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상현 기자] 연매출 5조 원에 이르는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 입찰이 취소돼 재공고를 앞둔 사태가 벌어졌다.
조달청은 1일 "발주처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과 협의해 스포츠토토 입찰을 취소하고 2주 이내에 재입찰을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1일은 심사를 마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입찰 막바지에 돌연 입찰을 취소한 것이다.
조달청은 발주처의 입찰 대행기관일 뿐 이번 입찰 취소한 것은 사실상 공단이다.
공단은 자세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례가 없는 입찰 취소 사태가 터졌는데도 “입찰 참가 자격에 공정성 문제가 있었다”는 짧은 답이 전부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 의견을 종합하면 ‘은행 문제가 터졌다’는 게 중론이다.
공단이 스포츠토토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은행 참여를 의무적으로 넣었다가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공단 입찰제안요청서는 ‘입찰 참여 컨소시엄은 국내 은행을 필수적으로 포함해 참여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해당 은행은 지점 수 600개 이상으로 못박았다.
이를 충족하는 국내 은행은 6개뿐이다.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은행은 농협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3개에 불과해 컨소시엄을 3개로 제한한 셈이다.
공고는 일반 경쟁으로 공지하고 실상은 명백한 제한경쟁입찰이 돼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입찰 참가를 밝힌 6개 컨소시엄 중 3개 컨소시엄이 입찰 참가를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공단은 은행 지점 수에 따라 평가점수를 미리 정하는 우까지 범했다.
예컨대, 지점 1,000개 이상인 농협은 10점, 지점 600여 개인 기업은행은 6점을 매겼다.
공정거래법에 어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있었던 로또복권 입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로또복권 입찰제안요청서는 이번 스포츠토토 제안요청서처럼 ‘지점 600개 이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금융기관 참여를 넓혔는데도 업체들이 은행을 끌어들이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스포츠토토와 로또복권 사업은 은행 입장에서 ‘애물단지’다.
수익은 별로 없으면서 잡음은 많고 정치적으로 탈 나기 쉬운 사업이기 때문이다.
공단은 ‘베팅사업’인 것을 감안해 낙찰 업체에 수익이 많이 돌아가는 것을 배제하고 있다.
원가를 계산해 수익이 적게 가는 업체에 유리하도록 제안요청서가 짜여 있다.
은행에 환급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업체 측에서는 은행 마진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환급 업무를 대행하는 원가 대비 수수료가 너무 작다 보니 사업을 꺼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 등 근로환경이 바뀌면서 각 은행 노동조합은 업무가 대폭 늘어나는 스포츠토토 업무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도 노조에서 입찰 참가를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로 입찰 참가를 밝힌 은행들도 입찰 참여 회사와 유사 사업을 하고 있는 관계이거나(농협, 기업은행) 인맥에 의해 마지못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점 만점을 미리 받은 농협의 경우 각 컨소시엄에서 경쟁적으로 참여 요청이 들어와 반려하는 데 애를 먹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3개 은행에 각 컨소시엄 책임자는 물론 정관계 인사의 물밑 청탁이 쇄도했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은행 내부에선 ‘다시 최순실 사태가 터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고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스포츠토토는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었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스포츠토토는 수익은 작은데 정치적 위험은 큰 '뜨거운 감자'다.
공단은 토토 입찰을 기피하는 은행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은 그동안 입찰 때마다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로또복권 입찰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아 작년 로또복권 입찰 때부터 은행 참여가 쉽지 않음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예전 입찰에서 볼 수 없었던 은행 자격 강화는 물론 ‘은행 점수’까지 사전에 매겨두는 무리수를 강행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사행산업 전문가들은 재입찰에서는 합리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환급업무를 대행하는 은행을 사업자 낙찰 이후 공단이 지정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단은 매년 스포츠토토 판매금으로 쌓인 기금 수천억 원을 은행에 정기예금과 채권 등으로 적립하고 이자수익을 내고 있다.
각 은행은 공단 기금을 유치하기 위해 공단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해 환급 업무를 맡는 은행에 우선적으로 공단 기금을 맡기는 방안 등을 모색하면 이번처럼 국책사업이 파행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구설에 올랐던 스포츠토토 이미지를 개선하고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단의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