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노동자의 과로가 성장의 동력이던 시대를 지나, 사회적 부담이 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과로가 심뇌혈관질환이나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해 부담하는 의료비와 사회적 손실이 최대 7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이중 특히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발암 물질(그룹 2A)’로 지정한 ‘교대 근무’는 건강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킨다.
수면리듬 깨져 신진대사 불규칙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교대근무 비율은 남성 14.4%, 여성 11.6%였고 남녀 모두 30대(남성 25.1%, 여성 19.5%)가 가장 높고 20대(남성 16.3%, 여성 19.3%)가 뒤를 이었다. 교대근무에 따른 심뇌혈관질환자 비율은 여성이 2.5~5.1%, 남성이 0.6~1.4%였다. 정신질환 유병자 가운데선 여성이 2.8~5.7%, 남성이 1.7~3.9%였다. 사망의 경우 여성이 1.9~4.0%, 남성이 0.1~0.3%로 조사돼 여성의 건강을 더욱 위협하는 것으론 나타났다.
미국 브리그햄여성병원 연구팀이 21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벌인 결과 수면 시간이 너무 적거나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교대 근무자들은 비만이 되거나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수면 습관을 바꾸는 것은 인체의 혈당 조정 능력을 손상시켜 일부 참가자의 경우 불과 몇 주만에 당뇨병 초기 증상을 보였다.
연구진은 처음에 참가자들에게 밤에 10시간의 수면을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 인위적으로 하루의 길이를 28시간으로 늘린 뒤 참가자들에게 6.5시간만 잠을 자도록 했다. 또 참가자들의 인체 시계가 정상적으로 리셋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은 희미한 불빛 속에서 생활했다.
연구 결과 참가자들의 혈당은 식사 직후와 공복 기간에 급속히 증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슐린을 낮추는 호르몬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참가자 중 3명은 식사 이후 혈당 수치가 너무 올라가 당뇨병 전 단계로 분류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식사 후 혈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참가자들은 체중 역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미 피츠버그 대학의 퍼트리샤 웡 교수팀이 30∼54살의 근로자 4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면 습관 조사 결과 또한, 불규칙한 수면이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입증했다.
보통 근로자들은 1주일 내내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유지하지 않고 평일에는 일찍 일어나다가 근무가 없는 주말에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수면 패턴 역시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체질량지수(BMI)가 높아지며 허리둘레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웡 교수팀은 이를 불규칙한 수면 습관에 따라 신진대사가 불규칙해지는데 따른 위험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교대 근무로 인해 수면 시간이 자주 바뀌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불규칙한 근무 형태로 인해 정상적인 시간에 잠을 자지 못해 생기는 피로감이 건강에 위험을 준다고 경고했다.
뇌의 노화 빨리 진행
교대 근무는 뇌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영국 스완지 대학과 프랑스 툴루즈 대학의 공동 연구진은 장기간 교대 근무와 불규칙한 근무가 개인의 사회생활과 건강뿐 아니라 지능에도 만성적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프랑스 남부에서 정상 근무만 한 근로자들과 그 외 시간대에 근무한 근로자들을 상대로 장기적 교대 근무와 불규칙한 근무 근로자의 인지 능력 영향에 관해 10년 간 추적한 결과다. 연구진은 연구에 참여한 전·현직 근로자 약 3000명의 장기 기억력, 단기 기억력, 정보 처리 속도, 인지력 등 뇌 기능 전반에 대해 검사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첫 조사 당시 연령이 32세, 42세, 52세, 62세 중 하나였고 그 중 절반인 1484명은 최소 50일 교대 근무를 했다. 참가자 중 3회 모두 검사를 받은 피험자는 2000명이 채 안 됐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 교대 근무는 인지 장애와 관련 있으며 근로자가 10년 넘게 교대 근무를 하면 인지력 감퇴가 더 심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0년 넘게 교대 근무를 한 근로자의 인지력 감퇴가 특히 더 심해 뇌의 노화가 6.5년 더 빨리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 근무자를 위한 유일한 고무적 사실은 감퇴한 인지력이 정상 근무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나쁜 소식은 정보 처리 속도를 제외하고 다른 뇌 기능은 회복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호르몬 변화로 조기 폐경
우울증 위험도 높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명승권 교수와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팀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야간 교대근무와 우울증의 관련성을 연구한 11편의 연구를 메타분석해 교대 근로자는 일반적인 근무 형태를 가진 노동자에 비해 우울증 위험이 43%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교대근무 1년이면 우울증 위험이 약 1.2배, 2~3년은 1.7배, 4-10년은 약 2배 증가했다. 특히 여성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논문도 상당수다. 암 발생률 또한 여성에게 더 높게 나타났다. 중국 쓰촨대학 화시 의학센터 연구팀이 기존 관련 연구 61건을 종합한 메타분석 연구 결과 장기 교대근무는 여성의 암 발병 위험을 19% 높였다. 피부암 41%, 유방암 32%, 위암 35%, 폐암 28% 발병 위험이 증가했다.
특히 유방암은 교대근무와의 연관성이 많이 밝혀진 분야다. 이는 야간의 빛 등으로 인한 생체환경 변화가 여성의 호르몬에 영향을 주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프랑스 샤클레대학 연구팀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5개국의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성 6093명과 유방암 진단을 받지 않은 여성 693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교대근무가 잦을수록 유방암 위험이 큰 것을 밝혀냈다.
같은 맥락으로 반복되는 야근은 조기 폐경, 유산, 조산 등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의 데이비드 스톡 교수 연구팀이 야근하는 간호사 8만여 명을 대상으로 22년간 진행한 조사 결과 교대 근무를 하는 여성은 보통의 근무 형태를 가진 여성에 비해 조기 폐경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난소 기능 유지에 중요한 멜라토닌이 야근으로 인해 줄어드는 것을 이유로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