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들어서면 큰 기와 작품이 땅에 파묻힌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드넓은 대지 대신 꽉막힌 유리 벽들 사이에 조성된 땅 위에 설치된 이 작품은 이승택(88)의‘기와입은대지’다. 그 위로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展의 현장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이 끝없는 실험정신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이승택(88)의 60여년 화업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전시를 마련했다. 250여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국내 1세대 전위미술작가인 이승택의 작가 위상을 재평가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나 화단의 파벌 활동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재야의 삶을 선택했다. 선구적 설치미술가로 활동했으나 지난 50여년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77세에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2009)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작가에 대해, 세계 미술계 파워 인물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는 "세계 미술사에 남을 독자적인 작가”라고 했고, 토비아스 버거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 큐레이터는 "현대 미술사를 다시 쓸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이승택은 이번 전시에 ‘고드레돌’을 비롯한 ‘묶기' 연작, ‘바람’‘하천에 떠내려가는 불붙은 화판’ 등 불과 연기 안개 바람 소리 등 자연현상을 작품에 도입한 ‘형태 없는 조각' 연작, ‘지구행위’, ‘모래 위에 파도 그리기’와 같이 특정 공간에 개입한 행위 미술 연작 등을 선보였다. 또 초기드로잉, 아카이브 자료 및 미공개 작품은 물론, 재제작 혹은 복원된 작품도 여럿 전시중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이승택의 대규모 회고전”이라며, “지난 60여 년 동안 미술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이승택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미술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고원 출생인 작가는 1950년 한국전쟁중 월남했다. 18년간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낯선 남한 땅에서 다시 뿌리내리기를 해야 했다. 많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던 그는, 홍익대 재학시절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다. 이는 이승택 작품 세계의 핵심인 ‘거꾸로 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 후 규정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재고하며 치열하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부분의 평문은 ‘반항'과 ‘저항'으로 그를 설명한다.
미수(米壽)를 지난 나이지만, 작가는 이번 전시에 청년 같은 열정으로 임했다. 2016년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에 참여할 당시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언론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던 작가는, 이번에도 드넓은 MMCA 서울관 전시장 계단을 열정적으로 오르내리면서 본인의 작품 세계를 알렸다.
작가는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고, 거꾸로 생각했다. 삶도 거꾸로 살았다”고 말한다. 독자적 예술세계로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을 이끌어온 그의 철학은 전시명 ‘거꾸로, 비미술’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의 ‘거꾸로’ 철학은 기성 조각의 문법에 도전한 그의 ‘비조각’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기존의 ‘미술-비미술’ ‘물질-비물질’ ‘주체-대상’의 경계를 가로질러왔다.
재료의 실험:조각에 대한 질문
먼저 6전시실에서는 이승택의 혁신적인 조형 실험을 ‘재료의 실험’‘줄-묶기와 해체’‘형체 없는 작품’ 등으로 펼쳐보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통 옹기를 비롯해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 일상 사물들이 전시장에 놓여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일상 사물들이 오브제로 사용되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이 없지만, 1960년대만 해도 작가의 이러한 도전은 화단의 인정을 받기 어려울 정도의 도전이었다. 당시 이러한 일상 사물들은 조각 재료로 인지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화단을 놀라게 하며 이러한 재료들을 조각품을 받치는 좌대없이 바닥에 놓거나, 비정형의 오브제로 천장에 매달거나, 탑 형태로 한줄로 쌓아올리는 등 기성 조각의 문법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설치 방식을 보였다. 옹기 단지를 세로로 쌓아올린‘성장(오지탑)’(1964/2020), 비닐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스테인레스스틸로 틀을 만든 ‘무제’(1968/2018)가 이에 해당한다.
줄-묶기와 해체:비조각을 향해
작가는 1950~80년에 걸쳐 줄과 노끈을 이용한 ‘묶기’를 대거 선보인다. 사물의 형태와 본성을 뒤집고 낯익은 일상을 전복시키려는 비조각 작품이다. 그가 1958년에 가시철망과 석고를 써서 만든 ‘역사와 시간’은 1950년대 국내 정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960년대에 노끈으로 비닐을 감거나 각목을 천으로 이어 묶는 작업, 1970년대에 돌, 도자기, 여성 토르소, 책, 지폐, 캔버스 등의 사물을 철로 묶은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1978년 동아미술상 우수상을 수상한 여성의 둔부 토르소 위에 묶음의 흔적을 작품 표면에 새기고 줄로 묶어 눌림의 수축과 팽창의 신체성을 극대화한 ‘매어진 여체’ 시리즈는 당시 일반적인 여체 조각과는 크게 다른 표현이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힙’(1972)도 그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또 묶기 소재는 여체 외에 백자와 돌, 책 등도 묶어냄으로써 작가는 사물과 관념을 뒤집어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갖는 이미지나 고정된 인식이나 지식, 담론, 제도에 대한 거부와 저항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암석이나 돌멩이 작품도 옛조상들이 바리나 자리를 엮을 때 쓰는 고드래돌에서 얻은 것이다.
형체 없는 작품
이승택은 바람과 불, 연기 등 자연현상도 작품에 끌어왔다. 1964년 화판에 불을 붙여 한강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그린 드로잉 ‘무제(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을 제작하며 ‘형체없는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969년 야외에서 처음 설치된 ‘바람’ 이후 1970년 홍익대학교 빌딩 사이에 푸른색 천을 한줄로 매달아 바람에 휘날리게 한 기념비적 작품 ‘바람’을 선보였다. 이듬해 ‘바람’은 제11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제2회 <A.G전>에 선보였다. 그의 ‘바람’ 작업은 2000년대까지 다양한 변주를 거듭해온 대표작의 하나다.
작가는 “비물질적인 소재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며, 노끈과 헝겊, 한지들을 등장시켜 ‘비시각적인 공기를 시각화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비물질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무제(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1988), ‘이승택 분신행위예술전’(1989)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삶·사회·역사
7전시실과 미디어랩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삶과 사회, 행위, 무속 등으로 확장된 작가의 작품 세계가 배치됐다. 당시 50대이던 작가는 그 이후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사회, 역사, 정치, 환경, 생태, 종교와 성 등 다층적인 삶의 지평을 예술의 문맥으로 접목시켰다.
당시 환경과 생태주의를 품어 ‘이끼 심는 예술가’ ‘녹색운동’ 연작, 여러나라를 다니며 수행한 ‘지구행위’ 연작, 1990년대 이후에는‘동족상쟁’‘권력가들의 최우만찬’ ‘결국, 예술은 쓰레기가 되었다’ 등을 발표했다.
행위·과정·회화
이승택은 결과물만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미술작업 보다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행위를 중시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예를 들면 작가는 불을 태워 그 흔적을 작품으로 수용한 ‘그을음 회화’나 물을 흘러내리게 해 그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물그림’처럼 행위와 과정, 생동감 있는 현장성을 중시하는 회화를 선보였다.
1992년 독일 카셀에서는 <다른 것들과의 만남전>에서 그림을 현장 제작하고 불태워 그 흔적을 남긴 회화를 진행했고, 1995년 <정림건축 구사옥 해체 이벤트>에서 건물 벽면과 바닥에 깔아놓은 캔버스 천 위로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여 그 흔적을 드리운 물그림 등은 행위와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내었다.
무속과 비조각의 만남
무속을 작품에 끌어온 것도 1980년대 중반 이후의 특징이다. 이승택은 1986년 후화랑에서 개인전 <이승택 비조각전>을 열고 ‘무속과 비조각과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무속과 비조각의 만남은 눈길을 끈다.
작가는 무속에 대한 관심을 설명하면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설명을 잊지 않는다. 그는 전통, 설화, 민속, 무속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왔는가하면, 한국의 민속품, 고드렛돌, 석탑, 옹기, 성황당, 항아리, 시와 등 재래적인 모티브를 작업으로 끌어들여 비조각의 근원으로 삼았다.
사진과 회화 사이
1960년대 이후 이승택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넘어 인화된 사진 위에 다른 사진을 콜라주하거나 페인팅을 가하면서 사진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했다.
1971년 첫개인전에 사진을 주요 전시작품을 선보였는데, 배경 공간과 이미지를 합성해 포토몽타주와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폭포 그림’이나 ‘모래 위에 파도 그림’처럼 산이나 바다에서 퍼포먼스를 촬영한 후 프린트된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린 일명 사진-회화를 대거 선보였다.
야외 설치 작품
이승택은 미술관 내부가 아닌 대지 위에서 조각적 행위를 펼쳐왔다. 1970년 홍익대학교 빌딩 사이에 100여 미터 길이의 푸른색 천을 매달아 바람에 휘날리게 한 기념비적 작품 ‘바람’을 비롯해, 1988년‘기와 입은 대지’나 1970-80년대 주요 대지미술인‘바람’ 등은 조각적 행위를 미술관 내부가 아닌 대지로 옮겨서 조각의 ‘확장된 영역’에 관심을 보이는 일종의 대지미술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기와 입은 대지'(1988/2020)와 ‘바람소리'(1970년대말/2020), 미술관마당과 종친부마당에 설치된 을 포함한 1970~80년대 ‘바람’ 연작 등 야외 설치 작품은 4점 재연됐다.
한편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은 유튜브 채널(youtube.com/mmcakorea)을 통해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12월 31일 오후 4시부터 30분간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의 설명으로 전시를 소개한다. 중계 후에도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계속 볼 수 있다.