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장혁 기자] “상품 박스에 손잡이 좀 달아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오재본 씨는 허리디스크로 쉬는 날이면 한의원에 가 치료를 받는다.
진통제를 달고 사는 오 씨는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7년째 근무 중인 마트노동자다.
간장 5리터짜리 4박스면 15kg, 설탕은 3kg짜리 4~5개가 한 박스에 들어 있다. 15kg 정도 되는 박스를 들고 옮기려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오 씨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박스에 손잡이 하나 달아 달라는 이유에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갈비뼈가 골절되고, 하반신이 완전히 돌아가 수술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박스 손잡이가 마트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오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동고용청에서 당장 직권조사라도 나와야 될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닐까.
"하루는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일한 적이 있는데 3만 걸음이 나왔다. 검색해 보니 한국인 평균이 5,755걸음이었다. 몸이 멀쩡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대부분 젊은 남성들로 구성됐지만, 허리·어깨·무릎 어디 한 군데쯤은 다 고장 나 있다."
이마트 성수점 검품 담당 장성민 씨의 몸도 마찬가지다.
"마트노동자들의 고충은 감정노동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아픈 것은 감정만이 아니다. 몸도 아프다"라며 "꼬박 서서 일해서 아프고, 매일 무거운 박스를 나르고 진열해서 아프다."
마트노조는 수십만 명의 마트노동자 절반 이상이 중량물 취급으로 인해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절이 되면 온갖 세트 물량까지 들어와 일은 더 힘들어진다.
마트노조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5월 진행한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5,000여 명의 마트노동자 중 56.3%가 질환자로 의심할 수 있는 수치였다.
질환자 중 69.3%가 지난 1년간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신 설비나 기계적 보조도구를 제공하라는 것이 아니다. 박스 양옆에 손잡이라도 뚫으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665조에 따르면 5kg 이상 중량물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최소한의 장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원칙을 지켜달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