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한국 교육 예찬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는 한국의 교육열을 배워야 할 모델로 언급하곤 했다. 정작 한국은 과열된 사교육 시장과 그로 인한 교육 불평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지만 말이다. 오바마의 한국 교육 예찬은 미국 부모의 양육 방식에 생기기 시작한 변화를 보여주는 징후였는지도 모른다.
소득격차 클수록 부모 권위적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의 두 젊은 경제학자가 쓴 <기울어진 교육>은 미국을 휩쓸고 있는 ‘타이거 맘’과 ‘헬리콥터 부모’의 출현을 양육을 둘러싼 경제적 인센티브의 변화로 설명하려는 시도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아이들을 기르며 자신들이 1970년대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양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낙제만 하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던 부모 세대와 달리, 오늘날 저자 또래의 부모들은 음악 교습부터 스포츠 활동까지 온갖 교육에 아이를 등록시키고,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 검사하며, 꼬박꼬박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놀이 약속까지 대신 잡아 준다. 느긋하고 때로는 방임적이기까지 했던 부모 아래서 자란 자신들이 대체 어쩌다 헬리콥터 부모가 돼버린것일까?
두 사람은 소득 불평등 지수의 나라별 차이와 시대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면서 이와 부모들이 택하는 전반적인 양육 방식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밖에도 소득 재분배율과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 같은 경제적 여건, 그리고 그 변화가 ‘좋은 양육’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각종 실증 자료들로 입증하고 있다. 멀쩡한 사람도 자녀의 교육 문제에서만큼은 맹목적이 되는 현실, 그리고 대치동과 스카이캐슬로 대변되는 한국 교육의 지나친 과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모든 부모는 자녀들이 행복하고 잘 지내길 바란다. 즉, 부모의 의사 결정을 추동하는 주요 동기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다. 하지만 같은 목적 아래에서라도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를들어 미국과 중국의 부모들은 점점 더 권위적이 되는 반면 스칸디나비아의 부모들은 좀 더 관대한 경향이 있다.
양육의 경제학
두 저자는 사회의 증대하는 불평등과 돈, 능력, 시간 같은 부모의 제약 조건이 상호작용해 양육 태도를 결정한다고 본다. 중세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에서 중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두 저자는 자녀 양육을 둘러싼 경제적 인센티브와 제약의 변화가 부모노릇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양한 나라에서 좋은 부모노릇을 각각 어떻게 다르게 규정하게 만드는지를 살핀다.
대학원 진학을 앞둔 자녀와 함께 ‘학교 방문의 날’에 참석하고 대학원 입학 사정관에게 전화를 해서 미팅을 잡는 미국 부모들, 스물다섯 살 아들에게 더운밥을 먹이기 위해 군 복무를 하는 곳 근처 마을에 아파트를 얻는 이탈리아 부모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저자들은 발달 심리학 분야의 구분을 따라 부모의 양육에 대한 태도를 방임형, 허용형, 권위형, 독재형으로 나누고, 지난 30년간 일부 국가에서 ‘집약적 양육’ 이 확산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집약적 양육은 아이에게 복종과 엄격한 통제력을 요구하는 독재형과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아이의 가치관을 구성하는 권위형이 결합된 양육 방식을 일컫는다.
이는 단순히 아이를 감독하고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가 학교에서 잘 생활해 나가는지, 어떤 활동을 선택하고, 어떤 친구를 만나는지까지 포함해 온갖 측면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약적 양육’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나라는 공통적으로 불평등 정도가 높고,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이 높은 나라였다.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급격히 증가한 1995년에서 2011년 사이 권위형 부모 비중이 39%에서 53%로 증가했다. 이는 같은 시기 불평등이 증가하긴 했으나 그 격차는 여전히 미국의 197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 허용형 양육이 지배적인 것과 대조된다. 두 사람은 집약적 양육이 자녀의 학업 성취에 미치는 효과,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증가, 그리고 양육에서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 등을 통해 오늘날 양육이 어떻게 점차 강도 높고 시간 집약적이며 통제적인 노동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경제적 포상에 반응하는 부모들
저자는 흔히 ‘문화적 차이’로 보아 넘기는 사소한 사례들을 모아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부모의 전망이 소득 불평등과 같은 경제적 조건과 상호작용한 결과 특정한 방식의 양육 태도를 낳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 문제를 성토할 때마다 우리는 핀란드와 스웨덴 같은 스칸디나비아의 모델을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하곤 한다. <기울어진 교육>은 우리가 스칸디나비아에서 본받아야 할 것이 과연 교육인지, 아니면 그 교육이 서 있는 토대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지만 현실에서는 더 완벽한 ‘스펙’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경쟁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기적인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을 탓하거나 학종을 폐지한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교육 개혁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러면 다섯 살 난 아이의 커리어를 걱정하며 입시 매니저를 자처하는 부모의 개별적 불안과 욕망을 다스릴 수 있을까? 이 책은 경제적 불평등에 직면해 부모들이 사랑과 돈, 그리고 자녀 교육의 관계를 어떻게 구성해나가는지, 그리고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부모들의 합리적 선택이 어떻게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교육 사다리를 흔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하게 한다.
저자는 미래를 전망하며 교육 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앞으로 양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알아본다. 특히 ‘한방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입시 제도의 존재가 나라별 부모의 양육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아이들 사이에 기회의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양육 격차를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책적 개입의 가능성을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