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5월 4일과 9일에 각각 북한에서 발사된 ‘발사체’를 두고 청와대, 군(軍)이 “분석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한 가운데 북한 스스로 ‘탄도미사일’로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설상가상 국정원, 주한미군도 “남한 전역을 겨냥” “신형 탄도미사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단도미사일”이 탄도미사일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급기야 ‘책임론’ 경고까지 제1야당에서 나오는 등 북한발(發) 대립은 격화되고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위반 여부
정치권이 주목하는 건 북한 ‘발사체’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위반 여부다. 2006년 1718호, 2009년 1875호, 2017년 2397호 등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전면중단을 강제하고 있다. 이번 ‘발사체’가 탄도미사일로 공인될 경우 북한은 추가제재를 받게 되며 이는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 조달에 큰 악재(惡材)로 작용하게 된다. 슈퍼노트(정밀 위조달러), 마약 등 밀수로 자금을 충당하다가 대북제재로 인해 ‘돈줄’이 마른 북한은 근래 쌀 대신 ‘현금’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 군은 북한 ‘발사체’ 발사 이후 수 주째 “분석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북한이 첫 발사 이튿날 조선중앙통신(중통)을 통해 발사장면을 공개했지만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지 않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 주한미군도 단순 발사체가 아닌 ‘무기’라고 보고했다. 5월 10 일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바른미래당)에 따르면 국정원은 현안보고에서 “남한 전역이 사정권인 것 같다”며 “9.19 남북군사합의 취지 위반”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17일 주한미군은 미 국방부 보고에서 “신형 탄도미사일”이라며 해당 미사일을 ‘KN-23’으로 명명했다. 보고에 의하면 KN-23은 500kg 안팎의 ‘소형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많은 군사전문가들도 ‘북한판 이스칸데르(Iskander)’라는 분석을 내놨다. 러시아 육군의 지대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9K720 이스칸데르’는 ‘회피기동’이 특징으로 미사일방어체계(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세계패권’을 노리는 러시아는 한미일(韓美日) 삼각동맹에 맞설 ‘행동대장’으로 북한을 활용하면서 ‘대리전’에 대비해 물자, 무기 등을 물밑 지원해왔다. 아프간·이라크전쟁의 결과를 지켜본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 미국에 접근하면서도 러시아의 충실한 행동대장 노릇을 하는 속칭 ‘양다리 전술’을 펼쳐왔다.
‘커밍아웃’한 北, 文 대통령 알고 있었나
북한 ‘발사체’의 정체는 애초부터 충분히 예상됐다. 첫 발사 이튿날 조선중앙통신(중통)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사격을 참관한 뒤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안전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중통도 “전술유도무기 운영 능력을 판정·검열했다”고 전했다. ‘발사체’가 인공위성 운반 등을 위한 ‘평화적 목적’의 물체가 아닌 ‘강력한 힘’을 가진 ‘전술 유도무기’임을 자인(自認)한 것이다.
급기야 5월 27일에는 아예 ‘탄도미사일’이라고 공식천명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중통 인터뷰에서 “볼턴(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정상적 군사훈련을 유엔 결의 위반으로 걸고 들었다”며 “탄도 기술을 이용한 발사 자체를 금지하라는 건 자위권을 포기하라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군사훈련’에서 ‘탄도’ 기술로 수백km 거리까지 사격되는 발사체는 ‘탄도미사일’이 ‘유일’하다. 북한 ‘발사체’ 사거리는 4일에는 240km, 2발이 사격된 9일에는 각각 270·420km에 달했다.
정황이 점차 뚜렷해졌음에도 전·현직 정부관계자들의 발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조윤제 주미(駐美) 대사는 5월 17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그런 (발사체 사격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만~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몰살할 수 있는 ‘공격용 핵미사일’ 사격을 ‘대화의지 발현’이라고 풀이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을 지낸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전날 안보 학술세미나에서 “핵을 가진 북한은 한국을 적화(赤化)시킬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같은 달 2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하노이 미북(美北)정상회담 결렬 배경에 대해 “북한이 핵시설 5곳 중 1~2곳만 폐쇄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8년에도 영변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면서 핵폐기를 약속했지만 불과 이듬해에 2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기만술’을 펼쳤다.
문 대통령이 ‘발사체’ 정체를 알면서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5월 21일 한미 군 지휘관 오찬간담회에서 “최근 북한 ‘단도미사일’을 포함한 발사체 발사 대응에서 아주 빛났다”고 말했다. 이틀 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단도미사일의 ‘단도’가 하필 ‘탄도’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말했다. 구글 번역프로그램 등에서 확인한 결과 ‘탄도미사일’의 일본식 발음은 ‘단도 미사이루(だんど うミサイル)’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발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 방공호’ 분주해진 주한(駐韓) 외국인들
“위협은 없다”는 주장과 달리 주한 외국인들의 움직임은 한층 분주해지고 있다. 5월 17일 개관한 주한 스위스 대사관 신축건물에는 ‘핵 방공호’가 설치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스위스 민방공(民防空) 관련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1960년대에 마련된 이 법안이 왜 하필 북한 ‘발사체’ 사격 시점과 맞물려 주한 대사관에 적용됐는지는 의문을 남겼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5월 5일 자당(自黨)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에서 “정부가 정치적 요인으로 (북한) 위협을 축소한 것이라면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의회, 유럽 주요국, 일본을 중심으로 대북제재 강화 목소리가 쏟아지고 트럼프 행정부도 북한 화물선 나포 등 강경대응에 나선 가운데 청와대가 보여줬던 ‘발사체’ 대응 태도가 향후 정계와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