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장혁 기자] ‘안보의 IMF’ 상황에서 출범했던 노무현정부는 북핵문제, 한미관계라는 양대 긴장 요인은 물론 외교안보 분야에서 총체적 난관이 조성됐던 시기다.
양대 긴장 요인은 남북관계에 고스란히 전이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부터 북핵TF를 구성, 매일 북핵 상황을 점검하고 상황관리에 나섰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상황에서도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신뢰를 통해서만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북한이 예측하기 어렵고 때로는 일방적인 행동으로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상대가 불합리하게 나올 때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게 남북 간 신뢰 구축과 남북관계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유엔결의안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유엔결의안 범위를 벗어나는 대북제재 요구에는 끌려다니지 않았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한번 중단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남북경협사업들을 변함없이 진행했다. 어떤 경우라도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포용과 신뢰가 가장 효과적인 남북관계 전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신뢰구축이야말로 최선의 원칙과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곧바로 민간에도 이식됐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 개성관광, 개성공단 건설 등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해왔다.
“남북경협사업은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원칙 아래 추진되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동반자적 협력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정 명예회장의 대북사업은 아들 정몽헌 회장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북한과 합의된 대북 SOC 사업권을 기반으로 현대아산은 대북사업 최일선에 섰다.
정몽헌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금강산 현지에서 5차 면담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정몽헌 회장과 동행하며 현대가 건설한 부두, 방파제, 해상호텔, 문화회관 등 주요 시설을 함께 시찰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참여정부가 시작되면서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더 순탄해 보였다.
다만, 2003년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현대그룹 총수로 등장한 현정은 회장에게는 시련이었을 법하다.
현 회장은 현대가 경영권 분쟁도 특유의 뚝심으로 이겨내고 그룹총수로서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아산의 핵심 사업인 금강산관광사업은 1998년 첫 유람선인 금강호를 시작으로 7년 만에 관광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현 회장은 2005년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개성과 백두산 관광에 합의했다.
한 달이 지나 개성시범관광이 이뤄졌다. 2006년 5월에는 금강산 내금강 답사를, 8월에는 금강산 외금강호텔을 개관했다.
2007년 5월부터 본격적인 내금강관광이 시작되고 11월에 현 회장은 다시 김 위원장과 만나 개성, 백두산, 그리고 비로봉관광 합의서를 체결했다.
12월부터 개성관광도 시작됐다. 금강산 육로 관광 5년이 지난 2008년 3월에는 금강산 승용차 관광이 첫발을 내딛었다.
5월 금강산 비로봉 답사에 이어 10월 개성관광객수도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금강산은 정몽헌 회장한테 줬는데, 백두산은 현정은 회장에게 줄테니 잘 해봐라.”
김 위원장이 현 회장에게 전한 말이다. 현 회장과의 첫 면담에서 현 회장을 남북경협 당사자로 인정한 것이다.
“백두산 들쭉술은 현정은 회장에게 얻어먹어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도 현 회장에 백두산 관광을 맡기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어려움이 있어도 버티겠다. 금강산관광객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금강산관광이 수차례 좌초될 위기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을 몇 차례 만나 설득하면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이끌어냈던 현 회장이었지만 현대아산의 시계바늘은 2008년 7월 멈췄다.
금강산관광객이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사업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남북경협이 열릴 때를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금강산관광이 끊기고 개성공단도 중단된 상태지만 현대그룹은 한순간도 상호협력과 공존이라는 역사적 소임을 잊지 않고 있다.”
현 회장은 남북화해와 공동번영에 현대그룹이 가교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남편 정몽헌 회장의 유지이기도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