증과 속도감 있는 서사로 재현한다. 충·효·의리의 관념적 조선이 아니라, 정보와 권력이 돈으로 환산되는 거대한 시장판으로서의 조선을 보여 주며, ‘영리하게 사는 법’을 체득한 인물들의 욕망과 갈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주인공 홍태산은 전형적인 영웅상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정의를 외치기보다 세상의 작동 방식을 읽고, 그 틈을 계산적으로 파고든다. 정보의 가치와 힘을 꿰뚫어 보는 그의 선택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기보다, 냉정한 현실 인식의 결과로 제시된다. 이 소설은 조선 사회의 하층과 상층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도둑과 무당, 난전의 사기꾼들이 벌이는 일이 궁중 정치와 맞닿아 있고, 권력의 소용돌이는 다시 민초들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굿과 떡이라는 상징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