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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⑤ - 사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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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사패산이다.

'사패산'이란 명칭은 조선조 선조의 6째 딸 정휘 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을 가면서 임금이 하사한 땅이라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일대는 오랫동안 군사 보호지역으로 묶여 있다 풀려, 보기 드물게 원시림이 잘 보존되고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의 맨 북쪽 산이다.

 

추분이 지나 짧아진 낮 길이를 생각하여, 1시에 회룡역에 집합한 일행은 회룡교로 향한다. 회룡역 주변의 상전벽해(桑田碧海)한 듯한 변화에 눈을 돌리며 번화한 거리를 지나, 회룡교를 지나면서는 도시의 자취는 희미하고 시골 개울가 길을 따르는 듯, 한적한 가을의 정취가 물씬하다.

 

오르는 길가의 목공예방 주변에는 구절초와 개미취, 이름 모를 들풀들이 제철 만난 듯 그 자태를 뽐내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은 한가로이 사진을 찍으며 휴일의 화창함을 즐기고 있다.

 

회룡사로 향하는 콘크리트 길옆의 계곡은 맑은 물이 흐르며 시원한 물소리를 들려주니 약간 가파른 고갯길도 그런대로 오를 만하다. 회룡사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태조 이성계와 밀접한 무학대사가 이 절에 머물 때, 함흥차사를 만들던 이태조가 한양에 돌아오며 무학대사를 만나러 들른다는 소식에 ‘回鸞龍駕’(회란용가/임금의 말과 가마가 돌아오다)라 기뻐하여 회룡사가 되었다는 안내문을 보며 등산길에서 절을 내려다본다.

 

절은 크지 않으나 은은히 찬불가가 흘러나오는 절 앞 잔디에는 젊은이 둘이 잔디에 누워 있고, 절 위쪽의 텃밭에는 고추 따는 보살님이 손을 놀리고, 어린 배추, 무가 싱싱한 초록색으로 잘 자라고 있어 가을걷이를 앞둔 전형적인 산사의 가을 풍경을 느낀다.

불경에서 유마 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 했다는데, 산사가 그림이니, 온 세상이 화엄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적한 산길을 오른다.

 

사패 능선을 향하는 계곡 길은 오를수록 경사가 급하나 한 시간여의 산행으로 능선에 도달.

햇빛 속의 초록들은 벌써 광합성을 포기하고 카로티노이드의 노란색으로 갈아탄 잎들도 꽤 많이 보인다. 원래 나뭇잎에는 초록의 엽록소와 노랑의 카로티노이드라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 잎은 광합성이 활발할 때에는 초록이 무성하다가, 엽록소가 활동을 멈추고 겨울 채비를 하면, 카로티노이드의 노란색이 주종을 이루다 떨어진다. 

 

은행잎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부는 안토시아닌 물질의 붉은 색을 생산한다. 왜? 진딧물은 붉은 안토시아닌을 싫어하여 진딧물이 1/6으로 줄어든다. 결국, 식물도 생존에 적합하기 위하여, 일부러 붉은색을 낸다. 결국 생물의 생존 전략이다. 능선의 나무들은 제법 붉은색을 띠는 잎들도 눈에 보인다. 1, 2 주 정도 지나면 이곳도 단풍이 한창이겠다.

 

정상에 도착하니 동, 서의 딱 트인 시야가 반갑고, 남서쪽의 삼각산과 오봉, 자운봉 등의 능선들이 북한산 깊은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다.

 

 

정상에서 널리 내려다보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이 있지만, 그 안의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움직임이 있는 듯하다. ‘靜’속의 ‘動’. 풍경 안에 흐르는 그 뭔가를 생각하면 언젠가 읽었던 최진석 교수의 ‘경계에 흐르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세계는 동사로만 존재한다. 세계가 새로운 곳으로 계속 이행하는 운동을 우리는 변화라 한다. 변화에 적응하면 살아남아 번성하고 변화에 적응 못 하면 사라진다. 경계에 서 있으면 불안하다. 이 불안이 그 사람을 예민하게 유지해 주고, 그 예민함이 경계가 연속되는 흐름임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이 기억에 갇혀 더 이상 창의적 돌파가 불가능해 지면,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되 진짜 '사람' 혹은 참된 '사람'은 아니다.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기억'에 있기 때문이란다. 흔히 자기가 만든 관념에 빠져 살아있는 모습이 허울뿐인 허상으로 사는 거란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관념의 세계. 조주 선사가 말한 ‘庭前柏樹子’(정전백수자/뜰 앞의 잣나무)도, 허울뿐인 허상을 경계하고 현재를 직시하라는 말이라 하지 않던가.

 

정상에서의 상상은 항상 즐겁고, 그러기에 정상에 오르고 싶은 것이리라.

 

 

내려오는 길은 안골계곡으로 정해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지만 하산길에는 벌써 땅거미가 내리고 있다. 안골계곡의 정취도 호젓한 산골의 숲속 같다는 느낌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경민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회룡역으로 오는 차 안에서, 사패산의 어스름한 자태를 바라보며, ‘산에서 배우는 인생’이란 칼럼을 시작한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의 카톡 문자에 빙긋 웃음이 난다.

 

“넘어야 할 산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 산에 가라”

 

고마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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