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의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과체중이 심장병, 뇌졸중, 암 등 각종 질병의 치명적 원인이며 체중과다가 수명을 몇년씩 단축 시킬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하지만 비만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과체중이 마른 사람보다 건강에 이점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노인 비만이 더 오래 산다
영국 의료보험공단(NHS)의 다이어트 전문가가 참여한 미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들은 비만인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 지나친 다이어트를 할 경우 오히려 위험만 더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살이 조금 더 찌더라도 식사를 충분히 하고 그만큼 운동을 좀더 하는 것이 건강에 훨씬 유익하다고 말했다.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비효율적인 뿐만 아니라 때로는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과음과 과식 등을 초래해 사람을 더 뚱뚱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인 3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체중인 사람들이 정상체중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수치를 통해 입증됐다. 또 나이 든 사람들의 경우 비만인 사람이 마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2형 당뇨병이나 심장발작, 신장병을 앓는 환자들도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만이 심장병 등 다른 질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들은 꼭 비만이 발병의 원인은 아니라고 말했다. 살찐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균형적이지 못한 식사습관과 운동 부족이 병을 부르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균형적이지 못한 식사습관과 운동 부족은 모든 비만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다.
연구진은 살이 쪘다고 무조건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살이 찐 것 자체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신의 몸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는 대신 다양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즐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복부 비만 뇌경색 잘 이겨
최근에는 허리둘레가 굵을수록 뇌경색 증상이 경미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복부 비만이 뇌졸중, 심근경색 등 혈관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일단 혈관 질환이 발생한 후에는 오히려 비만하거나 과체중인 사람이 저체중인 사람에 비해 병을 더 잘 극복한다는 것이다.
을지병원 신경과 강규식 교수팀은 을지병원에 입원한 뇌경색 환자 1403명의 허리둘레와 NIH(미국국립보건원) 뇌졸중 척도 점수를 분석한 결과 뇌경색 환자 중 복부비만이 있는 사람이 마른 사람과 비교했을때 심한 뇌경색 증상을 나타낼 가능성이 60% 낮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가벼운 과체중이 오히려 심장병 수술 예후를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노정현 교수는 대한비만학회지 최근호에 그동안 기고한 리뷰 논문에서 이 같은 비만 패러독스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비만은 각종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하지만 상당수 연구에서 심혈관 질환을 가진 사람의 비만 지표가 높을수록 심혈관 질환의 예후가 더 낫다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과체중이면서 심혈관 질환을 가진 환자는 정상 체중인 심혈관 질환자보다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나 전체 사망률이 더 낮았다. 같은 연구에서 고도 비만자의 경우 정상 체중 환자에 비해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더 높았다. 또 최근 연구에선 정상 체중이면서 허리둘레가 굵은 사람의 심혈관 질환 예후가 오히려 가장 나쁜 것으로 밝혀졌다.
비만은 심부전에 의한 생존율도 더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부전 환자 2만820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서 과체중 환자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정상 체중 환자 대비 19%, 비만환자는 40%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체질량지수 고도 비만이면서 심부전을 가진 사람에겐 예후가 오히려 나빴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 낮아
암 수술 후 사망 위험 또한 과체중이 저체중보다 낮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범진 교수팀은 중앙대병원에서 진행성 위암 2기와 3기로 진단받고 수술 받은 21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BMI에 따라 저체중, 정상, 과체중, 비만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고BMI군(BMI≥23kg/㎡) 111명과 저BMI군(BMI<23kg/㎡) 100명으로 다시 분류해 두 환자군의 생존율 및 암으로 인한 사망률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저체중군이 정상·과체중·비만군에 비해 5년간 생존율이 유의하게 낮았으며 특히 고BMI군의 생존율이 저BMI군에 비해 유의하게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고BMI군이 12.6%인데 반해 저BMI군이 27%로 차이를 보여 저체중일수록 위암 수술 후 사망 위험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건강에서도 비만한 사람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팀은 18세에서 74세의 한국인 5905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비만한 사람보다 마른 사람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자살시도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더 높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저체중군에서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정상체중군에 비해 2.4배 높았다. 우울증, 불안, 알코올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질환 여부를 보정했을때도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자살을 생각할 위험은 저체중군에서 1.6배, 과체중군(25 kg/㎡ 이상)에서 1.3배 높았다.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체중은 자살을 생각하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한, 저체중군은 정상 체중군에 비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1.7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율이 1.3배 높았다.
이처럼 건강에 치명적 문제로 여겨지던 비만이 오히려 건강에 순기능을 하는 사례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비만이 일으키는 해로운 점이 더 많이 밝혀진 것은 사실이다. 의학계에서는 비만보다 허리둘레가 중요한데 단순히 체중으로 비만을 판정하는 것이 ‘비만의 역설’이 일어나는 이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